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명박과 박근혜 싸움사이서 그들의 모습은...

한나라당 상황이 심상찮다. 재보선 패배 이후 책임문제로 아웅다웅하더니 최근엔 경선룰 문제로 다시 붙었다. 넷심에서 앞서 있다는 이명박 측이나 당심에서 앞서 있다는 박근혜 측이나 현재로선 물러설 기미가 전혀 없어 보인다. 강재섭 대표가 중간에서 중재안을 만드느라 애썼지만 양쪽을 만족시키란 역부족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국 두 사람이 갈라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판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아쉬워 하며 한나라당의 대선 탈취에 목숨 건 조선일보에게 작금의 한나라당 사정은 재앙이나 다를 바 없다. 범여권의 마땅한 대항마도 없는 무주공산의 대권가도에서 마지막으로 용의 눈깔만 점찍으면 되는데, 나아가 밥상은 이미 차려졌고 누가 됐든 숟가락만 뜨면 되는데, 막상 고지를 눈 앞에 두고 두 사람이 분열 양상을 보임으로써 '다 된 밥에 코 빠트릴 수도 있는'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언론의 허을을 벗어던지고 직접 파란옷을 입고 시합에 뛰어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7일자 지면을 따라가 보자.

먼저 팔면봉. 1면 하단에 조그맣게 자리한 <팔면봉>의 오늘 소재는 “두 주자 반대해도 경선 룰 결론 내겠다”는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말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경선룰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갈등과 내분은 나름대로 큰 이슈에 해당되니까. 문제는 그 다음에 덧붙인 조선일보의 짤막한 코멘트다.

"제발… 제발,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하세요"란 주문 앞에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더해진 '제발'이란 글자가 눈길을 끈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얼마나 절박했으면, 얼마나 다급했으면, 체면불구하고 이런 말까지 내뱉었을까. 이 정도의 애원은 아무한테서나 쉬이 나오는 게 아니다. 적어도 한나라당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부르짖지 못한다. 조선일보가 한나라당과 한 몸임을 커밍아웃하는 감동적인 순간 아닌가.

5면에 실린 대선주자 지지율 분석기사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조선일보와 TNS코리아가 실시한 여론조사결과를 3면에 걸쳐 전하면서 "李·朴갈등 불구 지지율 큰 변화 없으며"(1면), "李·朴 지지자 3명중 2명 '탈당해도 지지'"(5면)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이명박과 박근혜가 분열해도 한나라당 승리는 무난해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정치상황에서 그대로 재현될지는 미지수다. 조선일보의 불안은 거기에 존재한다.

서강대 이현우 교수가 쓴 여론조사 총평도 바로 이런 조선일보의 불안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교수의 글은 두 사람이 절대로 갈라서지 말라는 애절한 부탁이 전부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의 탈당은 두 후보 모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조사에서도 명확히 확인되었다"거나 "조사에 따르면 두 주자 모두 탈당을 한다면 현재의 지지수준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대선에서 당선되기에는 부족한 지지이다"는 말을 달리 어떻게 해석할까.

'조선일보의 인격' 김대중 고문의 칼럼은 주문의 파격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그는 <이명박·박근혜도 막판 단일화로 가자>고 대놓고 선동한다. "두 대권 주자가 여기서 싸움을 멈출 수 없다면 더 싸우도록 시간을 연장시켜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선 시기를 대선에 임박해 늦추거나 아예 경선을 없애 두 사람이 막판에 자웅을 가리게 하거나, 그도 안되면 서로 갈라섰다가 막판 후보단일화를 이루게 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권이 후보 단일화를 우려먹는 마당에, "한나라당이라고 그런 게임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게 김대중의 논리다.

김대중이 노리는 것은 결국 이명박과 박근혜가 분열하는 걸 어떻게든 막아보자는 거다. 경선을 극단적으로 늦추거나 혹은 경선 자체를 없애거나 혹은 갈라섰다가 나중에 다시 합치거나 하는 따위의 다양한 옵션을 나열한 것도 그래서다. 칼럼 말미에 덧댄 "이·박 두 사람이 양립하면 어떤 결과가 올지는 불 보듯 뻔하다... 두 사람이 끝까지 오만과 편견을 버리지 않고 투표까지 간다면 그것은 두 사람의 정치적 사망이고 야당지지세력의 좌절이며 우파의 한계이자 대한민국의 숙명일 뿐이다"는 경고에서 그의 속내가 가장 적나라하게 읽히지 않는가.

이상의 글들을 통해서 조선일보가 한나라당의 2007 대선승리를 얼마나 열망하고 있는지 쉬 체감할 수 있을 게다. 그런데 이쯤 해서 물어 보자. 조선일보는 왜 이처럼 한나라당의 승리에 목매는 걸까? 조선일보가 "제발...제발"이라는 야릇한 신음을 반복하면서까지, 아니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분열방지를 호소하고, 나아가 막판 후보단일화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까지 안달복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상기한 물음에 대한 답을 엿볼 수 있는 것이 7일자 조선일보 사설 <李·朴은 왜 정권을 잡아야 하는지부터 설명하라>이다. 사설은 이명박-박근혜 간의 경선룰 샅바싸움을 비판하면서 "국민은 이·박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한나라당이 집권당이 되면 나라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가 궁금하다"고 쏴부친다. 청계천과 대운하, 그리고 천막당사와 열차페리 말고 "경제·안보·교육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이들의 비전이 무엇인지" 국민들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설은 "이·박 두 사람은 싸울 때 싸우더라도 “한나라당이 왜 정권을 되찾아야 하느냐”는 유권자들의 물음에 답이라도 하고 싸워야 한다"고 매듭짖는다.

사실 사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명하다. 하찮은 경선룰 갖고 싸우지 말고 앞에서 얘기한 것 같은 큰 문제들을 두고 싸우라는 거다. 국민 설득이라는 대명제를 내세워 당 해체론까지 거론되고 있는 '이-박 싸움'을 막아보자는 조선일보의 노회한 꼼수가 이렇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이를 통해 조선일보가 부지불식 간에 "한나라당이 왜 정권을 되찾아야 하는지"를 자기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실토해 버렸다는 데 있다.

이해가 아니 가는가? 그러면 사설 내용을 잠시 복기해 보시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나라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왜?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경선룰 갖고 싸우기만 했지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제대로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진대 한나라당이 정권을 되찾은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 국민도 모르고 조선일보도 모른다. 여기서 아주 섹쉬한 사실이 밝혀진다. 그게 뭐냐?


- 조선일보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왜 정권을 잡아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해 올인하고 있다~!!!

어때, 재밌지 않은가?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왜 이겨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한나라당을 위해 풀타임알바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이 얼마나 멍청하고, 멍청해서 웃기고, 웃기면서 슬픈 코미디인가. 코미디의 천재 찰리 채플린도 이런 기막힌 웃음은 만들지 못할 게다.

이것이 조선일보다. 언론을 욕보이고 한나라당 당보 내지는 기관지를 자처하는 '무늬만 신문지'다. 한나라당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불편부당'이라는 사시쯤은 사뿐히 짓밟을 수도 있다는 '신문지, 그 이상한 신문지'다.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소위 개혁정권을 끝장내기 위해서라면 정치적 중립이고 나발이고 간단히 뭉개버릴 수 있다는 '언론계의 쑤레기'다. 이런 조선일보에게 언론 윤리를 위반하면서까지 왜 한나라당을 미느냐고 물으면 뭐라 말할까. 아마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아~무 이유 없어! 피스~!"

/데일리서프라이즈 & dailyseop.com
문한별 <데일리서프라이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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