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의재미술관에서 정성준 작가의 전시를 본 적 있다.

같은 시리즈의 작품이지만, 그때의 시선과 지금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환경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있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 와닿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환경체제가 급격히 변화를 맞게된 시대를 뜻하는 ‘인류세’의 위기에 직면한 지금, 그가 10여 년 동안 이야기해 온 주제인 환경문제는 ‘바로 지금’의 문제가 되었다.

이번 작가탐방에서는 중국 유학을 마치고, 현재 중국과 서울을 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정성준 작가를 만났다.

2009년 그는 중국으로 떠나 중앙미술학원 유화과에서 100년 개교이래 외국인 첫 수석으로 석사를 졸업했다.
 

■불편한 진실
 

정성준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정성준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그가 본격적으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한 것은 2009년 1월 중국에 도착해서였다.

뿌연 하늘을 보고 처음엔 안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미세먼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에서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산이 녹아내리고 북극곰이 표류하는 이야기를 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됐다.

그가 중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보았던 미세먼지로 가득 찬 회색빛처럼, 그의 작업에는 회색조가 많이 등장한다.

2018년 작 <An Inconvenient Truth>에서도 회색조 화면 가운데, 코끼리가 홀로 서 있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안개 속을 걷는 코끼리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공장의 매연으로 뿌연 연기 속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코끼리가 있다.

이러한 회색조는 환경오염이 초래하는 암울한 미래를 암시한다. 이제 인류는 계속 피하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회색빛 도시, 여행을 떠나는 동물들
 

그렇지만 그가 그리는 미래의 세상은 온통 회색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멈춰버린 것만 같은 도시에서 북극곰과 펭귄을 비롯하여 사슴, 너구리, 코알라 등 동물들이 트램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동물들의 세상은 밝은 색채로 유머러스하고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동물들은 식량을 구하러 다니거나 얼음을 나르기도 하고, 사람을 대신하여 청소를 하기도 한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Future is to up to you(미래는 당신에게 달렸다)’와 같은 팻말을 들고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

그들이 목적지로 향하는 곳은 과거 풍요로웠던 자연의 어느 곳일지도 모른다. 언제 도착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가 노력하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희망은 잃지 않는다.

최근작에서의 변화는 화면 안의 간판이나 현수막, 광고 메시지를 환경 관련 메시지로 슬쩍 바꿔놓은 것이다.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는 <America Second>(2017)에서도 트램의 문구 ‘get out’과 트럼프의 사진을 교묘히 배치하여 풍자적 요소를 담아낸다.

정성준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정성준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또한 현대소비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광고의 요소들을 환경 관련한 이슈들로 치환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더욱 강력하고 실현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어내고자 시도한다.

그의 작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지금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어둡지만은 않은 미래를 상상하게끔 하기 때문이 아닐까?

환경오염으로 먹을 것이 없어 동물들이 식량을 찾아다니는 비극적인 상황을 여러 재미있는 요소들을 통해 상상할 거리를 제공한다.

동물들은 어디로 떠나는 것인지, 그들이 옮기는 것은 무엇이며, 왜 사진을 찍는 것인지, 이 작은 이야기들은 서사를 만들어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인간과 동물이 공존 할 수 있는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이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54호(2022년 9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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