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에 집중하는 작가

계단을 올라 작가를 만난다.

익숙한 길목의 꾸꿈스러운 곳이다. 늘 거리에서 마주쳤는데, 작업실에서 만나는 작가라니.

눈에 익숙한 그림들이 벽에 걸려있다. 모두가 현장에서 도출된 산물이다.

바로 전까지 작업 중이었는지 정돈되지 않은 화구들이 널려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다 가는지, 작업실 안이 소란하다.

캔버스마다 크고 작은 사람들이 울고, 웃고, 춤을 춘다.

굵직한 선들이 면을 채우고 빈틈없는 캔버스가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한다.

우리는 이제 춤을 추어야 해.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니까라고.
 

삶 속의 나·현장 속의 그림

김화순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김화순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읽는 그림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읽혀진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기호처럼 그림이란 도구를 사용해 자신의 주장을 전달한다.

주장의 대부분은 삶의 영속성 속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수직적 수평적 관계 속에서 암묵으로 행해지는 악력과 부조리, 시각의 불균형과 불공정 등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개인과 개인의 대면에서 초라하고 연약한 인간이 집단이 되었을 때의 광폭함, 권력의 지속을 위해 진실과 사실의 차이를 어떻게 왜곡하는지에 대한 간교함, 작가는 이 모든 부조리를 넘어 날 선 일침을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현실을 직시한다.

세월호 3년상 상주모임 회원으로 셀 수 없이 팽목항을 찾았던 아픔과 절망은 <천 개의 바람이 불어>라는 작품으로 환원되었고, 추운 겨울밤을 촛불로 버텼던 희망과 요구는 <광화문에 이는 바람>(2015)을 탄생시켰다.

팽목항에 아이와 함께 희망을 빼앗긴 엄마아빠는 자신의 얼굴에 아이의 이름표를 단 채 부활했고, 생명권인 쌀값 보장을 외치다 물대포를 맞아 사망한 고 백남기 농민은 <길 위에 씨를 뿌리고>(2016)를 통해 작가의 손끝에서 다시 살아났다.

<천개의 바람이 불어>(2015)에서 소녀는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리는 모습으로 세상에 연꽃을 피운다.

연꽃은 오염된 물을 정화하며 피운 꽃인 만큼 앞으로의 작가의 역할을 기대하게 한다.

또, <광화문에 이는 바람>(2015) 역시 진실을 왜곡한 패악과 폭력을 딛고 선 촛불과 노란 깃발, 그리고 포옹으로 맞선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작가의 희망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다.
 

■다시 신화 속으로
 

간결하면서 오롯해졌다. <그들의 세상을 본다>(2019) 시리즈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리즈 대부분의 작업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사실은 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때로는 슬픈 눈이고, 매서운 눈빛이며 서늘한 눈빛을 가진 사람은 모두 여성이다.

여성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시 말하면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과 일치한다.

거부하지 않고, 얼굴을 가렸던 두 손을 벌려 한 눈으로 정확히 세상과 맞서기 시작한다.

네가 보는 세상을 나도 보고 있으니 물러설 수 없다는 강력한 연대를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작가는 다시 여성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신화를 체화하고 작업 안에 끌어들인다.

신화 속 여성은 세상의 모든 것을 치마폭 안에 담았고 체온으로 거두었다.

아프면 어루만졌고, 고통에는 위무를 주었다.

<이제 댄스 타임>(2018)이다. 가장 평범하고 근원적인 모습으로 노란 달빛 아래 춤을 춘다.

거대한 유리 천장의 위험을 무릅쓰고,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것처럼 어린 여자아이부터 소녀에서 청년, 중년에서 할머니까지 모두 하늘로 날아올라 춤을 춘다.

김화순- '뭇 생명의 작은 날갯짓과 함께', 193.9×130.3cm, oil on canvas, 2022. ⓒ광주아트가이드
김화순- '뭇 생명의 작은 날갯짓과 함께', 193.9×130.3cm, oil on canvas, 2022. ⓒ광주아트가이드

불공정의 화신인 국회 앞에서도 춤을 추고, 강남역과 우리가 사는 집의 지붕 위에서도 춤을 춘다.

춤은 단지 춤이 아닌 해원과 위무, 그리고 제의 형식을 지닌 희망과 자유, 평등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여성 모두의, 의지의 발로이자 염원이다.

작가는 <뭇 생명의 작은 날개짓과 함께>(2022) 다시 춤을 춘다.

노랗게 빛나는 붉은 선이 선명한 나무는 핵의 위험을 알리는 신화 속 여성의 춤을 전언처럼 받아들인다.

순천만의 갈대와 그 갈대숲 속에서 위험을 외치는 풀벌레 소리마저 듣는 이 여성은 하늘이 알리는 전언을 신화 속 메아리처럼 세상을 향해 춤을 추며 바람으로 알린다.

작가는 말한다. “사람에게 집중한다. 사람에게 힘을 얻으며 사람과 함께 할 때 가장 사람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내 두 발로 세상을 밟고 서서 내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그리는 것이 진정 내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 세상이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53호(2022년 8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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