⑦ 안태영 서양화가

   
 
그의 그림에는 말벌이 등장한다. 말벌은 침이 날카롭고 쏘이면 치명적이다. 글라스에, 기타에, 꼬까신에 달라붙은 말벌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시련과 고난을 의미한다. 정적인 화면에 동적인 움직임을 일으키며 정지된 찰나의 순간,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서양화가 안태영(38. 사진)씨는 마음속에 갖고 있는 추상적인 이미지, 즉 사랑과 같이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는 것들을 화면에 표현한다. 그가 그리는 사물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사연을 사물로 상징화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분홍색 손수건을 그렸을 경우 눈물, 콧물을 닦는데 쓰는 의미없는 손수건이 아니라 눈물을 닦아냈을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이 들어가도록 의미를 부여하는 식이다. 그 사연에는 작가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을 비롯해 부모와 아내, 주변 선후배들의 이야기들이 담겨진다.

“꽉 짜인 일상과 주름진 삶을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안 작가를 만나기 위해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화창한 5월 오후 옮긴 지 한 달 됐다는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안태영 작가는 태어날 때부터 작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는 안 작가는 학창시절 줄곧 미술부 활동을 했고, 미술 외의 다른 진로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꿈이 화가였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지요. 죽어도 그림만 그려야겠다고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대학 졸업하고 10년만 참으면 성공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었어요. 그런데 10년이 아니라 15년이 훌쩍 넘었지만 전혀 아니거든요.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없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요”라며 전업 작가의 외롭고 먼 길을 토로했다.

안 작가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화풍이 바뀔 수 있겠지만 40대 중반까지는 리얼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관람객이 가까이서 봤을 때 놀라는 즐거움을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 싶거든요”라고 자신의 화풍을 설명했다.

하이퍼리얼리즘은 196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화풍이다. 일상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리는 형식으로 미국의 유명 작가들은 사람 얼굴을 몇 m로 크게 확대시켜 그리거나 자동차를 실물과 똑같이 그려 낸다. 때문에 마치 사진처럼 표현된 이들의 그림에는 작가 개인의 감정이나 내용이 없다.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해도 저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인간과 사물에 깃든 사연을 찾아요.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인연이 하나의 스토리로 엮여지는 과정을 담아내는 거지요. 이런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리얼리즘 작가들이 통상 사용하는 에어브러시 대신 붓으로만 그립니다. 마지막엔 제일 가는 붓에 털 2개만 남겨서 정밀함을 묘사하지요”라는 안 작가는 리얼리즘 작업의 고통스러움도 털어놓았다.

“그림 그릴 때는 지겨워요. 진짜 하기 싫어요.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단시간에 그려내고 자유롭게 그려내고도 싶은데, 몇 달씩 꼼짝 못하고 앉아서 한 터럭 가지고 돋보기와 씨름할 때면 심지어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니까요. 그런데 완성 후에는 만족도가 더 크지요. 보람이 있어요. 그래서 그리는 거지요.”

   
  ▲ 꽃신에 얽힌 사연, Acrylic on canvas, 2002  
 

   
  ▲ 연두빛 사연, Oil on canvas, 2004  
 

안 작가는 작품에 여백을 잘 활용한다. 서양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한국적인 맛을 담아내고 싶어 동양화에서 중시하는 여백을 남긴다. 주제와 부제를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비워놓는다. 이 여백은 관람객들이 사색할 수 있는 관람객들의 공간이다.

안 작가는 리얼리즘을 위해 유화를 즐겨 사용하는 유화 애찬론자다. “유화의 매력은 수채화, 파스텔, 크레용보다 역사도 길지만 다양하게 표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고 표현 범위가 넓지요. 변화무쌍합니다. 특히 급하게 작업할 수 없는 재료입니다. 입체감을 표현하고 완성도를 높이려면 쫄깃쫄깃할 때, 마른 듯 안 마른 듯 할 때 색칠을 해야하므로 한 작품을 마치는데 보통 2~3달이 걸립니다”라고 설명했다.

안 작가는 올 가을과 내년 초 서울에서 작품전을 열 계획이다. 그 이유에 대해 “광주에서는 이미 안태영이란 화가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 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그림을 더 많은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거든요. 서울은 관람객이 많기도 하지만 제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주는 사람이 소수이지만 있어요”라고 밝혔다.

안 작가에게도 결혼이후 경제적인 문제로 작업과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과정을 극복한 지금 안정적으로 그림에 열중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안 작가는 “배고프고 치열하게 살아야 좋은 작품 나옵니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고통을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사실 그러면 몸이 힘들고 아프니까 내키지는 않는데 과거를 돌이켜보면 힘들었을 때 가장 알찬 작품이 나온 것 같거든요”라며 웃었다.

안 작가는 후배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점이 많다. 일단 실망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대학에 가 보면 밤새 불을 켜놓고 작업하는 후배들이 거의 없어요. 그림도 쉽고 편하게만 그립니다. 고뇌한 흔적이 없거든요. 아이디어만 취해 가벼운 그림만 그리는 작가들이 대부분입니다. 기초를 탄탄하게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투자된 작품과 깊이 있는 사고를 표현하고 이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좋은 후배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물이 고이면 반드시 썩거든요. 좋은 후배들이 계속 나와서 항상 신선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광주 화단에 활력을 불어넣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안태영 작가는  호남대학교와 조선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96년 광주시미술대전 대상을 비롯해 전남도 미술대전 특상, 가마보코 판회 국제미술제 입선 등 국내외 미술대전에서 다수 수상했다. 지난 2002년과 2004년 개인전을 가졌으며, 현재 광주청년미술작가회, 광주미술협회 회원, 광주시 미술대전 추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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