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년 “일과 쉼을 부른 지리산과 섬진강에 안착”
구례 귀농귀촌센터 입교 한 달 만에 오리농장 선택
정씨 "가족들도 만족도 높아, 스스로 공부도 중요"

이번 삶의 현장 네 번째 손님은 정효영(54)씨다.

2021년 4월, 귀농 후 정씨는 2년째 오리농장을 운영 중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24일 전남 구례 용방면으로 향했다. 생업의 현장인 농장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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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에 귀농 2년 차, 오리농장을 운영 중인 정효영씨. ⓒ광주인

●기자 :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귀농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다면?

●정효영씨 : 원래 시골에서 태어나서인지 시골에 대한 향수나 그리움이 있었다.

애들 키우고 시골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애들이 어느 정도 크고 자립할 정도가 되니 귀농을 결정하게 됐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전형적인 사례인 것 같다.

그 역시, 귀농 전까지 도시인의 삶을 살았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산단에서 생산팀장으로 근무했다.

고무 제품 1차 가공업체로 대기업인 금호, 한국타이어에 납품하는 회사였다.

16년 이란 직생 생활의 무게만큼, 생산팀 중간관리자로서 관리해야 할 직원들도 늘어나고, 나이가 들수록 더 힘들어졌다고 말하는 정씨.

도시 생활에 대한 장점도 많았지만, 그는 가족들과 상의 후 더 나이 들기 전에 회사를 정리하고 시골 생활을 결심했다.

많고 많은 귀농지 중 왜 구례를 선택했냐고 물었다.

이에 정씨는 “구례 토박이인 친구 추천이 결정적 역할을 했고, 지리산과 섬진강의 풍광도 좋아 선택하는데 한 몫을 했다”고 말했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초기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오리농장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다.

그는 “귀농 결정 후 3월에 구례 귀농귀촌센터에 입교했고, 4월에 오리농장이 매물로 나와서 바로 인수하고 오리농장을 하게 됐다”며 빠르게 정착하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고 회상했다.
 

시골의 그리움에 구례를 선택했다

의지가 강한 만큼 구례군 귀농귀촌센터 졸업 후 그는 많은 혜택을 받았다.

시골 인구감소로 귀농의 적극적 장려와 행정 지원 등 받을 수 있는 혜택들을 다 받을 수 있도록 귀농센터직원분들이 힘이 돼 주었다.

이런 도움 때문이었는지 그는 가족 구성원들에게도 구례 귀농을 적극 추천했고, 구례 귀농귀촌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행정기관의 도움이 많다고는 하지만 본인의 노력도 필요한 부분이 많은 게 귀농이다.

특히, 오리농장을 어떻게 운영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가 많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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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영씨가 농장 안에서 새끼오리를 돌보고 있다. ⓒ광주인

●기자 : 오리농장 운영은 잘 되시는지?

●정효영씨 : 계열사에서 오리 새끼부터 사료, 출하까지 다 해주기 때문에 저는 오리만 잘 기르고 거기에 맞는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때문에, 사료비나 기타 큰 부담이 없어 부지런하면 이겨 낼 수 있는 게 오리농장 사업이다.
 

정씨는 “계열사와 계약을 맺고 오리를 입주해서 기르고 출하하기까지 약 2달 정도가 걸린다”며 “1년에 6회전까지 가능하고, 저희 농장의 규모가 2만5천 두를 키울 수 있기에 수입이 괜찮은 편이다”고 잘한 선택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오리의 경우 겨울철 조류독감으로 인한 살처분 등도 많아서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에대해 정씨는 “다른 작물이나 가축도 마찬가지다. 진인사대천명이다”며 “주변 공동사육장과 매일 그리고 언제나 예방 차원의 소독을 철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행정기관에서도 가축 전염성 질환에 대한 예방적 소독과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며 “최선을 다할 뿐이다”고 말했다.

더불어, 귀농 결정에 묵묵히 믿고 따라준 가족들에게 늘 감사할 뿐이다는 고마움도 표현했다.
 

■귀농귀촌센터에서 회전 빠른 오리농사를 선택하다

귀농을 결정하고 오리농장을 운영하기까지 애타고 마음 조리는 건 역시 가족이었음을 보여주는 정씨의 말이다.

이와 관련 현재 가족들의 생활 만족도를 물었다.

