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는 사람은 길을 받아들여야 한다.

구부러졌거나 곧거나, 편하거나 불편하거나 군말 없이 가야 한다.

마음에 든다고 천천히 갈 수는 있어도 마음에 안 든다고 건너뛸 수 없다. 

내게 송정리역을 지나는 철길이 그랬다.

37년 동안 250만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단 한 번도 생략한 적이, 아니 생략할 수 없는 길이었다.

옛 송정리역 모습.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제공
1913년 개통 당시 옛 송정리역 모습.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제공

내가 맨 처음 열차를 운행하여 송정리역을 지나간 것은, 1985년 6월 이었다.

전남 목포발 여수행 완행열차의 부기관사로 임용된 후 첫 근무를 나왔을 때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 근무를 마친 곳도 송정리(광주송정)역이다.

2021년 12월 25일, 서울에서 출발한 KTX를 광주송정역 9번 홈에 무사히 도착시킴으로써 나의 철도 인생 대장정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나의 반생의 시작과 끝이 광주송정역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광주송정역에 특별한 애정이 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옛날의 풍경과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칸칸이 켜진 열차의 불빛을 따라 낡은 사진처럼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장면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온다.

열차가 어느 방향에서든 송정리역을 오려면 평온한 들녘을 가로지르며 고이 흘러내리는 어등산 능선을 마주해야 한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결실을 앞둔 누런 들판과 어등산 자락이 만나 펼치는 감탄스럽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어등산을 바라보며 황룡강 철교를 건너거나 하남 고개를 넘어오면 송정리역에 당도했다.

‘기차가 지나가는 동네’

화물열차나 완행열차를 몰던 시절, 즉 지금부터 37년 전 송정리역 주변 풍경이다.

낡고 허름한 집들, 여기에 기대 살아가는 수수하고 소박한 사람들.

그래도 광주·전남의 교통 요지였으니 늘 북적거렸으며 활기찼다.

1913송정역시장. ⓒ광주 광산구청 제공
1913송정역시장. ⓒ광주 광산구청 제공

역 주변에 5일 장이 있고, 코 앞에 ‘1913 송정시장’으로 이름을 바꾼 ‘송정매일시장’이 문을 열고 있었단 것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훨씬 나중에 알았다.

앞으로만 나아갈 뿐, 옆으로 갈 수 없던 길에 갇혀 살던 자의 인식의 한계였다.

당시 송정리역 역사(驛舍)를 떠올려본다.

정차 시간이 많은 화물열차를 운행할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들어선 역사는 대합실이라고 해야 고작 학교 교실 크기였다.

일제강점기 때 처음 지어진 역 건물은 두 칸으로 나누어 각각 사무실과 대합실로 사용했다.

그런 만큼 대합실 모습은 요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검박했다.

하얗게 회칠한 사방벽을 따라 길게 늘어선 나무 의자, 천정까지 올라가 매미처럼 납작 붙어 있는 형광등 말고는 눈에 띌만한 시설물이 거의 없었다.

다만, 역에서 출발하는 모든 열차의 착·발 시각과 행선지 별 운임이 적힌 흰색 아크릴판만이 벽에 매달려 있었다.

그래도 떠남과 만남의 기쁨은 유난했다.

남루한 대합실을 드나드는 승객들의 옷차림은 단정했고 저마다의 표정에선 낯선 곳을 향한다는 설레임이 가득했다.

포마드를 발라 날카롭게 가르마를 세운 신사와 곱게 차려입은 한복의 매무새를 연신 쓰다듬는 아주머니들을 기관차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송정리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호남선 복선 공사가 송정리까지 완공됨으로써 허름한 역사를 허물고 다시 지었다.

그즈음 나는 새마을호를 비롯해 특급열차를 몰았다.

광주송정역 일대. ⓒ광주 광산구청 제공
광주송정역 일대. ⓒ광주 광산구청 제공

때마침 광주시가 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낡고 허름하던 역 주변에 현대식 건물이 하나둘 들어섰다. 이어 2008년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교통 요지로써의 지위를 굳히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광주로 이어지는 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광주송정역’으로 이름까지 바꾸었다.

2015년에 호남고속철도가 완전 개통되면서 광주송정역은 그야말로 광주·전남의 관문이자 교통 허브로 탈바꿈했다.

이제 KTX를 타려면 반드시 이곳으로 와야 한다.

가히 상전벽해의 변모다.

요즘 KTX를 타기 위해 광주송정역을 찾으면 과거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선 크고 우람한 역사가 우리의 시선을 압도한다.

대합실 안에는 실시간 열차 운행상황과 남은 좌석 수를 알려주는 전광판이 등장했고, 온갖 광고판에서 나오는 불빛이 휘황찬란하다.

KTX가 멈추는 승강장도 과거 화차를 세워두었던 유치선을 차지해 훨씬 넓고 쾌적해졌다.

어디 이뿐이랴.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모습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은 날렵하고 세련된 KTX의 외양만큼이나 모두가 멋지고 행복해 보이는 신사와 숙녀들이다.

30여 년 전, 말쑥한 차림 틈에 섞인 남루한 행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국 어디를 가나 발전하지 않은 곳이 없고 낡고 허름한 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송정리역의 변모는 가히 눈이 부시다.

이제 송정리역의 옛 모습은 자료 사진이나 사람들의 희미한 추억 속에 잔영으로 남아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소멸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강한 유기체로 살아나 나 역사(歷史)로 탈바꿈한다.

광주송정역 복합환승센터 조감도.
광주송정역 복합환승센터 조감도.

송정리역도 마찬가지다.

역을 다녀간 사람들이 뿌린 소소한 이야기는 오늘날 역사로 대접해도 손색이 없다.

역사가 별것이랴?

사소한 개인들의 삶과 이력을 한 묶음으로 모아놓은 이야기인 것을.

초라하고 낡은 기억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역 이름이 ‘광주송정역’으로 바뀐지 언젠데 아직도 ‘송정리역’이라고 부르거나 역 일대를 여전히 ‘송정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친숙하고 익숙해 그립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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