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뒤안길에서 송두리째 꺾여 버린 꽃

만화방창이다! 어느 순간 초록이 땅거죽을 물들이는가 싶더니 여기저기서 꽃망울 펑펑 터지는 소리에 벌과 나비는 또 부산스럽다. 바야흐로 지상은 꽃사태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산수유, 동백, 목련, 개나리, 벚꽃이 다투어 제 존재의 의미를 각인시키느라 한껏 색을 뽐내는 중이다. 그 꽃그늘 아래서, 오고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해사하기만 하다.

오늘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에 난분분 져 내리는 벚꽃 잎을 안타까이 바라보다 문득 가슴 한구석이 시려옴을 느꼈다. ‘사쿠라’ 라고도 불리는 이름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에서 송두리째 꺾여 버린 꽃, 꽃 같은 가시내들......

전쟁 위안부로 끌려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돌아와 한과 눈물로 평생을 살아온 조선의 딸들. 어느 잡지에서 보았던 종군 위안부 할머니의 주름투성이 얼굴이 떠올랐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그 상처를 오늘 이 꽃 사태 난 봄의 한 복판에서 다시 본다.

14세에서 16세의 소녀들이 가장 많았다는 미국의 역사책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세상이 다 아는 일을 왜 일본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일까?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인 독일은 한때는 유대인들에게 못된 만행을 저질렀지만, 전후 독일인과 일본인의 모습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독일 사람들은 저 악랄한 ‘아우슈비츠’ 만행을 저질렀던 과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며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다.

그래서 그곳, 아우슈비츠를 참혹했던 현장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는 그때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들추어 만인 앞에 공개하며 스스로 죄인 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 일본의 태도는 자못 불량스럽기까지 하다. 얼마 전 아베수상의 발언은 우리 온 국민을 분노케 했었다. 정부에서 한 일이 아니고 민간단체에서 했다거니, 강제가 아닌 조선인의 자발적 행위였다거니, 집에서 강제로 끌어낸 적이 없다거니, 구차스럽게 말을 바꾸고 발뺌을 하더니 급기야 며칠 전에는 아베가 무릎을 꿇었다.

사과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스스로 진심어린 사죄의 마음에서가 아닌 이런 저런 증거로 몰리다 어쩔수없이 택한 사과이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인 병사였던 한 사람이 스스로 양심의 발언을 했고, 여지껏 일본에게 후하기만 했던 미국마저 종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증명하는 문서를 찾아내어 공개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종군 위안부 문제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세계도처에서는 폭력에 의해 꽃 같은 소녀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꺾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아니냐는 어떤 국회의원의 망발도 있었지만 꺾고 싶어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그렇게 잘못 길러진 것이다. 꽃을 보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넉넉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인데 말이다.

70여 년 전 역사의 된바람에 피기도 전에 꺾여버린 우리의 딸들, 이제는 주름꽃 만발한 90세의 소녀가 되어 저 낙화 속에서 외롭게 울며 부르짖는 소리를 귀를 열어 함께 듣자. 이 만화방창의 시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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