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출판 서명회

사람들은 죽은 후 어떤 평가를 받을지 무척 두려워한다.

인간에 대한 평가나 기호는 저마다 달라서 천사로 평가되던 사람이 악마로 혹평당하기도 한다.

그거야 할 수 없다. 막을 방법이 없다.

친구 중에는 죽은 후를 걱정하는 녀석들이 무척 많다. 살아서 부끄러운 짓 안 하면 죽은 다음을 걱정할 필요 없다.

‘나 아무개 아들이요. 아무개 손자요’ 했을 때 ‘훌륭한 아버님이셨군요.’, ‘저도 존경하는 어른이셨습니다.’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어깨가 으쓱해질 것이다.

임은정 검사. ⓒ임은정 검사 SNS 갈무리
임은정 검사. ⓒ임은정 검사 SNS 갈무리

저 친구가 아무개 아들이야. 저 녀석 할애비가 일제강점기 때 뭐 했는지 아는가.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라면 설사 자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요즘 유행어로 ‘쪽 팔리는’ 일이다.

우리 집안도 친일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부친도 형님도 나도 모두 창씨개명(創氏改名)을 했다.

그게 무슨 친일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껏 일본치하에서 살았다면 도리 없이 천황폐하를 위해 ‘덴노헤이까 반자이(天皇陛下万歳)’를 부르는 충신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걍술국치는 치욕이었고 그때 역사가 ‘친일 5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후예는 나중에 조상의 무덤을 몰래 파 이장했다.

역사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출판서명회를 왜 이리 거창하게 말하는가. 요즘 자서전 출판도 많고 정치인들의 책 출판도 많은데 대개 제 머리 깎기다.

제 자랑이라는 것이다. 출판도 장사인데 이런 책 누가 돈 내고 사 볼 것인가. 책 내느라고 돈 좀 썼을 것이다. 나도 책 몇 권 내봤다.

며칠 전, 대단한 출판기념 아니 서명회를 보았다. 서명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출판사에서 마련한 모양이다.

얼마나 왔을까 궁금해서 몰래 가 봤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2층 교보문고다.

애초에 서명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멀리서 보니 줄이 저자의 모교(부산 남성여고)가 있는 부산까지 늘어선 것 같다. 장사진을 이루었다는 표현이다.

멀리서 서명하는 저자의 모습을 지켜봤는데 며칠 팔 좀 아팠을 것이다.

서명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나는 미리 구해서 읽었다. 작가인 내 안목으로 거짓은 금방 구별한다.

진실한 글. 내가 법을 잘 몰라서 저자의 생각을 자세히 이해하기 힘들다

해도 진실이 전해오는 감동은 느낄 수가 있다. 이제 50도 안 된 검사, 특히 여성이 검사로 임용된 이후 그가 겪은 여러 가지 파란만장은 많은 국민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와 전화로만 대화를 나누었을 뿐 악수 한 번 할 기회가 없었지만, 저런 검사가 참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 왔다.

검찰 내에서 그는 얼마나 고독을 느끼고 살까.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를 믿고 있다.
 

■판·검사가 존경받는 세상
 

어렸을 때 판·검사라면 어 하면서 치켜 보았다. 그러다가 아닌 것이 됐다. 박정희·전두환 시절 법관들, 김기X라고 하던가.

‘우리가 남이가’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국민은 권력의 반려견 정도로 여겼다. 윤석열이나 한동훈도 잘 알 것이다.

검사가 폼 잡는 세상이 됐다. 똥 폼이라는 말이 있다.

중학교 때부터 공부 잘하던 녀석이 있었다. S법대 나와 20대에 고시합격 검사가 됐다.

언제가 걔들 몇이 모인 것을 봤는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애들이 영감 타령이다.

서로 영감이란다. 20대 영감이다. 나를 보자 흠칫, 어색하게 웃으며 ‘저희끼리 농담하고 있는 겁니다.’ 다음부터 그 녀석은 내 가슴에서 지워졌다.

지금 세상에 없다. 법 이전에 사람부터 되어야 한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백 년 천 년 검사하고 용좌에 앉아 있을 것인가.

대통령이 되면 뭐 하느냐. 손가락질당하는 대통령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

법이 공정하면 불평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판·검사들은 노무현이 변호를 맡았다고 하면 머리를 흔들었다.

언제 개망신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잘못된 판·검사들은 법정에서 노무현 변호사에게 질타를 당했다.

그에게 쪽 팔린 판·검사들을 나는 봤다. 어떤가. 요즘 한동훈이 책 한 권 내면 어떨까.

현직 법무장관이 책 내면 안 된다는 법 조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얼마나 팔릴지...무슨 도사인지 아주 용한 분이 계시다는데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

내가 비교적 말을 험하게 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책을 쓰면 다르다.

내가 쓴 책이 휴지통이나 재래식 화장실에서 굴러다닌다면 슬픈 일이다.

임은정 검사 새책- '계속 가보겠습니다' 표지그림.
임은정 검사 새책- '계속 가보겠습니다' 표지그림.

지금 함부로 책을 내는 정치 미꾸라지들이 많지만 실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지껄였는지도 모를 것이다.

자신이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자신의 피로 쓰는 것이다. 자신 없으면 책 쓰지 마라. 책이 웃는다.

지금 내가 글을 쓴 주인공 검사는 임은정 검사다.

지금 언론을 누비고 있는 그 많은 인간. 내 눈에 사람처럼 보이는 모습이 별로 없다. 정말 사람이 그립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