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우울하고 가장 처절한 곡

주황색으로 물든 대봉(大峯)이 주렁주렁 열려서 언제 익으려나 고대하고 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날씨가 쌀쌀해졌다.

매섭게 부는 바람에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지니 대봉마저 떨어질까 안타까워하는 농부의 마음을 다가오는 추운 겨울이 쓸쓸하고 외롭게 한다.

11월이 되고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의 작곡가가 있다.

차이코프스키 (Tchaikovsky 1840~1893). ⓒ포털 갈무리
차이코프스키 (Tchaikovsky 1840~1893). ⓒ포털 갈무리

몸이 자꾸만 움츠러들고 앙상하게 뻗은 가지가 쓸쓸하게만 보이는 이 추운 계절에 보란 듯이 활기차게 온몸과 선율의 절정을 쏟아내는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3대 발레 작품을 만들어내고 러시아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작곡가 차이코프스키(1840~1893)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21년도 8월 일본에서 클래식 명반 시리즈 『클래식 백화점:교향곡편』이 발매되었다.

클래식 애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교향곡 20개를 담아 출판되었다.

10위까지 나열해보자면, 1위에는 베토벤의 <9번 합창교향곡>이 선정되었고 2위에는 브람스의 <교향곡 4번, Op.98>, 3위 베토벤의 <교향곡 7번 Op.72>, 4위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OP.95 신세계로부터>, 5위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Op.74 비창>, 6위 베토벤의 <교향곡 3번 Op.55 영웅>, 7위 베토벤의 <교향곡 5번 Op.67 운명>, 8위 브람스의 <교향곡 1번 Op.68>, 9위 말러의 <교향곡 9번>, 10위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K.551 주피터>가 그 영광을 거머쥐고 있다.

여기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이 10위 안에서 무려 4곡을 선점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 역시 ‘교향곡의 대가’라는 베토벤의 평가를 쉽게 엿볼 수 있다.

5위에 선정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Op.74 비창>

매서운 바람에 행여 나무가 꺾이고 대봉(大峯)이 떨어질까 쓸쓸하고 안타깝게 쳐다보는 농부의 외로운 마음을 적시는 곡이라고 하면 대변되는 느낌일까.

쓸쓸하고 외롭고 안타까워 모든 것의 절망감을 안겨준다는 평가를 받는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Op.74. 비창>은 그야말로 우울하고 처절한 느낌의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다.

1893년 10월 2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이 직접 지휘하고 초연을 마친 뒤, 불과 9일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교향곡 6번 Op.74 비창>은 처절한 선율의 흐름과 마지막 교향곡이라는 의미가 포함되면서 뜻하지 않게 차이코프스키의 레퀴엠(장송곡)이 되어버렸다.

차이코프스키가 직접 지휘했던 초연 때는 너무나도 우울하고 처절한 느낌을 준다고 하는 평가로 인해 관객들의 반응이 좋지만은 않았었다.

1875년 그의 명곡 중의 명곡으로 손꼽히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통해 최고의 명성을 얻고 이듬해인 1876년에 <백조의 호수>를 시작으로 1889년 <잠자는 숲속의 미녀>,1892년 <호두까기 인형>까지 ‘발레음악’으로 그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작곡가가 없는 러시아의 최고 음악가라는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듬해인 1893년에 발표된 <교향곡 6번 Op.74 비창>에 관한 관객들의 이렇다 저렇다 하는 평가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차이코프스키였다.

자신은 크게 만족하며 작품을 완성했기에 악평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대인배였다.

정확히 말하면 이 작품에 쏟아부었던 차이코프스키의 처절한 감성은 고통의 절정이었고 그 고통을 견뎌내며 탄생시킨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뒤에서 누가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리라.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애는 유명한 이야기다.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옭아맸던 죄에 괴로워하며 보냈던 시간이 참으로 길었다.

마지막에, 마지막을 다하며 처절한 고통을 쏟아내며 최고조의 영감으로 탄생시킨 <교향곡 6번 Op.74 비창>은 동생이 붙여준 표현대로 ‘비창’이 되어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장식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563회’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죽음이 당시 유행했던 콜레라에 의한 죽음이 아닌 동성애로 인한 주변의 자살 강요에 의해 비소를 먹고 자살을 했다는 재미있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물론 러시아 정부에 의해 현대과학으로 증명된 다량의 비소가 차이코프스키의 머리카락에서 검출된 사실에서 제기된 주장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진위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미궁과 의구심의 기로에서 멈춰있다.

싸늘하게 불어대는 바람이 얼굴에 차갑게 스민다.

우울하고 처절하지만 중간중간에 따뜻한 선율을 느끼는 <비창>과 함께 싸늘해진 날씨를 음미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56호(2022년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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