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
12월 6일부터 2주간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려

6일부터 2주간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3층에 위치한 기획전시실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전시 "말하여진 것들과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열린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는 한국사회뿐 아니라 한일관계에서도 언제나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다.

현재까지도 국내외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역사를 부정·왜곡하는 이들이 있고, 우리 사회 안에서도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발언이 공공연하게 지속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전시는 이 뜨거운 논쟁 속에 어느덧 갇혀 버린 피해당사자인 "할머니"들에게 집중한다. 

최초의 위안부 피해사실은 고 김학순 할머니의 1991년 공개증언에서 비롯되었다. 

해방 이후 46년만의 일이었다. 그 긴 시간을 피해자들은 침묵 속에 지냈다. 무엇이 그들을 침묵하게 했는지가 이 전시의 출발점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안해룡, 이토 다카시(伊藤孝司) 두 작가의 사진과 영상들에서 피해의 증거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사건은 이미지 속에 존재하지만, 사건의 맥락은 흩어져 있다. 상징으로서의 위안부가 사라진 자리에는 할머니들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할머니들로부터 나오는 유일한 소리는 노래다. 위안부라는 꼬리표를 뗀 그 자리에는 평범한 할머니들이 있을 뿐이다.

위안부 문제의 진실 규명은 할머니들을 "과거 역사의 비극적 피해자"로만 받아들이면서 생기는 것은 아닐까? 

피해자들의 침묵의 시간이 의미하는 것, 무엇이 그들을 말하지 못 하도록 했을까에 주목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누군가를 삭제해가는 지금의 비정상적인 과정을 멈출 수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을 이 전시는 관객들에게 던진다.

여성가족부 <2022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관련 전시> 사업 지원을 받아 추진되는 이번 전시는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희움’ 주관으로 18일까지 열린다. 

한편 본전시로 지난 10월 19일부터 올해 말까지 대구에서는 '낯섦과 익숙함:ODD ADD DD"이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서문> 중 일부 
 

침묵이 깨졌다. 1991년 8월 14일이었다. 

김학순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혔다. 

그의 증언은 전쟁범죄를 둘러싼 오랜 침묵을 깼다. 이를 계기로 한국을 넘어 북한과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에서도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증거자료 또한 발견되었다.

"위안부는 일본이 국가권력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자행한 전시 성폭력 범죄였다." 이를 부정하기 위해 침묵을 고수해온 일본도 속속 드러나는 증언 앞에 자신들이 가해자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시 침묵이다. 현재 일본 정치가와 역사수정주의자들은 다시금 '위안부' 의 존재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증언의 순수성을 문제 삼고 피해자들을 향한 혐오를 충동질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너와 너의 말은 거짓이며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니 침묵하라. 듣기 싫다."

생각해보면 증언과 증언 사이에는 늘 침묵이 있었다. 피해자들은 살아서 돌아왔지만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그것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학순의 증언이 나오기까지 해방 이후 4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가족에게조차 제 고통을 말할 수 없었던 이 침묵의 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질문은 오늘날의 역사왜곡과 혐오의 현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 현장에서는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가. 

무엇이 들리지 않게 되고 무엇이 침묵을 요구하는가.

보다 선명한 ‘역사의 비극적 피해자’의 이미지, 그런 이미지가 될 때에야 보이게 되는 ‘위안부 할머니’라는 상징만으로 그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까? 

보다 완벽한 증언, 보다 순수한 고통을 증명한다면 혐오의 말들을 잠재울 수 있을까?

우리는 그동안 피해자의 증언에 착목해왔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어쩌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보다 깊이 듣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말과 말 사이 침묵에 대해. 우리가 다 들었다고 믿었으나 여전히 듣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지워지는 과거의 그림자도, 불행한 역사의 박제도 아닌 한 사람으로써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해. 그럼으로써 끝내 잊지 않을 것처럼 귀 기울이는 것. 

왜곡과 혐오 너머의 길은 그런 시도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아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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