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남구민, 보성으로 민주인권역사 답사 나선다
광주 남구민, 보성으로 민주인권역사 답사 나선다
  • 이상현 기자
  • 승인 2022.12.02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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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인권아카데미 수료생, 3일 보성 곳곳 역사의 현장 찾는다
남구청-보성군, 자매교류도시사업으로 민주인권투어 행사 마련
벌교 홍교, 소화의집, 태백산맥문학관, 고 백남기 농민 생가 방문

구민과 함께 민주인권통일사업을 활발하게 진행 중인 광주 남구청(구청장 김병내)이 전남 보성군과 자매결연도시 교류사업으로 민주인권역사투어를 진행한다. 

남구청과 효천민주인권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3일 민주인권역사투어는 남구 인권아카데미1ㆍ2기 수료생 70여명이 참가한다.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전남 보성 벌교 홍교(왼쪽, 횡갯다리)와 부용교(소화다리). ⓒ전남 보성군청 누리집 갈무리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전남 보성 벌교 홍교(왼쪽, 횡갯다리)와 부용교(소화다리). ⓒ전남 보성군청 누리집 갈무리
전남 보성 벌교읍 '태백산맥문학관'의 벽화. ⓒ전남 보성군청 누리집 갈무리
전남 보성 벌교읍 '태백산맥문학관'의 벽화. ⓒ전남 보성군청 누리집 갈무리

역사투어는 이날 오전 남구 효천역에서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 탑승과 함께 민주인권 강연을 시작으로 벌교역에 하차하면서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한다. (아래 역사투어 장소 설명 참조)

보성 벌교에서는 해방전후 한국의 현대사를 사실적으로 조명한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남도여관, 금융조합, 현부자네집, 홍교, 소화의 집과 태백산맥 문학관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이어 백범 김구 선생이 일제 경찰의 수배를 피해 은거했던 장소를 돌아보고, 보성소리의 큰 맥을 이어가고 있는 판소리 전수관을 방문하여 우리소리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마지막 일정은 평생 농민운동가로서 활동하다가 지난 2015년 11월 14일 박근혜 정권 당시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져 317일간의 투병 끝에 사망한 고 백남기 선생의 생가를 찾아 고인의 생전 활동과 우리밀 재배에 얽힌 사연 등을 들은 후 '우리밀밭 콘서트' 참가를 끝으로 민주인권역사투어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번 민주인권역사투어를 마련한 광주 남구청과 효천민주인권포럼 관계자들은 "구민의 높은 참여 속에 진행했던 '남구인권아카데미' 수료생을 중심으로 올 한해가 가기 전에 자매교류결연도시 전남 보성의 역사현장을 찾아 다시 한번 민주인권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남구가 펼치고 있는 통일운동과 민주인권 사업이 더욱 더 활발하게 펼쳐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 소설「태백산맥」의 첫 시작 장면인 현부잣집과 소화의 집이 있는 제석산 끝에 자리 잡고 있으며, 소설 태백산맥이 땅속에 묻혀있던 역사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산자락을 파내서 특이하게 설계된 건물로, 분단문학의 최고봉에 올랐던 작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2. 현부자네집

- 대문 위로 솟아 있는 2층 누각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소설 택백산맥 시작 부분에 등장하는 현부자네집은 대문 위 2층 누각에 오르면 중도방죽이 내려다보인다.

소작인들을 감시하기 위한 용도로써, 한 순간도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제강점기 소작농의 애환이 그려진다.
 

3. 소화의집

- 「조그만하고 예쁜 기와집. 방 셋에 부엌 하나인 집의 구조… 부엌과 붙은 방은 안방이었고, 그 옆방은 신을 모시는 신당이었다. 부엌에서 꺾여 붙인 것은 헛간방이었다.」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무당 소화네 집의 모습이다.

1988년 무렵 태풍에 집이 쓰러졌고, 토담의 일부와 장독대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밭으로 변했다.

그 후 주차장으로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을 2008년 보성군에서 복원하였다.
 

4. 벌교 홍교

- 홍교는 벌교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다.

원래는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뗏목다리가 있었는데, 조선 영조 5년(서기 1729년)에 순천 선암사의 승려인 초아노가 습성 두 선사가 지금의 홍교를 건립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워 보물 제304호로 지정되어 있다.
 

5. 백범 김구선생 은거의 집

- 1895년 5월(음) 김두호라 칭한 23세의 젊은 김구 선생은 김승묵 댁에서 달포여를 머물며 동국여대라는 국사책을 중심으로 시대상을 논하였다. 실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인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치하포에서 일본인 쓰지다 중위를 죽이고 사형을 언도 받아 인천감옥에서 복역 중 후일을 위해 탈옥을 감행하여 자신을 위해 삼남지방으로 내려오신 길이였다.

1990년에 은거비를 세웠으나 내용이 빈약했던 바 2006년에야 주민들의 숙원사업으로 은거기념관을 지을 것을 건의하여 전라남도의 후원 및 서울백범선생 기념사업회의 도움으로 본 기념관의 준공을 보게 되었다.
 

6. 보성 판소리성지

- 근대 판소리의 큰 산맥인 보성소리의 창시자인 송계 정응민 선생의 생가가 자리한 회천면 영천리 도강마을 일원을 주무대로 서편제 보성소리의 역사와 정통성의 맥을 이어가고 판소리에 대한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여 체험하는 공간으로 만듬으로써 판소리의 세계화와 대중화를 위해 조성된 곳이다.
 

7. 故백남기농민 생가

- 1947년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민주화 운동으로 박정희 정부시기에 2번의 제적을 당했고 6년여 동안 수배생활을 했다.

이 무렵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수배기간 동안 수녀원 포도농장에서 일했으며 갈멜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사로 생활했다.

1980년 “서울의 봄”때 복교해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다가 5.17쿠테타로 계엄군에게 체포되어 학교에서 3번째 제적 및 계엄포고령 위반 죄목으로 징역을 살았다.

석방 후 보성으로 귀향해 농민운동과 우리밀살리기운동을 평생동안 펼쳐왔다.

2015년 11월 14일 박근혜정부의 무능과 폭정에 저항하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에서 317일만에 우리곁을 떠났다.

백남기농민의 죽음은 민민운동을 결집시켜 박근혜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1천7백만 촛불대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으며 3기 민주정부를 여는 원동력이였다.

**자료 제공: 광주 남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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