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에 귀촌 막노동, 33살 귀어 뱃일 시작
힘들었지만 “획일적이지 않은 시골살이가 천국”
통발업 2년차...고흥군의 행·재정적 지원에 감사

현재, 35살의 어엿한 청년 어부

김달환 씨가 자신의 배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주인
김달환 씨가 자신의 배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주인

그는 32살 때 귀어가 아닌 먼저 귀촌을 결심하고 전남 고흥을 찾았다.

고흥 귀촌 살이 1년 후 바닷일을 배워 다시 귀어 전환을 결심했다.

현재는 통발업을 하는 어엿한 어부 2년 차 삶을 살고 있다.

고흥군 영남면 남열해수욕장 인근 바다 풍경이 아름다운 그곳에서 지난 13일 그를 만났다.

삶의 현장 두 번째 이야기다.

김달환 씨의 첫인상은 역시, ‘젊다’였다.

대화에도 거침이 없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한다.

요즘에 말하는 MZ세대다.

서울 강남 8학군에서 학교를 다녔다.

30대 초반까지 도시의 삶을 살았던 그가, 갑자기 귀촌을 결정하게 된 배경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직장생활 이력으로 그는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요식업 등 사업을 주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한창이던 2019년 6월쯤 마지막으로 했던 요식업이 팬데믹의 여파를 넘지 못했다.

당시, 서울 이태원에 대형 3층 식당을 운영한다는 무게감과 사장이란 책임감이 그를 참 힘들게 했다.

힘들었던 만큼 그도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이후 한 달간 전남 해안가 여행을 떠났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남도를 이때 처음 가봤다.

그때가 2020년 여름.

그는 의외로 멋진 고흥 풍광과 인근 지역과의 교통 인프라가 좋아 고흥 귀촌을 결심했다.

곧바로 그는, 전라남도에서 진행한 ‘전라도 한 달 살아보기’를 신청했고, 맘에 들었던 고흥을 콕 찍어 정착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김달환 씨는 이에 대해 “현재 살고 있는 남열해수욕장의 아름다운 풍광도 좋고 사는 마을에서 5분만 가면 팔영대교를 거쳐 30~40분에 여수 시내를 거쳐 여수공항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흥읍도 마을에서 30분 안에 갈 수 있다”며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교통 편리성이 너무 좋음을 강조했다.
 

고흥 어르신들의 살가운 충고, “보물이 바다에 있다”

고흥우주발사전망대가 보이는 남열해수욕장. 김달환 씨 집에서 2~3분 정도 가면  해돋이와 서핑으로 새바람을 일으키는 드넓은 남열해수욕장이 나타난다. ⓒ광주인
고흥우주발사전망대가 보이는 남열해수욕장. 김달환 씨 집에서 2~3분 정도 가면 해돋이와 서핑으로 새바람을 일으키는 드넓은 남열해수욕장이 나타난다. ⓒ광주인

고흥 귀촌 1년 동안 김 씨는 인력사무소에 나가 막노동, 농장, 공장 등을 떠돌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이런 김 씨를 꾸짖으며 바닷일을 권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고흥 어르신들이다.

“젊은 사람이 왜 시골에 와, 막노동을 하느냐”며 “바다에 가면 보물이 있으니, 바닷일을 해보라”고 했다는 것.

하루하루 근로 현장에 나가는 거나, 도시에서 출근하는 거나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꼈던 김씨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동네 어르신들이 추천한 귀어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은 젊기에, 지자체의 지원에 의지하기보다는 우선 바닷일을 알아야 하기에 선원 모집공고를 보고 선원이 됐고 이후 어부에 대한 가르침을 1년 동안 배우고 익혔다.

김 씨는 그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도시 놈이 언제 바다 한가운데서 험한 뱃일을 해 봤겠습니까?”라며 “단지, 힘이 있고 젊기에 버텼고 도시 생활보다 더 좋아 질거라는 희망을 안고 견뎌냈다”고 말한다.

도시 생활에서 고흥 귀촌, 이후 다시 본격적 바닷일을 선택한 김달환 씨.

현재 어부의 생활인이 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씨는 자신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주변의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오래전부터 어부의 삶을 살고 계시는 고흥 토박이 분들의 지도와 배려에 다시 한번 그는 감사의 머리를 숙였다.

여기에, 행정기관을 통한 선박의 허가, 귀어 귀농인에 대한 고흥군 인구정책 담당 공무원들의 교육과 협조 등도 자신이 자리를 잡기까지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현재의 나를 가르쳐준 고흥 사람들

언제나 처럼 김 씨는 생업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광주인
언제나 처럼 김 씨는 생업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광주인

현재 김 씨는 마을 현지 분들의 소개로 시골집을 매입하고 내부를 조금 리모델링 후 살고 있다.

사는 데 전혀 불편이 없다고 한다.

시골 어르신들의 말처럼 보물이 바다에 있다는 말이 요즘 들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고 한다.

