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작가탐방’에서는 10여 년 동안 광주에서 사진을 매체로 작업해오고 있는 문선희 작가를 만났다.

구제역 3년 후, 곰팡이가 올라온 땅을 담은 <묻다>(2014-2015) 시리즈로 이름을 알린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새로운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업은 주변에서 많이 들어는 봤지만 그 누구도 깊이 관심갖지 않았던 이야기의 틈새를 파고든다.
 

■누군가는 물어야 할 이야기

문선희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문선희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묻다>는 구제역으로 수만 마리의 동물들을 살처분한 그 현장을 제의적 시선으로 담아낸 작업이다.

하얗게 또는 까맣게 곰팡이가 올라오거나 알 수 없는 액체가 나오는 낯설고 기이한 모습을 한 100여 곳의 장소를 직접 찾아다니며 정면에서 클로즈업하여 기록함으로써 그 땅의 흔적들을 고발한다.

5·18에 대한 기억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담아낸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는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사회적 접근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정서적이고 감각적인 기억을 쌓아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낸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80여 명의 시민들을 인터뷰하고, 80년 당시에 있었던 집들을 찾아가 그들의 기억을 발견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작업들이다.

<거기서 뭐하세요>는 노동자들의 고공농성 현장을 찾아가 그들이 올라갔던 교각, 타워크레인, 굴뚝, 옥상 광고탑을 회색조로 담아낸 작업이다.

잔잔한 바다에 기념탑처럼 우뚝 솟은 산업구조물들은 기나긴 침묵의 시간 동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처음에는 이들이 각자가 다 다른 사정으로 올라갔다고 생각했지만, 본질은 자신들을 ‘그런 대우를 받아도 싼 존재’로 보는 자본주의의 거대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은 우리가 고공농성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질 것이 아니라, 그들이 4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홀로 그곳에 서지 않도록 “거기서 뭐하세요?”라고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물어봤어야 했던 것 아닌지 질문하고 있다.
 

■‘존재’ 대 ‘존재’로서

고라니 초상작업 <널 사랑하지 않아>는 우연히 출근길에 마주친 고라니의 도와 달라는 듯한 눈빛이 한동안 마음에 남아서 시작하게 됐다.

고라니에 대해 알아보던 중 고라니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유해동물이고, 주기적으로 사냥을 당한다는 사실과 고라니가 거의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인간보다 더 오래 한반도에 살았는데 인간과 서식지가 겹친다는 이유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인가?

고라니로 인한 피해액의 두 배를 고라니를 잡는데 쓰는 상황, 그리고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상황을 보고 그는 시스템이 생명을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고, 이에 대한 저항감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는 고라니를 찾아 직접 야생동물구조센터에 다니며, 고라니를 꾸준히 만났다. 고라니와 함께 지내며 그들과 친해지게 되고, 엎드린 채로 그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았더니 놀랍게도 고라니들이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2~3개월이면 이곳에서 나가야만 하는 고라니들을 졸업사진의 형식으로 각각의 개성을 살려 기록했다.

문선희-고라니. 101_80x60cm_Pigment print_2022. ⓒ광주아트가이드
문선희- 라니. 101_80x60cm_Pigment print_2022. ⓒ광주아트가이드

그는 고라니에게 느리게 다가가서, 오랜 기다림 끝에 고라니가 자신을 응시하는 순간을 담았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존재’ 대 ‘존재’로 눈을 마주치는 경험을 갖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는 살처분된 동물들과 그 흔적으로 남은 땅, 5·18을 기억하는 어린이의 시선,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 인간의 필요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고라니 등 우리 시대의 사회문제와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지만, 그 시선은 따뜻하다.

그의 작업들은 ‘사진’이라는 특수한 매체로 ‘기록’함으로써 동시대성을 가지는 동시에, 거대권력 혹은 시스템의 부조리에서 지켜지지 못하는 존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들을 기억하고 위로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들을 위한 세상을 향한 고요한 외침을 묵묵히 수행하는 중이다.
/문선희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sunnybymoon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59호(2023년 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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