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기고문은 지난 2월 15일부터 23일까지 튀르키예 지진 참사현장에서 의료구호 활동을 펼치고 귀국한 서정성 아시아희망나무 이사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아시아희망나무는 튀르키예 지진 피해 이재민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활동을 진행 중입니다. /편집자 주

“신이시여, 우리가 무엇을 했길래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우리에게 왜 이런 일들이 생기나요? 이것도 신의 시험인가요?”

지진을 맞닥뜨렸던 시리아인이 뉴욕타임스(NYT)에 보낸 기고문에서 했던 질문이다.

튀르키예 대지진 참상을 지켜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정성 (사)아시아희망나무 이사장이 지난 2월 12일부터 23일까지 튀르키예 지진피해 현장에서 의료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서정성 (사)아시아희망나무 이사장이 지난 2월 15일부터 23일까지 튀르키예 지진피해 현장에서 의료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어디를 가든지 금속이 석재에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이 울부짖고 신에게 기도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과거 시리아 정부의 공습으로 학살을 당했을 때와 비슷한 피 냄새가 공기 중에 난다고도 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많은 생존자들이 이번 강진을 ‘전쟁’에 비유했다.

지진이 일어난 후의 풍경도 전쟁을 닮았다고 말한다.

튀르키예 규모 7.8 지진의 위력은 너무 강력했다.

너무 강력해서 인근의 다른 단층을 깨웠고 살아난 단층이 규모 7.5의 두 번째 강진을 일으켜 피해를 가중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국제 사회는 앞다퉈 지원 의사를 밝히고 구호 물품을 전달하였다.

튀르키예 재난관리국은 전 세계 65개국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국 정부도 긴급구호대를 튀르키예 현지로 급파했다.

광주에서는 사)아시아희망나무 긴급구호단이 민간단체 처음으로 튀르키예를 향해 출발하였다.

나를 비롯해서 아시아희망나무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순천향대학 부천병원 응급구조학과 김호중 교수와 간호사 한 명이 구호활동에 동행하였고 헝가리 의대에서 공부하는 자원봉사 학생 두 명이 합류하여 모두 다섯 명이 함께 하였다.

튀르키예 지진피해 모습.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튀르키예 지진 피해현장 모습.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튀르키예 지진피해 모습.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튀르키예 지진 피해현장.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현지시각 2월 15일, 구호단은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하타이주 안타키아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하였다.

하타이주 안타키아는 튀르키예 지진 피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었다.

튀르키예 정부에 따르면 도시의 약 70% 건물이 붕괴 되었다고 한다.

현장에 첫발을 디뎠을 때 현장은 너무나 심각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두려움조차 느낄 여력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소음과 이재민들의 절규로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재민들은 영하 5도에 강추위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었고 수도와 전기 등 사람이 살아갈 최소한의 환경조차 모두 무너졌으며 건물이 붕괴 되다 보니 통신도 원활하지 않았다.

실낱같은 희망조차 남김없이 사라진 듯 보였다.

우리는 튀르키예 재난관리국(AFAD)에 의료봉사자 등록을 마친 뒤 부상자들 치료에 나섰다.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안타키아 주립병원 건물도 지진으로 금이 많이 간 상태였다. 언제 무너질지 예측할 수 없었다.

병원 인근에 텐트를 치고, 그 텐트 안에서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을 마련해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구호팀은 무너진 건물에서 구조된 어린이 두 명을 긴급 처치 후 대도시로 이송하는 업무를 맡았다.

낮에는 부상자를 치료 하는데 집중하였고 밤에는 옆 도시로 이동하여 난민촌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여 전달하였다.

다음 날, 우리 구호단은 안타키아 주립병원을 떠나 인근 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대규모 구호단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작은 마을을 찾아서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된 부상자를 치료하였다.

어떤 곳에는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떠나온 이재민 3,0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친인척을 찾아서 임시로 둥지를 튼 것이다.

이재민들은 갑작스런 재앙으로 혼비백산 대피하느라 간단한 생필품조차 챙기지 못한 채 낯선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특히 무너진 집에서 빠져나오면서 골절·타박상·찰과상을 입은 환자들이 많았다.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우리 구호단은 초등학교에 의료캠프를 차리고, 마을을 돌며 이재민 치료에 집중하였다.

지진 피해 규모가 워낙 광범위한 탓에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작은 마을 곳곳에 부상자와 이재민들은 지금도 지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구호물자와 의료 지원이다.

아시아희망나무는 튀르키예 이재민을 돕기 위한 모금 캠페인을 시작하였다.

내가 긴급구호단을 이끌고 튀르키예로 출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언론사들이 관심을 보여주었고 광주시민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십시일반 모금에 참여하였다.

순천향대학 부천병원 등에서는 병원 구성원들이 모은 기금 전액을 우리 단체에 기부 해주었다.

모아진 성금 가운데 일부는 튀르키예 이재민 5가정의 주거비를 일정 기간 지원해줄 예정이다.

또한 가능한 많은 이재민들이 지진 피해가 복구되고 재건이 완료될 때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구호물품이 조금씩 이재민들에게 전달은 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튀르키예는 한국 전쟁 때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건져준 참전국으로 혈맹의 형제 나라이다.
 

ⓒ(사)아시아희망나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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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튀르키예 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호소하고 싶다.

튀르키예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처참하였다.

무너진 그 땅이 희망을 잃지 않고 하루속히 지진의 아픔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튀르키예를 떠나는 우리 구호단에게 ‘살아갈 희망을 줘서 감사하다’는 어느 이재민의 인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안타까움과 희망이 반쯤 섞인 마음을 이렇게 적어보았다.

/튀르키예 지진 피해 성금 모금: 광주은행 133-107-323941(사)아시아희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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