현재는 고흥의 행정기관 협조와 금융기관의 도움으로 대출을 통해 어업이라는 생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 씨.

초기 귀어 생활이어서 빠듯한 살림이지만 머릿속이 안 복잡하고 편해지다 보니 처음 귀촌할 때보다 10kg 정도가 몸무게가 늘었다.

대화 속에서 고흥 귀어 살이의 고생스러움도 있지만, 맘의 편안함이 많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특히, 김 씨는 귀어 귀농에 대한 정책적 지원프로그램 등이 있으면 고흥군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와 참여를 유도하고 홍보까지 한다며, 공직자들의 수고스러움에 고마움을 표했다.

전남 고흥군의 인구정책 부서에서는 귀농귀어귀촌에 대한 창업, 주택자금 지원 등 다양한 혜택 등이 많은데, 어떻게 활용하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귀어자금을 최대 3억까지 지원해 주었다”며 “1년 동안 선원 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익혀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아 신청을 했고, 지금도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봄엔 주꾸미, 여름엔 문어, 겨울엔 물메기를 잡아, 지난 귀어 1년 동안 선장으로서 배를 탔고 운 좋게도 고생은 됐으나 수입은 꽤 잘 나왔다고 얼굴에 웃음기를 띄웠다.

그리고 그는 현재 귀어를 결심하고 준비한 사람들에게 몇 마디를 건넸다.

각 자치단체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귀농귀어귀촌 프로그램도 잘 파악하고 누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고흥의 경우 주기적으로 귀농귀촌학교가 개설돼 많은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흥은 월세 10만 원에 3개월을 살 수 있기에 다양한 시골 경험을 먼저 해보길 권했다.

그 후, 귀어 귀농 귀촌을 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바닷일을 결정 할 경우 바로 배부터 구입하지 말고 힘들더라도 선원생활을 최소 6개월 이상은 해 보길 권했다.

1~2개월의 선원 생활이 2~3년 더 빠른 귀어의 성공을 부른다고 강하게 강조했다.
 

개인 생활은 ‘도시’, 협업이 필요하면 시골 생활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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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배 조정관에서 생업의 현장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김달환 씨.
ⓒ광주인

MZ세대 임을 고려해 문화생활의 부족한 점이 없는지도 물어봤다.

이에 대해 김달환 씨는 “약간의 현장감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요즘은 과학기술이 너무나 좋아 PC나 태블릿, 스마트폰으로 다 해결이 가능해 크게 불편한 점이 없다”고 말한다.

이어, “집에서 혼자 독서하고 영화보고 음악도 들으며 개인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부족함이 없음을 알렸다.

현재 그는 미혼이다.

결혼계획을 묻자,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고 결혼 후 고흥 살이를 이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태어날 자녀에 도시 교육의 필요성을 묻자 김 씨는 “물질적 장막이 없는 인터넷을 통한 교육프로그램의 다양성과 고흥 교육 인프라를 믿고 싶다”며 “도시 학생들의 힘겨움을 저희 아이들에게까지 전해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해 교육의 분야의 자기주장을 확실히 전달했다.

또한, 혹시 아는 지인들이 주변에 같이 있으면 더 좋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기존의 사회적, 문화적 사고방식을 깰 수 있는 친구라면 권유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고 평범하고 일반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친구라면 극구 반대한다”고 말했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김 씨는“평범한 도시 생활은 말 그대로 개인위주의 생활이다”며 “시골 생활의 이웃 간 협업이나 공동작업 등이 오히려 도시인들에게는 문화적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주의적 도시의 삶을 이해는 하지만 시골의 독특한 문화인 협업문화란 차원을 이해하지 못하면 차라리 안 오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시골과 작은 지역의 협업, 상호 소통 문화를 그래도 이해하고 노력해야만 좋은 귀어나 귀촌이 잘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중요한 포인트로 해석된다.
 

편안한 사고방식이 천국을 만든다

아담한 그의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열정으로 꼭 성공도 하고 더불어 잘사는 귀어 생활을 하길 바래본다. ⓒ광주인
아담한 그의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열정으로 꼭 성공도 하고 더불어 잘사는 귀어 생활을 하길 바래본다. ⓒ광주인

현재 김 씨는 어부지만 개인사업자로 사장이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직장인보다 자유롭기 때문에 만족스럽고

어부라는 직업도 어쩌면 전 세계 문명권 도시에 남은 마지막 수렵채집인이라 재미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자기가 노력한 만큼 경제적 이익을 가져가기 때문에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도시 생활의 그리움에 대해선, 다른 중소도시에서 또 살아볼 수는 있으나 서울 생활은 생각도 하기 싫다고 딱 잘라 말했다.

만남의 끝에 그는 “그래왔기 때문에 그래야만 하는 것, 남들이 해야 하니까 나도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실 수 있는 분들에게 시골은 천국이다”며 MZ세대다운 의미 있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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