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보고서' 구체적 피해사실ㆍ혐의 명시 `들통'
잇단 거짓말로 `늑장수사' 고의성 의혹 증폭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 경찰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첩보보고서의 일부 내용을 감췄던 사실이 확인돼 경찰의 `봐주기 늑장 수사' 의혹이 커지고 있다.

4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가 경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3월26일 작성해 같은 달 28일 남대문경찰서에 하달한 첩보보고서에는 보복을 두려워하는 피해자들의 처지와 김 회장 등에게 적용할 구체적인 법조항까지 나와 있다.

당시 보고서에는 `피해 사실을 확인 한 상태'라는 문구도 명확히 적시돼 있다. 첩보보고서에는 "피해자들은 본건 피해로 인해 피해를 입고도 보복이 두려워 피신중에 있으나 피해 사실은 확인한 상태임"이라고 적혀 있으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야간집단폭행, 형법 상 체포감금, 상해를 `적용 법조'로 명시하고 있다.

경찰이 지난달 30일 보고서의 일부를 전체인 양 공개하면서 늑장수사 의혹에 대해 "미확인 첩보여서 관할서로 넘겼으며 본청에는 첩보 수준의 뜬소문이라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남대문 경찰서는 지난달 26일에도 "(첩보보고서에) 북창동의 술집 이름 1곳과 한화 회장의 이름 정도만 기재돼 있다. 첩보가 `시중의 뜬소문' 수준으로 구체적이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한 바 있어 첩보보고서 내용에 대해 2번씩이나 은폐해 온 셈이다.

이 처럼 계속된 거짓말에 대해 장희곤 남대문서장은 "본인 나름의 판단에 근거해 첩보보고서의 내용을 감췄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나름의 판단'로 인해 경찰이 겪는 수사상의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이는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24일 연합뉴스의 최초 보도로 일반에 공개됐으며 이후 경찰은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했지만 초동수사 부실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부심하고 있다.

수사가 지지부진한 사이 김 회장측은 검찰 출신의 화려한 변호진의 도움을 받아 발빠르게 방어막을 쳐왔고 경찰은 김 회장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소환 조사가 이뤄진지 1주일이 다 되도록 구속영장 신청을 단행하지 못했다.

`뒷북 수사'가 경찰 자신을 궁지에 내몰면서 김 회장측을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같은 상황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미뤄 경찰은 수사 결과와 상관 없이 내부에서 파악해 낸 첩보에 대해 제때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내부 감찰 조사에 착수했지만 `늑장 수사'가 고의에 의한 것인지 등 의혹을 철저히 조사하고 국민들에 명확히 설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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