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밭을 갈아엎고 새 씨앗을 뿌려야 할 때"

 
이제 4월이다! 꽃샘바람 속에서도 봄날은 오고 꽃들은 화사하게 만개했다. 4월이 되면 우리는 늘 영국 시인 T. 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의 첫 대목을 떠올린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

이 시는 정신적인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 생산이 없는 성(性), 그리고 재생이 거부된 죽음에 대한 노래이다. 시인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드러난 과학문명의 황폐함을 비판하고, 라일락이 피어나는 4월이 왔건만, 인류사회의 봄은 오지 못한 것을 역설적으로 노래했다.

그러나 오늘 나에게는 저 이국 시인의 시보다 60년대의 대표적 민족시인이었던 신동엽의 ‘4월은 갈아엎는 달’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江山을 덮어, 화창한/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享樂의 不夜城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일어서는 달.”

4.19혁명이 끝난 뒤 그 혁명의 끝자락만 붙들고 자신의 입신영달과 출세에 여념이 없던 당시 정치판과 사회현실을 준엄하게 비판했던 신동엽 시인의 순결했던 절규가 오늘의 우리 현실에 뇌성(雷聲)처럼 들린다.

저 80년대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의 자주를 외치던 386 운동권 정치인들은 FTA 정국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직도 우리에게 ‘그날’은 멀기만 한 것인가.

오는 4월 25일에는 55개 선거구에서 재.보궐 선거가 있다고 한다. 이번 재,보선은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과 정당 대표들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바빠지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썩은 정치판을 갈아엎는’ 선택을 해야 한다. 여야를 불문하고 구태에 얽매인 사이비 정치인들은 준엄한 국민 심판을 통해 도태되어야 한다. 신동엽 시인이 이렇게 노래했듯이,

“껍데기는 가라/4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렇다. 우리 정치판에 껍데기는 사라져야 한다. 국익보다 자신의 입신을 챙기고, 국익을 빙자해 당리당략에 급급하고, 불체포특권이란 미명 아래 국회를 범죄인 도피처로 전락시키고, 법원의 영장마저 버티기로 무산시키고, 심지어 비리의원을 다수의 표결로 '탈옥'시키고, 부패와 비리에 점철되고, 경선불복과 지역감정에 안주하는 정치인들이 바로 그 껍데기다.

이제는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서 묵은 밭을 갈아엎고 새 씨앗을 뿌려야 할 때다. 그리하여 우리 정치판에도 껍데기를 걷어내는 뜨거운 정치개혁의 봄을 맞아야 한다.

먼 산그늘에 눈보라처럼 산벚꽃이 날리고, 창가에는 동백 꽃잎들이 그날의 선혈(鮮血)처럼 붉다. 향그러운 흙가슴이 그리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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