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가 밝았을 때 영국 사람들은 ‘우리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영국에선 해가 지더라도 영국 반대편에 있는 식민지에는 해가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즈음, 빅토리아 여왕 시절 대영제국이 차지한 인구와 땅은 전 세계 4분의 1이나 되었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 것도 이때부터다.

대서양 연안의 조그만 섬나라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대제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근대라는 새 시대를 열어젖힌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 하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철도의 기여가 그 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철도는 영국의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을 이끈 견인차

1825년 9월 27일 영국 스톡턴-달링턴 구간(Stockton and Darlington Railway)에 철도가 개통해 증기기관차가 레일 위를 달렸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기관차에 의한 영업 철도였다. ⓒ포털 다음 갈무리 1829년 리버풀-맨체스터 구간에서는 개업에 앞서 시운전을 했는데, 스티븐슨의 아들이 제작한 기관차 로켓호가 영업을 개시했다.
1825년 9월 27일 영국 스톡턴-달링턴 구간(Stockton and Darlington Railway)에 철도가 개통해 증기기관차가 레일 위를 달렸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기관차에 의한 영업 철도였다. ⓒ포털 다음 갈무리 1829년 리버풀-맨체스터 구간에서는 개업에 앞서 시운전을 했는데, 스티븐슨의 아들이 제작한 기관차 로켓호가 영업을 개시했다.

증기 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된 산업혁명은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함으로써 세계사에 엄청난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다.

기차는 사람과 화물을 가장 편리하고 빠르게 운반했으며, 순식간에 세계적 연결망과 교역의 네크워크를 구축했다.

아울러 근대적인 삶과 정신, 정보와 문화를 세계 방방곡곡으로 실어 나르고 전파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철도가 세계와의 거리를 압축하여 근대라는 새 시대의 완성을 이루어 낸 것이다.

과거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육중한 기차가 다니기 위해선 그동안 마차를 기준으로 설계된 구조물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과거에 비해 훨씬 강화된 기준으로 설계와 시공을 수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측량과 토목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뿐만 아니라 차량을 만들고 제작하는 기계 기술과 이들 재료를 얻기 위한 제련 기술의 발달을 불러왔다.

기술이 기술을 낳고 그 기술이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가는 기술 시너지 효과가 산업 전반에 나타났다.

이후 영국에는 수많은 공장이 생겨 산업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부자들이 출현하면서 자본주의의 토대가 빠르게 형성되었다.

산업혁명으로 내적 역량을 기른 영국이 대외 팽창에 나선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최신 무기와 군사력을 앞세워 인도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영국 맨체스터-리버풀 철도를 달리는 로켓호의모습. ⓒ위키미디어 갈무리
영국 맨체스터-리버풀 철도를 달리는 로켓호의모습. ⓒ위키미디어 갈무리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은 고대 로마제국, 중세의 이슬람제국처럼 수많은 나라를 거느려 ‘대영제국’이라 불리었다.

영국의 비약적인 팽창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자발적 충성을 불러왔다.

자연히 빅토이라 여왕을 중심으로 정치가 안정되는데도 한몫했다.

현재 영국의 국가(國歌)는 ‘신이여, 여왕을 지켜 주소서(God Save The Queen)’인데, 아직도 영국 국민은 빅토리아 여왕 시절의 영화를 잊지 못한다.

영국의 경제는 해외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더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그즈음, 캐나다, 남아프리카, 인도 등의 식민지에 철도를 부설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다.

영국의 은행들은 철도 건설 사업을 위해 공공채권을 발행하고 관리하며 세계 굴지의 은행으로 성장했다.

오늘날 ‘리보(LIBO)금리’로 불리는 런던 은행 간 금리가 세계 금리의 주요 지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었던 영국, 국제사회에 소프트파워를 과시하다

최초의 여객용 정기 노선 ‘리버풀과 맨체스터 노선’의 개통식 모습. ⓒ포털 다음 갈무리
최초의 여객용 정기 노선 ‘리버풀과 맨체스터 노선’의 개통식 모습. ⓒ포털 다음 갈무리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으로의 발전이 과연 영토확장의 의미만 있는 것일까. 좀 더 확장된 시선으로 바라보자.

한 나라의 국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국내 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국력이 있다. 이른바 소프트파워다.

근대라는 새 시대는 세계적 교역망이 구축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공통의 기준과 규약의 마련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세계의 표준시가 정해지고 미터법이 확립되는 등 세계 공통의 협약이 이루어졌다.

영국은 이 과정에서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란 독보적 위치를 발판 삼아 자국의 기준을 세계화하기에 이른다.

지금도 세계인들은 알게 모르게 영국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 많다.

파운드, 인치, 본초자오선 등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국제 표준시와 관련된 본초자오선이다.

1884년 국제 표준시를 결정하면서 그리니치 자오선을 주장한 영국과 파리 자오선을 고집한 프랑스의 싸움이 치열했다.

하지만 결국 영국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리니치 자오선이 세계 표준시의 기준이 된 것은 천문학적 근거가 아니라 영국의 소프트파워 때문이었다.

증기기관으로 만들어진 동력을 이용하는 증기기관차. ⓒ 위키백과 갈무리
증기기관으로 만들어진 동력을 이용하는 증기기관차. ⓒ 위키백과 갈무리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영국을 말할 때 학자들에 따라 이견이 존재하기도 한다.

과연 인도를 비롯한 식민지에 대한 수탈 없이 내재적 힘만으로 국력이 형성되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근대 영국이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새로운 가치 능력을 창출함으로써 세계주의와 문화의 통합적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과거 빅토리아 시대의 영화는 사라졌지만, 아직 보이지 않은 힘을 국제사회에 행사하고 있는 사실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증기 기관과 더불어 발명된 기차는 영국의 산업과 기술 발전을 주도하면서 영국을 일약 세계 중심 국가로 우뚝 세워 놓았다.

이는 물의 부피를 1300배나 팽창시켜 운동에너지를 얻는 증기 기관만큼이나 영국의 힘이 엄청나게 신장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철도가 대서양 연안의 조그만 섬나라를 세계의 중심이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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