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이 발 풀자, DJ가 입 묶어"

"동교동계 없어..언론도 그런 표현 안썼으면"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정윤섭 기자 =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朴智元)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1일 근 4년 만에 처음 입을 열었다. 지난 2003년 봄 대북송금 사건 수사에 휘말리면서 입을 닫았던 그였다.

그간 비공식적으로, 또는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지인이나 언론인들을 만난 적은 여러번 있었지만 보도를 전제로 기자와 자리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박 전 실장은 이날 시내 한 음식점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사면을 통해 제 발을 풀었지만, 김 전 대통령은 (나를 비서실장으로 임명해) 입을 묶었다"고 서두를 열었다. 복권 조치가 되지 않아 반쪽만 자유스런 상황이고, DJ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만큼 함부로 얘기를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체중이 사면 이후 3-4㎏ 가량 늘었다는 그는 "최근 사람들을 만나면서 과식을 하는 바람에.."라며 예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박 전 실장은 "언론과 보도를 전제로 얘기하는 것은 (사면 이후) 처음"이라며 수첩에 촘촘히 적어 놓은 메모를 보면서 얘기했고, 최근 정국 상황을 묻는 질문에는 "4년여 동안의 수사.재판.수감 기간 6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녹내장으로) 눈도 잘 안보이게 돼서.."라며 즉답을 피해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는 내가 공개적으로 말할 일이 없을 것"이라면서 "공식적인 언급은 (공보담당인) 최경환(崔敬煥) 비서관을 통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박 전 실장과의 일문일답.

--김 전 대통령이 연말 대선에 개입할 것이라는 얘기들이 많은데.
▲김 전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 개입 안한다. 김 전 대통령은 정계개편과 대권후보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전직 대통령, 국가원로로서 원론적 차원에서 이번 대선에서 정책대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 국민은 대통합을 통해 양당제를 원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저도 이 같은 대통령의 원칙에 따라 대권후보 등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에서 DJ가 대선의 엄청난 변수가 될 것처럼 보도하는 경우도 있던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한반도 해빙국면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역할론이 재부상하고 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방북하지 않느냐, 북한과 어떤 채널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는 분명하게 별도의 대북 접촉창구를 갖고 있지 않다. 김 전 대통령은 일관되게 남북문제 논의는 다양하게 하되 창구는 정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정부를 통해서만 협의할 것이고, 북측하고는 퍼스널한 채널이 없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방북보다 정상회담이 꼭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6.15 정상회담 정신에 따라 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해야 하고, 다음 대통령도 정상회담을 정례화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래서 `

지금 잘되고 있는데 내(DJ)가 가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에 방북을 하시겠다고 했을 때도 6자회담이 잘 안되고 있어 당신이 가셔서 6자회담 재개, 북미 관계 정상화 등의 돌파구가 되기 위해 허심탄회한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때도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 역할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2차 남북정상회담 전후에라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과 노 대통령의 (방북)부탁 말씀이 있으면 북한에 가서 의미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홍업씨의 4.25 무안.신안 보궐선거 출마에 대한 입장은.
▲홍업씨는 억울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홍업씨가 지난 2002년 이권청탁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것과 관련돼) 그 사건에 대해 진술을 했던 분이 작년에 만기출소해 양심선언적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은 홍업씨에게 재심을 청구하라고 했지만 서초동에 갔다온 사람은 서초동에 다시 가기 싫어한다.(다시 재판에 휘말리기를 싫어 한다는 취지) 김씨 출마 문제에 대해선 제 나름대로 정리해서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범여권 대통합 과정에서 동교동계의 물밑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2002년 12월31일 김 전 대통령이 저를 불러서 저녁식사를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제 "노무현 시대가 열린다. 나를 위해 수고한 동지들이 정치적으로, 인간적 활동에서도 성공하기 바란다. 그러나 동교동계로서 집단적 정치활동은 시대정신에 어긋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이러한 원칙에 변화가 없다. 김 전 대통령은 고락을 같이 했던 분들이 정치적으로 인간적으로 성공하기 바라지만, 그 분들이 동교동이라는 이름을 걸고 집단활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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