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서늘한 바람이 살랑살랑 피부를 스쳐 지나간다.

더운 여름에 목덜미를 휘감았던 긴머리가 거슬려 가던 길을 돌아 미용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다리면서 듣는 음악이 조금은 시끄러웠지만 흥겹기도 했다.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아는 가요가 흘러나온다.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이었다.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멜로디를 음미했더니 감미로운 음악은 어느덧 끝나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가요가 흐른다.

랩과 리듬이 온 음악을 지배하는가 싶더니 가끔가다 부르는 멜로디가 마음을 즐겁게 한다.

따라 부르자니 따라 부를 수는 없지만, 요즘 말로 표현하여 ‘Z세대들이 좋아하고 즐겨듣는 새로운 가요’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 생각은 바로 앞에서 흘러나왔던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어느새 오래된 곡이 되어버렸구나’라는 느낌으로 스며들었다.

새로운 시도가 먹히지 않을 때보다 먹힐 때가 많다.

복불복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지만, 운세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도는 또 하나의 풍미를 거머쥘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1678~1741)가 당시로서는 매우 낯선 개념이었던 ‘표제음악(곡의 내용을 설명·암시하는 음악. 특정한 이야기 및 내용, 사상을 표현한 음악. 추상적인 대상을 묘사하려는 음악)’을 발표했다.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시도였다. 많은 작곡가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멜로디에 화려함과 풍부함을 곁들여 정서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직접적으로 음악 속에 자신이 생각하고 그려내는 이야기를 담는 표제음악은 매우 낯선 의식이었기 때문에 생각 밖에 있었다.

비발디는 자신이 생각하고 그리며 표현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내용을 멜로디에 담아 독창적이며 자유분방하게 ‘새로운 음악’을 표현했다.

그 작품이 바로 〈사계〉이다. 〈사계〉는 비발디의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며 바로크 음악 중에서도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표제음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새로운 시도는 이렇게 바로크 시대의 또 다른 한 페이지를 기록한다.
 

■비발디의 〈사계〉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대표하는 계절의 분위기와 배경을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각각 3악장으로 구성되어 각 계절의 특징을 멜로디 속에 넣어 깊게 담아내고 있다.

봄에 따뜻함과 평온함을 시작으로 하여 여름의 무더위에 지친 땅의 흐물거림과 천둥, 번개를 동반한 태풍의 위세는 격정으로 휘몰아간다.

특히 ‘여름 3악장’은 하늘의 무서운 울림이 심장을 가파르게 진동시킨다.

잔인하게 휘몰아치며 익은 열매와 곡물을 모두 쓸어버린다.

여름의 잔인함과 무서움을 보여주는 ‘여름 3악장’은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잠자는 비발디를 자랑스럽게 일깨운다.

가을은 풍년으로 인한 수확의 기쁨을 노래한다.

흥겨움과 즐거움으로 사람들의 걱정을 잊게 하고 춤추며 노래하는 악장을 지나 사냥꾼들의 경쾌한 움직임과 그들의 쫓김에 지친 동물들의 긴박한 상황을 느끼는 멜로디가 펼쳐진다.

겨울은 차갑고 쓸쓸하다. 매서운 겨울바람과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겨울의 흔적을 첫 시작의 울림부터 그 진동을 느낄 수 있다.

각 계절에서 표현되고 있는 소네트(sonnet:10개의 음절로 구성되는 시행 14개가 일정한 운율로 이어지는 14행시)가 음악의 묘미를 더한다.
 

■새 시대 새 울림
 

‘조성진(2015년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우승)과 임윤찬(2022년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의 뒤를 잇는 클래식 영재들과 함께 새롭게 도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으로 대한민국의 클래식 영재 4명(피아노 이주와 13세, 바이올린 이미현 14세, 비올라 박지율 14세, 첼로 이재리 13세)이 연주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떴다.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 3악장’을 호기스럽게 연주하고 있는 이들의 나이는 고작 13~14세에 불가하다.

이 작은 이들의 울림이 새롭게 열어가고 펼쳐지는 대한민국의 새 시대를 감당하여 도약시키리라.

다른 세상에 있는 비발디가 자신의 음악이 이처럼 끊임없이 사랑받으며 훌륭한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고 있는 상황에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은 아닌지.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55호(2022년 10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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