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문명의 발달 속에서 인간의 욕심과 이기주의는 끊임없이 그 날개를 펼치며 거듭나고 있다.

과연 인간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미래를 지향하고 있을까?

‘정리를 해야 더 채울 수 있다’는 근본적인 마음을 알면서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옭아매어 재촉하며 과거보다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지향하기 위해 채찍질한다.

넘어지면 그때서야 비로소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인간의 심리는 종교를 통해서 더 활성화되어 이루어지고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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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윌리엄 쉴드(1748~1829). ⓒ광주아트가이드 

한국 교회에서는 한해의 반을 넘어서 그 반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정리하고, 반성하여, 회개하며, 받은 은혜를 감사로 전하는 절기를 보내는 풍습이 존재한다.

‘맥추감사절’이라고 해서 히브리인들이 보리나 밀을 수확한 후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던 예배의 의미를 계승하여 한국 교회에서도 일 년의 반을 보낸 시간에 대한 ‘더 나은 반성과 회개’에 ‘더 좋은 감사’의 마음을 더해 예배를 드린다.

반성과 회개, 정리하는 기도의 자리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이 있다.

■작별/정리를 뜻하는 노래
 

〈Auld Lang Syne = 작별/석별의 정〉은 ‘작별, 석별, 정리’의 의미를 담는 노래로서는 아마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노래일듯하다.

1788년 스코틀랜드의 시인인 로버트 번스(1759~1796)가 우연히 어떤 노인이 부르던 노래를 기록하고 채보하여 노랫말을 지었고 여기에 영국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윌리엄 쉴드(1748~1829)가 곡을 붙여 완성했다.

한국에서 이 노래가 처음으로 알려지고 불렸던 시기는 1876년 조선이 문호를 개방한 후 본격적으로 서양 문물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기독교가 들어오고 일본에 의한 억압이 시작된 때부터이다.

조선보다 한발 앞서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문화를 왕성하게 받아들였던 일본이 최초의 서양음악교육을 목적으로 편찬한 교과서가 1881년 발간된 『소학창가집』이다.

이 책은 ‘일본근대음악교육’의 일인자였던 이자와 슈지(1851~1917)의 초청으로 일본에 방문한 메이슨(Luther Whiting Mason,1818~1894)이 당시 미국에서 유행했던 찬송가를 비롯하여 스코틀랜드 민요, 아일랜드 민요, 세속 가요 등 일본인이 쉽게 이해하고 적응하여 부를 수 있는 곡을 중심으로 발췌하여 발간한 창가집이다.

〈Auld Lang Syne = 작별/석별의 정〉도 이 ‘창가집’의 한 페이지에 게재되었던 노래이다.

일본인이 쉽게 부르고 적응할 수 있는 선율의 구성은 ‘요나누끼 음계’라고 하여 한국의 ‘5음음계=(도레미솔라)’의 선율과 명맥을 같이한다.

요나누끼 음계는 네 번(일본어로 ‘요’를 의미함)째 음계인 ‘파’와 일곱 번(일본어로 ‘나’를 의미함)째 음계인 ‘시’를 뺐다고(빼다를 의미하는 일본어가 ‘누끼’) 하여 붙여진 선율의 이름으로 이 또한 ‘도레미솔라’의 음계로 이루어져 있다.

큰 줄기를 잇는 선율의 명맥은 같지만, 한국의 5음음계와 일본의 요나누끼 음계는 음을 진행하는 방향, 구조, 곡을 이루는 형식에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샘을 이루는 그 원천의 물줄기가 같기 때문에 일본인이 쉽게 부르고 적응하는 선율은 조선에 전파되면서 조선인들의 감정에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조선인들의 아픈마음을 승화시킨 노래
 

조선의 힘이 약해지면서 일본의 강제적 문화교육의 일환으로 전파되어 불렸던 〈Auld Lang Syne = 작별/석별의 정〉은 ‘도레미솔라’로 이루어져 있어 쉽게 이해했다.

첫 소절부터 구슬프고 가녀리게 울리는 선율은 조선인들의 뜨거운 마음을 대변했다.

나라를 빼앗겨 조그마한 자유의 표현도 허락되지 않았던 시기에 그들이 표현했던 행동은 뜨거운 마음을 깊게 울렸던 구슬픈 이 노래에 가장 강력한 의미를 담은 애국의 노랫말이었다.

독립을 절절하게 원하는 애국의 가사를 지어 〈Auld Lang Syne〉의 선율을 차용해서 당시 애국가로서 불렀던 이 노래는 나라를 빼앗긴 시간을 그만 작별하고 정리하고 싶은 애절한 마음을 대변하며 절절하게 불렸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한국 교회에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로 시작하는 이 찬송은 〈Auld Lang Syne〉의 선율을 차용하여 깊은 반성과 회개를 구하는 기도의 시간에 자주 애용된다.

한해의 반을 넘기며 끝없이 추구했던 탐욕과 이기주의의 마음을 쉽게 접지는 못하는 사람이지만, 놔야지만 비로소 더 얻고 채울 수 있다는 근본적인 마음을 이 노래에 의지하여 지난 반년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53호(2022년 8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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