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사 [전문]

학동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진의 입니다.

먼저,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기억하여 걸음 해주신 내외빈 및 언론사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우리 곁을 떠나고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예제하
ⓒ예제하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려 하는 우리는, 하루하루 각자의 방법으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아니요. 사실은, 아직도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건설 쓰레기에 짓눌려 내가 왜,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떠난 분들과 함께 2년 전 그날, 6월 9일에 그대로 멈춰 있습니다.

참사 직후 지낸 추석 추모제부터 오늘까지 벌써 세 번째 추모제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추모사를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그분들을 만나기 전까지, 살아있는 동안 매년 6월 9일에는 고인들께 편지를 쓰고, 우리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할 것입니다.

2년전 우리 유가족협의회는 크게 다섯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첫 번째. 누구에게나 납득 가능한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처벌

두 번째.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세 번째. 관련 법규 강화와 재발방지대책

네 번째. 남은 가족의 일상 회복을 위한 지원

마지막 다섯 번째로 고인과 남은 가족들, 지역과 사회가 공유할 수 있는 추모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원칙은 우리의 존재 이유이자 마지막 단 한 명의 가족이 세상에 남는 그 날까지 변치 않습니다.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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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원칙인 참사원인 규명과 책임자처벌에 대해 현재까지의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원인 규명은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에 대해 저희가 반박할 수 조차 없어 수용했습니다.

하지만, 책임자처벌은 아직도 모든 관련자의 재판이 끝나지 않아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 수 없는 여전히 답답한 상황입니다.

또한, 구속된 이들과 1심까지 결정된 그들의 형량은 유가족 입장에선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계속 지켜보는 것밖엔 방법이 없습니다

두 번째 희생자의 명예회복입니다.

참사 초기부터 입에 올리기도 거북스러운 유언비어들이 난무했습니다.

“유가족이 거금을 보상받았다.”

“그 자리에 새로 지어질 아파트를 한 채씩 받는다더라”

고인과 유가족을 괴롭히는 소문들을 더이상 참을 수 없어

유가족협의회의 입장문을 발표하기도 하고, 기자님들을 통해 기사도 내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소문은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 그 어떤 사람이 내 부모 형제 자녀가 처참히 짓뭉개진 그 자리 위에서 먹고 자고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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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원칙인 관련 법규 강화와 재발방지대책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참사 초기엔 사회적 관심과 이슈화로 국회와 정부 차원에서의 많은 협의가 있었지만, 여러 중요한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 머물러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참석해주신 의원님들께 부탁드립니다.

처음 저희와 만나 약속하셨던 책임자 처벌강화와 재발방지법안을 만들어 주십시오.

네 번째, 유가족의 일상 회복과 다섯 번째 추모공간 마련은 공통되는 부분입니다.

지난 2년간 저희는 추모공간 마련을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습니다.

광주시와 동구청 담당자들,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도 참석해주신 시민협의회분들과 함께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 의논과 회의들은 결과 없는 탁상공론의 연속이었고, 결국은 유가족인 제가 가족을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 측인 조합, 그리고 시행사 현대산업개발을 찾아 협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희가 원하는 추모공간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거창한 비석과 건물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덟 사람이 다치고 아홉 사람이 죽어 나간 그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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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의 광주학동참사유가족협의회 대표. ⓒ예제하

그 자리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상가와 아파트가 올라가는 대신, 억울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작은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 딸이 그리울 때 찾아가 어루만질 수 있는 나무가 심어진 그런 작은 공간을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조합의 반대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물론, 조합원들과 그곳에서 소중한 보금자리를 꾸릴 분들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인근 주민들도 편히 쉴 수 있고, 남은 유가족이 떠난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는 곳, 모두를 위한 그늘이 있는 공간 마련을 위해 여기 이 자리에 함께하고 계신 분들, 그리고 관계자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추모제 준비를 위해 힘써주신 광주시청 문길상 팀장님, 동구청 이상철 계장님 이하 모든 분께 감사 인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도움과 지원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어머니께 올리는 편지로 추모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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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임종숙 권사님께 드리는 편지

엄마 잘 지내고 계시죠?

당신 인생에 평생을 마음 고생시키며 말도 안 듣던 부족한 둘째예요.

아빠와 우리 삼 남매, 며느리, 손자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매일매일 지켜봐 주시고 있는 거 잘 알아요. 다 엄마 덕분이에요.

같이 계실 다른 여덟 분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저는 계속 이쪽에서 계속 대표를 하고 있어요,

힘이들때도 있지만 엄마와 같이계실 여덟분들 보시기에 부족하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변해가고 아이들은 크고 있어요.

그래도 우리에게 엄마는 젊고 예쁘고 항상 유쾌한 모습 그대로예요.

우리 남매들이 다 같이 모이는 날이면 형님네 쇼파에 앉아 흐뭇해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그대로 맺혀있어요.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나 지금도 우리 모임의 마지막은 늘 눈물로 마무리되지만요.

다른 두 형제보다 더 많이 엄마 속을 썩인 못난 아들이어서 정말 죄송해요. 제가 엄마를 만나는 그날까지, 하늘에서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아들로 살아갈게요.

제가 방황하고 힘들어할 때면 해주셨던 말씀 ‘숨만 부지런히 쉬면 다 살아져’ 그 말씀 잘 기억할게요.

그럼 엄마 또 편지할게요. 사랑합니다.

둘째 진의 올림.

2023년 6월 9일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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