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문명의 발달 속에서 인간의 욕심과 이기주의는 끊임없이 그 날개를 펼치며 거듭나고 있다.
과연 인간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미래를 지향하고 있을까?
‘정리를 해야 더 채울 수 있다’는 근본적인 마음을 알면서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옭아매어 재촉하며 과거보다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지향하기 위해 채찍질한다.
넘어지면 그때서야 비로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인간의 심리는 종교를 통해서 더 활성화되어 이루어지고 있는듯하다.
한국 교회에서는 한해의 반을 넘어서 그 반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정리하고, 반성하여, 회개하며, 받은 은혜를 감사로 전하는 절기를 보내는 풍습이 존재한다.
‘맥추감사절’이라고 해서 히브리인들이 보리나 밀을 수확한 후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던 예배의 의미를 계승하여 한국 교회에서도 일 년의 반을 보낸 시간에 대한 ‘더 나은 반성과 회개’에 ‘더 좋은 감사’의 마음을 더해 예배를 드린다.
반성과 회개, 정리하는 기도의 자리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이 있다.
■작별/정리를 뜻하는 노래
〈Auld Lang Syne = 작별/석별의 정〉은 ‘작별, 석별, 정리’의 의미를 담는 노래로서는 아마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노래일듯하다.
1788년 스코틀랜드의 시인인 로버트 번스(1759~1796)가 우연히 어떤 노인이 부르던 노래를 기록하고 채보하여 노랫말을 지었고 여기에 영국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윌리엄 쉴드(1748~1829)가 곡을 붙여 완성했다.
한국에서 이 노래가 처음으로 알려지고 불렸던 시기는 1876년 조선이 문호를 개방한 후 본격적으로 서양 문물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기독교가 들어오고 일본에 의한 억압이 시작된 때부터이다.
조선보다 한발 앞서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문화를 왕성하게 받아들였던 일본이 최초의 서양음악교육을 목적으로 편찬한 교과서가 1881년 발간된 『소학창가집』이다.
이 책은 ‘일본근대음악교육’의 일인자였던 이자와 슈지(1851~1917)의 초청으로 일본에 방문한 메이슨(Luther Whiting Mason,1818~1894)이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찬송가를 비롯하여 스코틀랜드 민요, 아일랜드 민요, 세속 가요 등 일본인이 쉽게 이해하고 적응하여 부를 수 있는 곡을 중심으로 발췌하여 발간한 창가집이다.
〈Auld Lang Syne = 작별/석별의 정〉도 이 ‘창가집’의 한 페이지에 게재되었던 노래이다.
일본인이 쉽게 부르고 적응할 수 있는 선율의 구성은 ‘요나누끼 음계’라고 하여 한국의 ‘5음음계=(도레미솔라)’의 선율과 명맥을 같이한다.
요나누끼 음계는 네 번(일본어로 ‘요’를 의미함)째 음계인 ‘파’와 일곱 번(일본어로 ‘나’를 의미함)째 음계인 ‘시’를 뺐다고(빼다를 의미하는 일본어가 ‘누끼’) 하여 붙여진 선율의 이름으로 이 또한 ‘도레미솔라’의 음계로 이루어져 있다.
큰 줄기를 잇는 선율의 명맥은 같지만, 한국의 5음음계와 일본의 요나누끼 음계는 음을 진행하는 방향, 구조, 곡을 이루는 형식에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샘을 이루는 그 원천의 물줄기가 같기 때문에 일본인이 쉽게 부르고 적응하는 선율은 조선에 전파되면서 조선인들의 감정에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조선인들의 아픈마음을 승화시킨 노래
조선의 힘이 약해지면서 일본의 강제적 문화교육의 일환으로 전파되어 불렸던 〈Auld Lang Syne = 작별/석별의 정〉은 ‘도레미솔라’로 이루어져 있어 쉽게 이해했다.
첫 소절부터 구슬프고 가녀리게 울리는 선율은 조선인들의 뜨거운 마음을 대변했다.
나라를 빼앗겨 조그마한 자유의 표현도 허락되지 않았던 시기에 그들이 표현했던 행동은 뜨거운 마음을 깊게 울렸던 구슬픈 이 노래에 가장 강력한 의미를 담은 애국의 노랫말이었다.
독립을 절절하게 원하는 애국의 가사를 지어 〈Auld Lang Syne〉의 선율을 차용해서 당시 애국가로서 불렀던 이 노래는 나라를 빼앗긴 시간을 그만 작별하고 정리하고 싶은 애절한 마음을 대변하며 절절하게 불렸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한국 교회에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로 시작하는 이 찬송은 〈Auld Lang Syne〉의 선율을 차용하여 깊은 반성과 회개를 구하는 기도의 시간에 자주 애용된다.
한해의 반을 넘기며 끝없이 추구했던 탐욕과 이기주의의 마음을 쉽게 접지는 못하는 사람이지만, 놔야지만 비로소 더 얻고 채울 수 있다는 근본적인 마음을 이 노래에 의지하여 지난 반년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53호(2022년 8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누리집: http://gwangjuartguide.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