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kg. 쉬이 감당하기 어려운 몸집의 '찰리'는 애인의 죽음을 이후로 폭식을 통해 생명이 위험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음을 느낀 찰리는 동성애인을 만나기 전 아내 사이에서 낳은 딸 ‘엘리’에게 연락해 자신의 전재산을 줄테니 에세이를 써달라는 부탁을 한다.

ⓒ더 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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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웨일>은 퀴어, 종교, 가족이라는 세 주제를 결합해 결핍으로 인해 중독에 빠진 캐릭터들을 조명한다.

걷는 것조차 불가능한 찰리의 상황에 맞추어 영화 내 장소 또한 찰리의 집을 벗어나지 않는다.

연극인 원작의 구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한 남자의 인생 속 인물들의 집중도를 높인다.

한정된 장소 속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들이 연결된 모습과 과정이 연상된다.

그들의 결핍은 가족을 지키지 못한 것과, 좋은 부모가 되지 못했다는 죄책감 등에서 시작되어 폭식, 거식, 술, 반항 등 여러 형태의 중독모습으로 표현된다.

가정 내에서 동성애를 인정받지 못한 채 거식증을 앓으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앨런’은 찰리의 애인이자 그를 돌보는 '리즈'의 오빠이다.

그는 영화 인물들 중 먼저 죽음을 경험한 대상으로, 결핍에 따른 중독에 희생된 상징으로 보인다.

앨런을 죽음으로 이끈 결핍은 가족이다.

‘새생명’라는 종교에 소속된 그는 아버지가 정해준 짝과 결혼을 거부하다 이내 먹는 것까지 거부하게 되었고, 강가에 떠밀린 채 발견되었다.

이렇듯 영화는 가족이 불러일으키는 결핍과 구원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극 중 이전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으로 선교활동에 열성적인 새생명 선교사 토마스는 종교활동을 통해 구원받길 바라지만 자신의 잘못을 가족들에게 전달한 앨리를 통해 가족들에게 용서받게 된다.

종교가 아닌 가족에게 구원받으며 새생명을 놓게 된 토마스를 통해 가족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선명해지는 가운데 하나의 의문점이 생긴다.

종교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점이다.

애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종교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찰리는 자신의 딸과 오래전 헤어진 아내와의 만남을 통해 회개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앨리에 대한 부모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오랜 부재에도 불구하고 찰리의 몸이 더욱 위독해짐에 비례해 가족 또는 가족이었던 구성원들의 판단과 이해는 더욱 진해진다.

극에서 표현되듯 진정 자신에게 솔직해질수록 자기 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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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음을 앞둔 찰리를 두고 처음 구급차를 부른 건 그의 보살핌을 가장 필요로 했던 엘리이다.

찰리는 죽기 직전까지 엘리가 가진 필력과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 한다.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 딸이 지나친 반항심으로 자신의 능력을 잃지 않게끔 하기 위함이며, 이는 찰리가 죽기 전 자신의 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부성애이다.

극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중요한 상징인 <모비딕>에 관해 엘리가 쓴 에세이는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마다 찰 리가 읽어내리는 글이며, 죽기전 마지막으로 읽고 싶은 글이다.

죽기 직전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었던 찰리는 죽을 힘을 다해 홀로 일어나 앨리에게 다가선다.

엘리가 직접 읊는 <모비딕>에세이를 들으며 말이다.

절정과 같은 죽음의 순간, 찰리의 몸은 붕 떠오르며 밝게 빛나며 사라진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묘사는 현실의 죽음과는 다르다.

이는 흔히 종교의 죽음에서 말하는 '영'의 존재를 암시하며 앞서 말한 종교를 통한 구원에 대한 증명이다.

극 중 언급된 앨런을 사후세계에서 만난고 싶지 않다던 찰리의 대사와 연결해 사(死)전의 가족이 주었던 구원을 넘어 종교적 차원의 사후 구원을 묘사한다.

ⓒ더 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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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종교는 대상을 구원할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해방구로 여겨진다.

결국 삶의 역사를 공유하며 이해받을 수 있는 건 가족이라는 주제를 선두로 종교의 역할과 믿음의 경계를 분명히 한다.

영화는 절망과 우울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 결핍에 따른 중독이 필연적임을 나타내고, 자신에게 솔직해다면 고질적인 과거에 대한 아픔이 치유받을 수 있는 것임을 밝힌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이 될 때, 그럼에도 우리를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음을 인정하며 부디 스스로의 혐오에서 구원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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