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비>는 ‘사라진 엄마 찾기’라는 명확한 목표를 초반부터 강하게 주지시키며 이를 이야기의 주요 동력으로 활용하는 영화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의 엄마가 사라진 시점부터 영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의 초반부터 여러 의문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왜 사라졌는가부터 주인공은 왜 그리 엄마에게 무심했는가 등과 같은 여러 의문들이 머릿속에 맴돌게 되지만 뒤이어 전개되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이는 모두 영화의 주제를 더욱 강조하기 위한 이송희일 감독만의 치밀한 서사 구성이었으리라, 깨닫게 된다.

ⓒ시네마 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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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로 플래시백 되는 구성을 지닌다. 주인공 호연은 돈밖에 모르는 건설회사 임원으로 근로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올곧지 못한 인성의 소유자다.

그는 영화의 초반 ‘엄마 찾기’라는 모험에 선뜻 응하지 않는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호연의 아버지이자 건설회사 사장인 현수 역시 아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처럼 영화는 무언가 어긋나도 제대로 어긋나 있는 부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개발’이라는 지극히 남성적인 도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이들 부자가 ‘미래’의 성장만 좇는 모습은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들과의 만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각별한 함의를 드러낸다.

이를테면 이들과 대척되는 지점에 있는 호연의 엄마인 작가 은숙과 아내인 무용수 은미의 서사와 만났을 때 그렇다.

‘개발’과는 또 다른 가치의 ‘예술’을 표상하는 이 두 사람은 미래의 성장만 바라는 호연 부자와 달리 과거 역사적 아픔을 글과 몸이라는 예술적 수단으로 각각 표현한다. 

은미가 행방불명된 은숙에 대해 유일하게 걱정하는 가족이라는 설정 역시 두 인물 사이에만 존재하는 내밀한 끈이 있기 때문.

이와 반면 호연은 아버지가 설파하는 미래의 비전만 바라보며 이들이 짓고 있는 고층빌딩만큼 우월한 성장 중심 자본주의 사회에 그저 순응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시네마 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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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어느 날 호연은 이혼서류를 들고 찾아온 은미로 인해 마음에 변화가 생긴다.

아내의 권유로 인해 난생처음 엄마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고 행방을 수소문한다.

그녀가 집필한 ‘제비’라는 책에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젊은 시절 군부독재에 대항하여 학생운동을 펼쳤던 엄마.

언제나 발에 땀이 차도록 뛰어 다녀 땀띠를 달고 살아 별명마저도 ‘땀띠’였던 엄마의 자전적 이야기, 그 안에는 왜인지 아버지 현수보다 ‘제비’라는 인물이 더 자주 언급된다.

분명 엄마는 이로 인해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 호연은 이 미스터리한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고 마치 앨리스가 시계 토끼를 따르듯 ‘제비’라는 인물을 쫓아 책 속의 과거로 빠져든다.

그렇게 책 속 이야기는 스크린 속 이미지로 소환되어 관객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관객은 호연과 함께 과거로의 여정을 떠나 80년대 청춘들의 뜨거운 열정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게 행방불명된 엄마를 찾기 위한 단서를 발견하려는 과거로의 여정은 그간 호연이 몰랐었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여정과 중첩되어 간다.

이때 40년 전 과거와 현재에 발생하는 갖가지 사건들을 얼키설키 엮어내는 교차편집은 이 영화에서만큼은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미덕처럼 자리한다.

현재와 과거의 교차의 과정 속에 독재정권 타도 민주화 운동, 동지애와 변절, 사랑과 혁명, 질투, 공포, 배신감과 같은 각종 키워드들이 사이사이 부유하며 각각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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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 감독은 “한국사회가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사이사이 역사적 망각이 있는 것 같다”면서 “민주화 운동을 겪었던 부모 세대와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 앞만 보는 자식 세대 사이의 부딪힘에서 어떤 몽타주가 나올까 궁금했다”는 연출의도를 전한 바 있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 부모와 자식 세대의 ‘사이 공간’을 드러내며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다양한 사유 지점을 제시한다. 

이로써 <제비>는 스크린 안에서의 대안적 역사 공간으로써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유효할까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영화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과거를 잊지 말자는 뻔한 이야기였을까.

이보다는 아마도 80년대 그토록 외쳤던 민주화 '정신'을 잊지말자며 이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것이라 짐작해본다. 

누군가는 그 시절 독재 정권이 단지 싫어서, 혹은 주위 친구들이 모두 시위를 하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을 따르다가 동참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는 당시 진심으로 민주화를 외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먹고 사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혀 그 정신을 어느 순간 잊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참여자 대다수는 제비와 은숙처럼 진심으로 민주화를 염원했고 현재에 와서도 여전히 이 정신을 실천코자 하는 학생, 시민들이었겠지만 말이다.

ⓒ시네마 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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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의도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모두 같은 목표로 향했더라도 각기 처한 상황과 이후 펼쳐진 삶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영화는 섣불리 ‘민주화 투사’라는 하나의 프레임에 갇혀 성급히 일반화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말한다.

과거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단일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개별적 관점을 지닐 것을 조심스레 제안한다.

그렇기에 영화 속 과거의 투사들이 현재에 와서는 ‘변절’까지는 아니여도 그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변질’(민주화 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등)된 사례들을 영화가 굳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도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시도가 스크린 밖 현실의 특정한 누군가를 겨냥한 칼이라고 생각해선 안될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향해 있는 칼날이며 이를 통해 반드시 깊은 사유가 따라야 할 하나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과거의 그 뜨거웠던 의지의 형상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나아가 오늘날에는 이 혁명의 불꽃을 어떤 형태로 재점화할 수 있을까. 여러 고민의 지점을 영화는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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