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종수 기자 = 서울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진행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고위급 절충이 '타결의지'만 확인한 채 핵심 쟁점의 이견 해소에는 실패했다.

결국 고위급 절충 이전부터 남아있던 대부분의 핵심 쟁점이 다음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간의 담판으로 넘겨졌다.

'끝장 협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와 농산물을 양대 축으로, 무역구제와 개성공단, 지적 재산권과 투자, 서비스, 금융분야에서 어떤 형태로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 자동차.쇠고기 험로
대부분의 분과에서 한미 양국이 서로 '공세-수세'의 모습을 띠는 것과 달리, 자동차는 양측 모두 공세를 펼치고 있어 접점찾기가 가장 어려운 분야다. 우리측은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미국이 2.5%인 승용차 수입관세를 즉시 없애고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25%의 높은 관세장벽을 쌓아놓고 있는 픽업트럭까지 조기철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고배기량의 대형 차량위주인 미국차에 유리하도록 현재 배기량 기준인 자동차 보유세, 특별소비세를 가격 등 다른 기준으로 바꾸고 환경.기술표준도 개편할 것, 그리고 미국 자동차 회사의 부담을 감안해 2009년부터 시행될 자동차 배기량 진단장치 의무 장착을 연기할 것도 요구목록에 올려놓고 있다.

미국 의회와 업계는 ▲한국측 수입관세(8%)만 즉시 철폐 ▲미국측 수입관세는 한국의 수입량 증가를 감안한 장기 철폐 ▲픽업트럭 관세는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자동차가 딜-브레이커(협상결렬요인)는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고위급 절충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농산물 역시 한.미 양국이 서로 언급을 꺼리는 쌀을 제외하더라도 쇠고기,돼지고기,낙농품, 오렌지 등 민감품목에서 견해차를 해소하지 못했다.

우리측은 일정 정도 민감품목을 인정해주면 해당품목의 민감도를 반영해 저율할당관세(TRQ) 등으로 미국 농산물의 진출길을 열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미국은 고위급 회담 막판까지 '예외없는 관세철폐' 요구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미측은 TRQ나 계절관세 등의 운영방식과 물량 결정 등의 행정절차 투명성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게 우리측 협상단의 설명이다.

◇ 무역구제.개성공단은 '일단 덮어두기'(?)
양국이 협상시한을 30일로 설정하면서 일부 쟁점은 '빌트인'(built-in) 방식으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끝장 협상'에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은 일단 덮어두고 간다는 이야기로, 무역구제와 개성공단이 그 대상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무역구제는 지난 4차 협상에서 우리측이 '제로잉' 금지를 포함, 모두 14개 요구사항을 전달한 뒤 5차 협상에서 이를 '비합산조치' 등 6개항으로 축소했으나 미측이 "법률 개정사항은 불가하다"고 고집해 양측 모두 퇴로가 막힌 상태다.

우리측으로서는 협상 초기부터 무역구제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이라고 강조해왔기에 후퇴하기에는 대내 협상에서 명분이 서지 않고, 미국 역시 무역구제법 개정에 미 의회가 강하게 반대하는데다 입법기술상 이미 법률 개정 필요성을 의회에 통보해야 하는 시한을 한참 넘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측은 법률 비개정 사항인 무역구제협력위원회 정도에만 합의한 뒤 우리측의 나머지 요구사항을 '추후 논의'대상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한사코 거부하는 개성공단 문제도 비슷한 상황이다. 6자 회담을 통한 북-미 관계개선은 이제 물꼬를 튼 수준이어서 미국이 개성공단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미FTA에 부정적이지 않은 인사들까지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없는 FTA는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일단 역외가공제품의 관세특례 인정 근거규정만 만든 뒤 개성공단 포함여부를 추후 논의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해결은 타결 그 자체를 위한 '협상기술'은 될 수 있어도 실질적 해법이 아니라는 지적이 정부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개성공단의 임금은 중국보다도 훨씬 싸고 활성화될 경우 섬유.의류 등 경공업 제품이 주산품이 될 것"이라며 "섬유 등에서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고려할 때 북미 관계가 호전되더라도 미국이 이들 제품을 무관세로 수입하도록 하게 해줄 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 방송.금융.ISD.섬유도 만만찮아
서비스.투자.금융분야에서 방송.통신시장 개방과 금융분야 일세 세이프가드,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등도 미해결 쟁점이다.

미국은 방송.통신.시청각 분야에서 ▲방송 국산쿼터제 완화 ▲외국어 더빙 보도채널 허용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업(PP) 및 기간통신사업자 외국인 지분제한 완화 ▲주문형 비디오(VOD) 등의 강도높은 개방 요구를 막판까지 접지않고 있다.

하지만 문화주권 문제나 정치적 부담, 여기에 도하개발어젠다(DDA) 등 다자협상에서의 대응수위을 고려하면 우리측이 이들 부문을 양보하기란 쉽지않을 것이다.

아울러 외환거래법에 규정된 금융분야의 단기 세이프가드를 미국측에 인정받으려면 이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부대조건과 함께 이를 ISD 대상으로 해야한다는 요구도 1997년 외환위기 경험을 고려하면 우리측이 수용하기 어렵다.

ISD에서 부동산과 조세정책 등을 제외하는 문제는 실무협상에서 진전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 20일 미 의회 청문회에서 미측이 후퇴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면서 다시 미로에 빠졌다.

지난 주 얼굴을 붉히고 헤어진 섬유는 차관급이 나선 고위급 절충에서도 "진전시켜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은" 수준의 개선밖에 이루지 못했다. 미국은 국내업체의 폭넓은 경영정보를 미측에 제공해줄 것과 미국에 수출하지 않는 섬유.의류업체에까지 현장실사를 허용해줄 것 등 과도한 요구를 접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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