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광주호 호수생태원’을 가다

고요한 호수 속에 무등산이 잠겼다.

줄지어 늘어선 능선이 산마루를 타고 오르는가 싶더니 다시 호수 수면으로 순하게 흘러내린다.

고개를 돌려 숲을 바라본다.

따사로운 햇살을 가득 품고서 계절의 문턱을 넘어선 숲에 지난 계절의 여운이 남아 나뭇가지를 붙든다.

누렇게, 혹은 빨갛게 내려와 물든 단풍 사이로 초록색 이파리가 끼어들었다.

한여름 폭염 아래서 찬란한 꽃을 피웠던 꽃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가을비에 하나둘씩 지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피고 지는 꽃과 나무의 일생이 경이롭다.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광주호 호수생태원
 

ⓒ손민두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광주호. ⓒ손민두

광주호는 영산강유역 종합개발계획사업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다.

담양군 고서면 분향리의 용대산과 그 건너편 무등산 자락을 막아 1976년에 완공했다.

그 광주호와 무등산 자락이 만나는 광주호 상단부 일대에 ‘광주호 호수생태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동‧식물에게는 서식지를 제공하고, 시민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생태공원이다. 

 무등산 준봉을 등지고 입구에 들어서면 광주호 푸른 물이 저만치서 우리를 맞는다.

수면아래로 푸른 하늘과 무등산이 잠겼다. 

한 달 전만 해도 이곳엔 코스모스와 구절초가 만발했고 선홍빛 꽃술이 아름다운 목백일홍이 건재했다.

ⓒ손민두
광주호 호수생태원을 찾은 시민들. ⓒ손민두

요즘엔 주변의 나무들이 거의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메타세콰이어가 양쪽에 도열 하듯 서 있는 탐방로를 따라가면 가장 먼저 버드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무리를 지은 커다란 버드나무들이 호수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이다.

주로 굵은 왕버들이 키 자랑을 하듯 모여 짙은 숲 그늘을 만들고 있는 이곳은 이른 아침 호수에서 물안개가 피어나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호수에 물이 가득 차오를수록 나무의 밑동이 물에 잠겨 더 아름답다. 물에 뿌리박은 나무들은 잔뿌리가 발달해 영양분을 많이 배출한다.

덕분에 수변공원엔 다양한 곤충과 어류의 서식처가 되면서 생물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학습하기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철마다 온갖 야생화가 피는 곳
 

ⓒ손민두
만추의 광주호 호수생태원. ⓒ손민두

광주호 호수생태원은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예쁜 꽃들이 쉴새 없이 피어나 우리의 눈을 호사롭게 한다.

이른 봄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그것이 신호가 되어 곧바로 ‘불두화’가 핀다.

불두화’는 부처님 머리카락, 즉 나발 모양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어 5월이 되면 ‘병꽃나무’에서 병모양의 노란 꽃이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6월엔 ‘꽃창포’와 ‘붓꽃’, 7월엔 ‘지루달개비’, 8월엔 ‘벌개마취’가 연달아 핀다.

9월이 오면 ‘가우라’와 ‘꽃범의 꼬리’가 만개한다.

참깨처럼 반드시 자라서 연한 보랏빛 꽃이 벙그는 ‘꽃범의 꼬리’는 바람이 불면 호랑이가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꽃말은 청춘, 젊은 날의 회상, 추억, 열정을 의미한다.

차가운 기운이 대지를 감싸는 지금도 여전히 싱싱함을 뽐내는 작은 꽃에 왜 청춘을 의미하는 꽃말을 붙였는지 알 만하다.

그만큼 이곳은 봄이면 봄대로 가을이면 가을대로 언제나 동화 속 풍경 같은 원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손민두
광주호. ⓒ손민두

아름다운 꽃과 나무, 그리고 물이 있으면 자연스레 동물이 찾아온다.

꽃이 벌과 나비를 부르는 이치다.

처음 생태원을 만들면서 사람이 풀어놓은 것도 있지만 이젠 주변 동물이 찾아와 함께 산다.

현재 생태원에는 멧토끼, 다람쥐, 두더지 등 각종 포유류를 비롯해 직박구리, 박새 등 조류,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가 서식하고 있으며, 뱀 등 파충류도 분포한다.

이 밖에 어류, 곤충류 등 동식물이 무려 230여 종이나 살고 있다.

자연생태계의 보고가 시민들의 발길이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이 어울리는 생태공원 
 

ⓒ손민두
 지난 9월 광주호 호수생태원에 구절초가 만발했다. ⓒ손민두

데크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으면 나무를 타고 오르는 날쌘 다람쥐를 자주 볼 수 있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놀라는 기색이 없다.

사람이 자신을 헤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광주호 물이 들어오는 습지엔 ‘각시붕어’와 ‘돌마자’가 헤엄을 치고 그 위로 소금쟁이와 물방개가 떠다닌다.

때를 잘 맞추면 늪지에서 각종 새가 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뱀이 또아리를 튼 그림이 그려진 팻말은 군데군데 세워놓은 것은 뱀을 조심하라는 경고다.

자연의 먹이사슬 속에선 먹이가 풍부한 곳에 포식자가 몰린다.

뱀이 산다는 것은 이곳이 맑고 깨끗해 생태계의 순환이 잘 이루어진다는 증거다.

자연생태계에서 먹이 활동은 약육강식의 살벌한 전투를 부른다.

ⓒ손민두
광주호 호수생태원 꽃밭. ⓒ손민두

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에 기대 살아간다.

서로 먹고 먹히면서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사방에 거미줄처럼 뻗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우리와 함께 사는 온갖 동물들의 디테일한 삶의 모습이 다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곳에 오면 동·식물이 자연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또 어울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은 다른 공원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사람보다 동물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원래 동물이 살던 곳이었으니만큼 동물의 평화로운 삶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람의 발길을 허용한다.

이 때문에 생태원은 언제나 자연조명 상태를 유지하고 동물의 산란기엔 일부 구간에 출입제한을 한다.

관람 시간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우리에게 휴식과 평온을 베푸는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인 셈이다.

광주호 호수생태공원에 설치된 판문점 '도보다리' 모형. ⓒ손민두
광주호 호수생태원에 설치된 판문점 '도보다리' 모형. ⓒ손민두

지난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담소를 나누는 장면으로 화제를 모은 판문점 '도보다리'도 이곳만의 독특한 볼거리다.

생태원을 찾는 사람들이 남북이 하나 되어 평화와 통일로 이어지도록 염원하는 뜻깊은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실물과 똑같이 만들었다.

현재 남북관계가 냉각되어 날 선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이럴수록 남북의 화해와 협력이란 희망의 끈을 더 단단히 붙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나중에 통일이 되어 남북이 쉽게 어울리려면 먼저 자연과 하나 되는 것부터 배워야 할 듯싶다.

지구상 모든 생물체는 서로 기대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