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노동자’, 바로 그 두 단어에 대해 고민해보십시오"

아래 글은 <언론노보> 433호에 게재된 글 입니다. 노보측의 허락을 받아 본보에 다시 싣습니다. /편집자 주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허식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겸양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서로 무관한 사이도 아니고, 또 지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도 않잖아요? 하기야 여러분들 중에 많은 분들은 이 인간이 하려는 말이 지겨울 수도 있겠습니다.

냉담하게, 냉소적으로 보실 분들이 많겠죠. 그래도 하는 수 없습니다. 지면을 주셨으니 하고 싶었던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언론노동자’ 라는 이름을 달고 노보를 읽고 계신다면 제 원망을 한번 들어 봐주시죠.

 저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입니다. 언론과 대중문화에 관심 있는 학생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강의실에서 열심히 애들과 놀고, 관심 있는 분야를 뒤떨어지지 않게 공부하면 됩니다. 저는 그런 일이 참 재미있습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데요? 그런 제가 왜 강의실보다는 거리에, 이론의 장보다는 운동의 판에서 이리 바삐 돌아다녀야 할까요? 지난주만 해도 방송사 앞에서 확성대회를 하고, 방송위원회에서 철야 농성을 하며, 어제는 <CNN>관련 기자회견을 후딱 해 치워야 했군요.

 개인적이 이유가 있지요. 한마디로 세상 돌아가는 일이 개판이라 도무지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9.11 직후 노암 촘스키 교수를 인터뷰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가 그랬습니다. 여러분도 한수 배워보실까요? “미 정부는 나프타(NAFTA)를 어떻게 체결했는지 아시나요? 한마디로 몰래했습니다.

 인. 민이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인? 민은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방해꾼입니다. 그냥 무식하고 무관심하게 있으면 되지, 끼어들어 뭐라 하면 괜히 골치 아파질 따름이지요.”

 촘스키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패러독스, 자유무역협정의 실상입니다. 작년 2월 한미FTA 말이 나왔을 때 바로 이 말이 퍼뜩 떠오르더군요. 자유무역협정은 언론의 침묵과 다중의 무지, 지식인의 무관심을 먹고 사는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렀습니다.

 전국언론노조, 언론연대와 함께 서둘러 <한미FTA저지를 위한 시청각. 미디어 공동대책위원회>라는 것을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집회에, 기자회견에, 토론회에, 회의에, 정신없이 그렇게 일년을 보냈습니다. 나이 어린 우리 몇 안 되는 활동가들이 정말 그랬습니다.

 그 동안 여러분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한미 FTA 취재로 바쁘셨나요? 방송 개방이 가져올 폐해에 대해 학습하고 계셨다고요? 아하, 파업도 하고 단식도 했다고요? 아닙니다. 여러분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비겁하게 뒤로 쳐져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지와 무관심? 무능이 여러분의 코드입니다.

냉소와 냉대. 냉정이 여러분의 심성입니다. 여러분은 한미 FTA를 침묵으로 찬성하고, 시청각 ? 미디어  개방을 나태로 허가했습니다. 한가롭게 먹으러 다니고, 무책임하게 놀면서 우리를 철저히 왕따시켰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면전에서 기자라는 타이틀을 떼라고 할 때, 피디저널리즘 죽었다고 할 때, 공연방송 해체라고 부르짖을 때, 쪽 팔리지 않으셨나요? 언제왓는지도 몰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주변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곤심이 없으시죠. 자기 목줄이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대량 구조조정이 기다리는데도, 한가로이 행복한 점심 메뉴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퇴근 후 술자리, 다음 달 월급이나 꿈꾸고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대신해 벌벌 떨며, 경찰에 치이며 돌아 다니는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진실을 모르는 기자, 알아도 말 못하는 기자가 무슨 기자입니까? 양심 잇는 피디저널리즘? 웃기지 맙시다. ‘공영방송’ 얼씨구 하는 타령도 이젠 관두시죠. 여러분은 ‘공공성’과 ‘공익성’에 추호도 관심 없습니다. 기분 나쁘신가요? 아니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제대로 보여주세요.

제대로 좀 알고, 제대로 좀 말하고, 제대로 좀 행동하시죠. 권력의 눈치나 보고, 사주와 영합하며, 조직 이기주의나 챙기는 수준으로는 안 통합니다. 노조 ‘복지주의’ 라는 것도, 사회 전체의 복지를 제대로 챙기고 나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너무 오래 주무셨습니다. 자고나서 일자리 다 없어지고 나서야 아차하지 않으려면, 이제 잠에서 깨어날 때입니다. 말이 거했지만, 그게 솔직히 제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언론노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곱지 않는 시선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한마디로 여러분에게 유감이 많다는 겁니다. 신자유주의니 자본이이 권력이니 하는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한미FTA나 방송개방에 대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언론’ ‘노동자’, 바로 그 두 단어에 대해 고민해보십시오. 말에 책임을 지시고, 그게 두렵고 부담스럽다면 ‘선전’ ‘기능인’ 이라는 명찰을 달고 다니시죠. 그게 여러분이 처한 역사적 선택입니다.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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