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작가탐방은 내면의 깊은 곳의 감정과 기억의 심상을 추상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는 강지수 작가를 계림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대형 캔버스 작품들이 보였다.

눈에 띄는 작품을 먼저 스캔한 후, 몇 마디 나누어보니 작가도 그의 작품처럼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였다.

강지수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강지수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그 공간에서 그의 주변으로 공기가 침잠하는 느낌이 들었다.

세포 같기도 하고, 곡식의 낟알 같기도 하고, 원시 생명체 같기도 한 화면 위의 ‘무늬’ 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패턴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빠르게 그려낸 단순한 무늬들이 아님을 알게 된다.

무수한 긁힌 자국과 그 흔적 밑으로 보이는 겹겹이 쌓인 색, 그리고 그 위에 얹어진 하나하나 다른 세포 같은 무늬들이 두텁게 찍혀있다.

그에게 있어 작업하는 행위는 캔버스에 물감을 올리고 긁는 반복적 행위를 통한 자기 수련 혹은 치유이다.

혹은 스스로 견뎌야 할 어떤 행위이자 자기 자신을 극단으로 몰고가서 그 감정의 끝을 마주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어머니, 기억의 심상들

초반 작업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감정들과 상처들을 마주하고자 했던 시도였다면, 최근 청주에서 열린 개인전 「자유로운 여자」는 더욱 진짜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자 했던 전시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의 작업이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와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머니와의 파편적 기억,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그는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어머니와 함께 노을을 봤던 기억을 스스로 환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때 보았던 풍경들이 여러 기억들과 오버랩되고, 잊고 있었던 오래된 감정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잊혀진 모습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기억, 이 모든 것이 흔적이라고 생각해 그의 캔버스에 물감을 올리고 긁기 시작했다.

중첩된 기억과 흔적들은 물감을 올리고 긁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기억이라는 것이 그때와 지금의 감정들과 뒤섞여, 사실은 구체적인 형상을 띄는 것이 아니라 아련한 잔상으로 남는데 그는 그러한 순간의 장면들이 가진 심상들을 물감을 올리고 긁은 배경 위에 ‘세포’라는 또 다른 존재의 흔적을 남기며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존재의 흔적으로서 세포

강지수 작가- 존재의 흔적, oil on canvas, 45.5×37.9cm, 2022. ⓒ광주아트가이드 
강지수 작가- 존재의 흔적, oil on canvas, 45.5×37.9cm, 2022. ⓒ광주아트가이드 

그의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무늬들을 그는 ‘세포’라고 부르는데, 직접 세포를 관찰하여 얻은 구체적 형상이 아니라, 그것을 지칭하는 은유적 표현으로 보인다.

그림을 이루는 하나의 작은 단위이자, 태초의 자기 자신의 모습 같기도 한 그 세포들은 생명의 기운을 내뿜으며 캔버스라는 공간 안에서 꿈틀대고 있다.

마치 그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자궁에 대한 메타포이며, 이에 대해 그는 따뜻하고 어둡지만 가장 성스러운 공간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생명의 성소로서 어머니의 자궁과, 그 안에 존재하는 생명의 기호로서 그의 ‘세포’들은 스스로 뿜어져 나오고 생동하는 듯하다.

이는 ‘세포’라는 근원적 존재로 돌아가고자 하는 무의식적 발현이자 자신의 작업을 구성하는 일종의 무늬 혹은 흔적으로서 작용한다.

그는 흘러가는 시간과 존재의 흔적들을 표현하는 반복적이고 자기수양적 과정을 통해 감정의 끝을 마주하고 한층 자유로움을 느낀 듯하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관람자로 하여금 각자의 잊고 있는 감정들, 안고 살아가는 상처들을 어떤 태도로 임하고 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통화를 하실 때 옆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는 그는 훌쩍 성장했다.

어린 시절 그림들을 차곡차곡 다 모아두신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며 작가로서 이제 그 다음 단계를 향해 도약하고 있다.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한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1호(2023년 4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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