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군가 당신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명쾌히 대답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면 행운아겠지만 아마도 주저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 우린 언젠가부터 꿈을 도둑맞고 살고 있다. 도둑맞았다고? 그렇다면 그 도둑은 누구란 말인가?

어렸을 땐 꿈이 너무 많아 어떤 것부터 해치워야 할 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며칠 사이로 변하는 꿈 때문에 부모님께 신중치 못한 아이로 우려의 시선을 받았던 기억도 있다. 그처럼 하고 싶은 일도 많고, 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우리들의 그 많은 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내가 가르치고 있는 중학생들에게 “너희들은 꿈이 뭐냐?” 라고 물은 적이 있다. 중간고사 준비로, 일제 강점 하에서 온 몸과 혼으로 뜨겁게 저항을 했던 이육사의 시를 가르치던 시간이었다. 뜬금없는 질문이었는지 아이들은 내 얼굴만 끔벅끔벅 쳐다볼 뿐 대답하는 놈이 없었다.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나싶어 다시 한 번 “너희들은 꿈이 뭐니?” 하고 곡진하게 물었다. 역시 묵묵부답. 이 시의 표현기교가 뭐냐, 시어의 함축적인 의미가 무엇이냐, 화자의 태도는 어떠냐, 하는 따위의 질문에는 여기저기서 잘도 튀어나오던 대답이 한순간 적막강산이었다.

그러다 아! 짚이는 데가 있어 다시 질문을 했다. “너희들 장래희망이 무엇이냐?”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프로그래머, 경찰, 정치가, 의사, 검사 등등 모기만한 소리들이 튀어나온다. 더 다수의 아이들은 그나마 입도 뻥긋 못한다.

그때 한 녀석이 “우리는 꿈을 잃어 버렸어요. 그냥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게 꿈이에요.” 한다. 전교 3등까지 하는 공부 잘하는 놈이다. ‘그런가? 아, 그렇지.’ 한 방 얻어맞은 권투선수처럼 나는 잠시 마음이 비틀거리다 겨우 그 아이에게 미소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자 “저는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상도 많이 탔어요. 그런데 엄마가 피아노 그만 두고 공부하래요.” 하고 말한다.

그때 여기저기서 “맞아.” 하며 저희들끼리 수군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다닐 땐 제 꿈이 무엇이었다는 둥 여러 가지였다는 둥 갑자기 말들이 많아졌다. 얼결에 졸다 정신을 차린 놈도 지루한 수업이 빨리 끝나기를 고대하며 기죽어 있던 놈들도 한통속이 되어 왁자지껄 했다. 그날 끝나는 시간까지만 우리는 ‘꿈꾸기’를 했었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 길쭉이 다양한 모양의 얼굴들이 ‘학교’라는 거대한 공장으로 실려와 깎이고 붙이고 늘리고 잘려지면서 똑같은 ‘별꼴’이 되어가고 있다. 모두다 ‘별꼴(스타)’이 되기 위해 안간힘 쓰면서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도려내고 있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날마다 꿈을 잃은 사람들의 악다구니로 시끄럽다. 재벌 회장의 폭력사건이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아우성인 사람들이나 먹이 하나를 놓고 서로 더 좋은 곳 먹겠다고 아귀다툼을 하는 사람들 말이다. 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의 꿈이라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금 밖에선 새록새록 피어나는 감나무의 연초록 여린 잎이 햇빛을 받아 눈부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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