정씨는 “큰애는 이미 직장 생활 중인데, 시골의 삶을 더 동경하고 있어 귀농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작은애는 광주 수완지구 고등학교에서 3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이곳 구례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군생활 중이다”며 “저도 그렇고 애들도 그렇고 더 일찍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 정도로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도시 교육도 좋지만, 시간과 여유로움이 더 넉넉한 시골 교육에 높은 만족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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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잠깐 눈을 돌리면 지리산 노고단 능선이 한 눈에 보인다.
ⓒ광주인

이 같은 시골 생활의 여유로움을 더 즐기기 위해 그는 요즘 가족 여행도 다닌다.

지난 2월엔 가족 모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한 일이다고 했다.

오리 출하 후 새끼가 들어올 때까지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생겨서다.

또한, 올해는 여유 시간을 더 보람있게 보내려 감자도 1500평이나 심었다.

그리고 구례에서는 락페스티벌이나 기타 공연도 자주 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도시 보다 더 좋은 문화 혜택을 누린다고 구례를 치켜 세웠다.

그는 요즘엔 마당에 빔 프로젝트를 설치해서 모닥불 피워놓고 영화도 감상하면서 나름 문화생활을 즐기는 귀농 2년 차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편안함이 있기까지 귀농 1년 차에 많은 어려움 있었다고 말하는 정씨.

생물을 키우다 보니, 새끼 오리가 왜 아픈지, 아픈 새끼는 어떻게 구분하는지 등 수많은 고민거리에 휩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리를 키우는 방식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다르다며 최소 1년은 열심히 공부하고 주변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마을 주민들과의 유대관계도 항상 변수로 작용한다는 귀농생활.

정씨는 어떻게 극복해 냈는지도 궁금했다.
 

슬기로운 구례 생활 ...“부지런해라” “스스로를 위해 공부해라”

●기자 : 힘든 점이 있었다면?

●정효영씨 : 아무래도 초보라 기초 지식이 부족해서 처음 1년 동안은 상당히 고전을 했다. 결국엔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행착오를 겪고 버텨내야 해결이 된다.

●정효영씨 : 또한, 마을 분들과의 유대관계도 잘 형성해야 한다.

마을 행사엔 적극적 참석, 의용소방대와 농민회 활동도 필요하다.

특히, 대부분 토박이 어르신들은 연세가 많으시다.

해서, 정씨는 “주변 밭에 농사짓는 분들 땅을 트렉터나 관리기로 먼저 갈아주기도 하면서 함께 하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며 솔선수범할 것을 권했다.
 

그러면, 시골 어르신들이 좋은 농지도 거저 지으라고 하시고, 좋은 일들도 많이 소개해준다는 경험을 들려줬다.

부지런하면 먹고살 수 있는 일이 딸려 오는 게 바로 ‘슬기로운 시골 생활’임을 알려 준 셈이다.

여기에, 새로움에 대한 기록과 분석을 통해, 자신만의 일기를 작성하고 월별 연도별로 분석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경험을 축적하고 자신만이 갖고있는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정씨는 여전히 노트북에 오리농장 일기를 쓰고 데이터화해 오리사육에 적극 활용하는 부지런함과 치밀함을 보였다.

정씨 역시 광주에 살면서 큰 병원의 중요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광주에서도 살았지만 여기나 광주나 큰 병원 가는 데는 차이가 없다”며 “ 서울로 가는 일은 광주나 여기나 똑같고, 가까운 순천에도 큰 병원이 있어서 아직까지 불편한 점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정씨는 조그마한 밭을 구입, 감자를 심었다. 더 바빠졌다. 또한 오리농장 일지를 매일 작성하고 월별로 비교 분석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br>ⓒ광주인
최근 정씨는 조그마한 밭을 구입, 감자를 심었다. 더 바빠졌다. 또한 오리농장 일지를 매일 작성하고 월별로 비교 분석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광주인

순천은 30분 거리, 광주는 1시간 거리라서 어려움 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귀농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의 편안함을 느낀 그 역시, 도시로 다시 나갈 생각은 전혀 없다.

오히려, 정효영씨는 구례 완전 정착을 위해 조만간 땅을 매입해 근사한 집도 짓고 주변 지인들에게 시골 생활을 적극 추천할 생각이다.

“시골로 와서 사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시고 준비를 많이 해야 하고, 남들보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눌 줄 알고 살면 더 좋은 시골 생활이 됩니다”

인터뷰 끝에 정씨가 귀농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라며 전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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