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가 부설되기 전 우리나라 육로는 그 넓이에 따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예컨대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은 첩(捷), 소나 말이 오갈 수 있는 길은 경(徑), 수레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은 도(途), 수레 두 대가 오갈 수 있는 길은 도(道), 수레 세 대가 동시에 오갈 수 있는 가장 넓은 길을 로(路)라고 했다.

남해안철도공사현장.ⓒ김선미 전남해남문화관광해설사 제공
남해안철도공사현장. ⓒ김선미 전남해남문화관광해설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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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땅끝해남역전경. 1조6353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보성∼해남∼목포 임성을 연결하는 남해안 철도 공사 공정률은 2022년 12월말 기준 85%이다. 해남 구간은 12.54km로 터널 4곳 교량 3곳 등이며 노반공사와 함께 계곡면 가학리에 기차역이 들어선다. 2024년 준공 예정이다. ⓒ김선미 전남 해남 문화관광해설사 제공

구한 말, 수도 한양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길은 첩과 경이 대부분이었다.

산악 국가이기도 했지만, 당시 기술력으로 대로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풍수와 같은 물활론적 사고도 한몫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산과 강에도 생명과 혼이 있다고 믿고 자연 훼손을 금기시했다.

이 밖에 외적의 침탈을 자주 겪었던 경험도 큰길을 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전통적 도로 개념을 송두리째 뒤바꾼 전환점이 철도였다.

철도가 개통됨과 동시에 기존의 첩(捷)과 경(徑) 위주인 육로의 역할을 철도가 이어받으며 철도를 중심으로 전국의 교통체계가 새로 확립되었다.

하지만 교통 발달의 이면에는 빛과 그림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발전과 소외라는 양극화 현상을 불러온 것이다.

그 결과 철로가 지나는 지역은 사람과 물류가 모여 경제와 산업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발전이 지체되면서 지역 소외현상이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곳이 해남을 중심으로 한 전남의 서남부지역이다.
 

■ 철도의 소외는 ‘교통체계’에서의 소외, 그 결과 발전의 지체와 인구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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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전남 해남 문화관광해설사 제공
ⓒ김선미 전남해남문화관광해설사 제공
해남공룡박물관 내에 있는 공룡조형물. 세계 최초로 익룡, 공룡, 새 발자국이 동일 지층에서 발견된 자리에 세운 공룡박물관은 알로사우로스 진품화석을 비롯해 35점의 공룡조형물, 263점의 공룡발자국 화석, 1000여점의 물갈퀴새발자국 화석, 443점의 익룡발자국, 110점의 별마크 달린 대형초식공룡 발자국 등이 전시되어 있다. ⓒ김선미 전남 해남 문화관광해설사 제공

나는 지난해 해남에 소재한 땅끝 문학관에 입주작가로 들어가 집필활동에 전념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현재 7만 명 채 안 되는 해남 군민이 1970년대엔 무려 25만이었다는 것이다.

광역시로 승격하기 전 광주 시민이 60만이었고 전남 도민이 400만이었음을 회고하면 과거 해남의 25만 인구는 어마어마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대도시로의 인구 유출이 없었다면 당시 국내 연평균 인구 증가율 1.4퍼센트(통계청 통계연감 자료)를 감안 할 때 현재 약 40만 규모의 인구를 자랑했을 것이다.

물론 요즘 거의 모든 농촌 지자체가 줄어드는 인구와 고령화로 곤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는 해남군 만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전남 서남부지역의 거점이자 산업과 경제, 문화 중심지였던 해남의 인구감소는 여러 각도에서의 고찰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지역 인구감소의 원인을 철도의 소외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고, 내년 남해안 철도 개통을 계기로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방안을 찾기 위함이다.
 

■ 내년 말 개통 예정인 남해안 철도

ⓒ김선미 전남해남문화관광해설사 제공
ⓒ김선미 전남 해남 문화관광해설사 제공
해남군 문내면 바닷가에 있는 법정 스님 생가. 힘겨운 삶에 허덕이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사유의 기쁨과 마음의 안식을 제공하며 ‘무소유’를 실천한 스님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김선미 전남해남문화관광해설사 제공
해남군 문내면 바닷가에 있는 법정 스님 생가. 힘겨운 삶에 허덕이는 현대인에게 진정한 사유의 기쁨과 마음의 안식을 제공하며 ‘무소유’를 실천한 스님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김선미 전남 해남 문화관광해설사 제공

전남 보성에서 목포를 잇는 남해안 철도가 막바지 공사에 한창이다.

이제 내년 말이면 땅끝 해남을 기차로 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만시지탄이지만 우리나라 철도 역사 124년 만에 해남이 ‘철도교통체계’속에 편입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했지만 해남 지역의 발전 지체와 인구감소는 ‘철도교통체계’에서의 소외가 근원적 이유다.

만약 호남선 철도의 종착역이 현재의 목포가 아니고 해남이었다면 두 지역의 운명이 뒤바뀌었을 것이다.

세계 어느 도시의 역사를 보더라도 그 도시의 발전은 철도가 견인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속도로를 놓기 시작하는 1970년대까지 육상에서의 사람과 물자는 거의 철도를 통해 오갔다.

자연히 철도교통체계에 포함된 지역에 사람과 자본이 몰렸다.

특히 6‧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시설의 배치와 도시개발은 교통 여건이 좋은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자연히 철도교통체계에서 벗어난 지역은 발전이 지체돼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많은 인구를 자랑하던 해남군 같은 지자체들이 주변 대도시와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 인구를 빼앗기게 되었는데, 이러한 지역편중 현상은 이미 고착된 지 오래이며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 남해안 철도 개통은 전남서남부지역에 뒤늦게 찾아온 기회

명량대첩지 울돌목의 스카이워크ⓒ김선미 전남해남군문화관광해설사 제공
명량대첩지 울돌목의 스카이워크. ⓒ김선미 전남 해남 문화관광해설사 제공

영남과 호남을 잇는 경전선은 부산에서 시작하여 진주와 순천, 보성을 거쳐 광주 목포와 연결되는 노선인데 내년 개통하는 구간은 보성과 목포를 직결하는 82.5 킬로미터다.

