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간 함께 살아온 70대 레즈비언 부부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두 사람'

2017년, 서울역사박물관의 전시회에 전시된 사진 한 장.

사진 속에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동성애자를 위한 베를린 추모비 앞에서 파독 간호사 두 명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반박지은 감독은 두 사람의 사연이 궁금했고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베를린으로 가서 사진 속 인물인 김인선씨와 이수현씨을 만나게 된다.

다큐멘터리 ‘두 사람’은 그렇게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영화 '두 사람'을 탄생시킨 사진 ⓒ YAJIMA Tsukasa
영화 '두 사람'을 탄생시킨 사진 ⓒYAJIMA Tsukasa

1960년대 서독은 경제 호황으로 복지가 확대되었고 병원과 요양시설 등에 근무할 노동자의 수요가 급증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1년간 5,800명의 한국 간호사 면허 소지자와 4,232명의 간호보조원 등 총 1만 32명의 간호 인력이 독일로 갔다고 한다.

그러나 오일쇼크로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힌 독일 정부는 1973년 한국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강제송환 정책을 폈다.

파독 간호사들은 이에 대항하여 체류권을 얻기 위해 함께 투쟁했고 체류권을 쟁취했다.

파독 간호사들은 이렇게 함께 힘을 모아 투쟁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역시 파독 간호사 출신인 이수현씨와 김인선씨는 자신들과 같은 이방인을 위해 연대하고, 소수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주민·성소수자·여성이라는 겹겹의 정체성을 가진 그들의 삶이 독일에서라고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김인선씨는 1985년, 한인 교회가 연합해 주최하는 여신도 수련회에서 자신이 꺾은 꽃을 내미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렇게 만난 이수현씨는 이제 30년 넘게 김씨 옆에서 함께하고 있다.

여자를 사랑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특히나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서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김인선씨는 신학부 교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고 그는 사랑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여자든 남자든 중요하지 않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내가 보기엔 문제가 없다.”

2019년 6월 1일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김인선씨 ⓒ 한겨레
2019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김인선씨 ⓒ한겨레

이수현씨는 해마다 퀴어 퍼레이드 참석에 빠지지 않는 적극적인 레즈비언이지만, 한국의 가족들 앞에서는 작아진다.

영화는 김인선씨가 한국에서 한 인터뷰가 언론에 실린 것을 한국에 사는 자신의 가족이 보게 되자 안절부절하며 걱정하는 이수현씨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 땅에서 살아가는 그녀 역시 다른 성소수자처럼 자신의 정체성이 가족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지낸다.

또한 법적인 보호자가 아닌 이수현씨는 암이 재발한 김인선씨를 병실에서 간호할 수도 없었다.

(2022년 8월 31일,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했다. 독일은 2017년 10월1 일부터 동성 간 혼인을 허용했다)

영화 ‘두 사람’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누리집
영화 ‘두 사람’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누리집

독일 역시 동성애 혐오 관련 사건이 벌어진다.

특별한 행동으로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은 함께 다닐 때는 서로 손을 잡지 않고 걷는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뒤뚱거리는 몸을 가누기 위해서 서로 손을 잡아줘야 한다며 웃는다.

두 사람은 소수자로서 ‘도래해야 할 삶’을 위해 싸우고 연대하며 살았다.

이제 그들은 춤추고 노래하면서 ‘지금’을 누리고 깊게 만끽하면서 살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70세 생일을 맞이한 김인선씨는 이렇게 말한다.

살 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좀 더 보람차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고, 더 베풀고 따뜻하고 좋은 일 많이 하고, 더 가볍게 즐기고 살아야겠다고, 한번 살고 가는 인생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살자고.

(두 사람’의 영어 제목은 ‘Life Unrehearsed’이다)

영화 ‘두 사람’은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지만, 동성애라는 것만 빼면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 아마도 대부분의 부부가 꿈꾸는 ‘미래’를 보여준다.

너무도 사랑했기에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을 이뤄낸 두 사람이 30년 넘게 함께하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투쟁하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또한 ‘두 사람’은 대부분의 성소수자들이 꿈꾸는 ‘미래’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어느 날, 70대의 그녀들은 노년의 뒤뚱거리는 몸을 서로 맞대고 흥겹게 춤을 춘다.

영화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행복해하는 두 사람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할머니 레즈비언 이야기인 ‘두 사람’은 자신의 노년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젊은 성소수자들에게 일종의 롤모델이다.

‘두 사람’의 모습은 젊은 동성애자에게 자신을 기다리는 미래의 ‘할머니/할아버지 동성애자’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삶을 살아갈 희망을 준다.

영화 ‘두 사람’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누리집
영화 ‘두 사람’ 스틸컷 ⓒ부산국제영화제 누리집

사실 한국에서 늙어 간다는 것, 더구나 성소수자로서 늙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두 사람’의 삶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자신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삶을 살아가는 노년을 담았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유를 누리는 노년들이 현실에서 더 많아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영화 ‘두 사람’은 우리가 맞이하게 될 ‘늙은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함을 보여준다.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여성, 남성, LGBTQIP+ 등등 모두 함께 만나고 연대하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늙은’ 우리들은 더 자유로운 삶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은 개인의 책임을 넘어 국가와 사회의 몫이기도 하다.

모두가 다른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외롭지 않게 각자 자기 마지막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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