새로 들어설 역은 장동, 장흥, 강진, 해남, 영암 등 다섯 곳이다.

그동안 철도 혜택을 보지 못했던 이 지역 주민들이 기차를 이용해 서울이나 부산을 오갈 수 있게 되었으며 컨테이너 등 대형 화물을 저비용으로 운송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철도 개통 한 가지 요인만으로 이미 고착돼버린 지역 간 격차를 하루아침에 해소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쨌든 철도가 개통되면 이 지역에 대한 서울과 수도권 등 대도시로부터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좋아지게 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장점이다.

지역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짐은 물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양한묵 선생 생가를 방문한 청소년들. 지강 양한묵 선생은 해남 출신으로 3.1만세운동을 일으킨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이다.ⓒ김선미 전남해남문화관광해설사 제공
양한묵 선생 생가를 방문한 청소년들. 지강 양한묵 선생은 해남 출신으로 3.1만세운동을 일으킨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이다. ⓒ김선미 전남 해남 문화관광해설사 제공

따라서 철도 개통을 눈앞에 둔 지금이야말로 지역발전에 획기적 도움이 될 만한 방안을 찾는데 지혜를 모을 때가 아닌가 싶다.

철도는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수송성, 정시성 측면에서 뛰어나다.

여기에 고속철도의 도입으로 신속성까지 갖추었으며, 승용차, 버스 등과의 연계성이 높아 갈수록 주목받는 교통수단이 되었다.

해남에서 살아본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지역에 특별한 애정이 있다.

두륜산과 땅끝 달마산에서 다도해로 이어지는 산과 들과 바다는 우리 강토 특유의 꿋꿋함과 애잔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다.

붉은 황토의 흙내음과 향긋한 바다 향기도 우리 땅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뼛속 깊이 새기게 해 주고도 남았다.

어디 이뿐인가. 곳곳에 뜻있게 살다 간 사람들의 살을 베어내는 듯한 아픔과 그 속에서 키워낸 진주 같은 무형의 문화유산, 그리고 저항과 항쟁 속에서도 인간승리란 금자탑으로 우뚝 솟은 과거의 흔적이 즐비했다.

그래서일까.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조차 기이하고 수미한 풍경보다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 청정한 자연과 빛나는 문화유산을 창조적으로 결합한 지역 특화 필요

땅끝순례문학관.ⓒ김선미 전남해남문화관광해설사 제공
땅끝순례문학관. ⓒ김선미 전남 해남 문화관광해설사 제공

 

백련재 문학의 집. 해남은 예로부터 시가문학의 비조(鼻祖)라 할 수 있는 금남 최부부터 호남 시학의 스승인 석천 임억령, 독보적인 기록문학가 유희춘, 조선의 으뜸 시인 윤선도 등 조선시대부터 면면이 그 문학적 전통이 이어져 왔다. 이에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해남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고 그 성과를 발전시키고자 윤선도 박물관 인근 해남읍 연동리에 ‘땅끝순례문학관’을 건립했다. 문학관 부속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는 매년 입주작가를 선정해 안정적인 집필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김선미 전남해남군문화관광해설사 제공
백련재 문학의집. 해남은 예로부터 시가문학의 비조(鼻祖)라 할 수 있는 금남 최부부터 호남 시학의 스승인 석천 임억령, 독보적인 기록문학가 유희춘, 조선의 으뜸 시인 윤선도 등 조선시대부터 면면이 그 문학적 전통이 이어져 왔다. 이에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해남의 문학 정신을 계승하고 그 성과를 발전시키고자 윤선도 박물관 인근 해남읍 연동리에 ‘땅끝순례문학관’을 건립했다. 문학관 부속 ‘백련재 문학의 집’에서는 매년 입주작가를 선정해 안정적인 집필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김선미 전남 해남 문화관광해설사 제공
한반도 최남단 자리에 세운 땅끝탑. 해남군은 지난해 11월 새 땅끝탑을 세우고 바다와 하늘을 향해 활짝 열린 스카이워크를 조성했다.ⓒ김선미 전남해남군문화관광해설사 제공
한반도 최남단 자리에 세운 땅끝탑. 해남군은 지난해 11월 새 땅끝탑을 세우고 바다와 하늘을 향해 활짝 열린 스카이워크를 조성했다. ⓒ김선미 전남 해남문화관광해설사 제공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문화관광 시대다.

사람들은 낯선 곳을 찾아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힐링과 내적 충만감을 얻는다.

단순히 보고 즐기고 먹는 것이 전부였던 과거의 관광 패턴은 이미 구식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해남을 비롯한 전남서남부지역이야말로 새로운 관광 트렌드에 가장 적합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이 지역만큼 천혜의 때 묻지 않은 천연자원과 무형의 문화자원이 풍부한 곳은 전국적으로 드물다.

그러므로 유형과 무형의 생태문화자산을 창조적으로 버무리면 철도라는 새 길을 통해 오게 될 많은 이들에게 황홀한 문화충격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관련 지자체에서 관광, 교통 등과 관련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좀 더 정교하고 세련된 정책을 수립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길 응원한다.

개발에서 지체돼 낙후됐을지라도 환경과 생태, 문화를 잘 보존하면 사람의 발길을 모을 수 있는 경쟁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듭 말하지만 21세기는 문화관광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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