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암미술관(관장 채종기)에서는 9월 5일부터 10월 5일까지 기획초대전 ‘기록하고, 기억하라!’를 개최하게 된다.

조선 시대 최고의 독서가인 다산 정약용 기념관 비문에는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쉬지 말고 기록해라. 생각이 떠오르면 수시로 기록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라고 적힌 다산의 글이 있다. 대한민국은 조선왕조실록 등 무려 16건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을 가진 기록문화 국가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한국은 왕조시대를 거쳐 열강의 침략 속에서 위정척사, 동학 농민 운동, 항일 의병 등의 민족 운동을 펼쳐왔으며,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하여 자주 민족 독립운동을 통해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만 곧이어 한국전쟁으로 동족상잔의 전쟁과 남북분단을 거치며 역사적 굴곡과 파란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70여 년이 지난 한국 사회는 눈부신 경제발전과 자유 민주주의를 향한 부단한 노력과 희생으로 놀라운 성장을 일궈내었다.

과거의 거대한 질곡과 그늘을 간직한 역사 들을 끄집어내어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증언과 진술을 채집하며, 재배치하는 과정은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기억을 수집하고 실재의 구조를 드러내는 ‘기록’ 작업이다.

영원한 책임이 있는 기록은 진실규명과 반성으로 그 시대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반성의 시간으로 제한된 역사를 보완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을 철저하게 하지 못하면 잘못을 되풀이하기 때문에 미래에도 비극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우리 민족의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서 기록하고, 새로운 세대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기억 해야 한다.

그늘진 역사를 마주하게 될 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할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며 새롭게 기록하는 작업을 하여 현실 속으로 끌어내어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의미 있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있다.

김서경, 김운성, 과거 오늘을 묻다, 2012, FRP, 90cmx90cmx190cm. ⓒ은암미술관 제공
김서경, 김운성, 과거 오늘을 묻다, 2012, FRP, 90cmx90cmx190cm. ⓒ은암미술관 제공
이동환, 칼로 새긴 독립전쟁(목판), 2022, woodcut, 가변크기. ⓒ은암미술관 제공
이동환, 칼로 새긴 독립전쟁(목판), 2022, woodcut, 가변크기. ⓒ은암미술관 제공

김서경·김운성 공동 조각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독립운동가부터 시민운동가들의 존재를 입체 형상으로 제작하여서 한 장소에 모았다.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밝히는 과정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과거의 문제가 현재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일본인 작가 야지마 츠카사는 2003년부터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사진 촬영을 하였다.

이번 전시는 중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 '위안부' 생존자들을 방문하여 촬영한 사진들로 구성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을 맞은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현지에서 살아가다가 세상을 떠난 여성들을 만나고 생존자들의 초상화를 찍으며, 동시에 그녀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제기한다.

이동환 작가는 구한말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운동을 주도한 이회영을 중심으로 설립한 신흥무관학교와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흐름을 작품으로 풀어내었다.

일제강점기라는 큰 국가적 재난을 당한 특수한 시대를 목판화 연작으로 상기시키고자 한다.

칼끝이 지나간 흔적은 그대로 남아, 한번 새기면 다시 지울 수 없는 제작 방식으로 암흑시기의 역사적 사실과 상처를 목판에 기록하였다.

이동환, 칼로 새긴 독립전쟁, 2022, woodcut, 가변크기. ⓒ은암미술관 제공
이동환, 칼로 새긴 독립전쟁, 2022, woodcut, 가변크기. ⓒ은암미술관 제공

현재 독일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 정영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 비인간적인 인체실험을 통해서 생물학무기를 개발하던 731부대에 관련된 작품을 내보인다.

이미지로 드러낼 수 없는 상상 불가능한 사건의 역사를 작가의 그림들을 통해 얼마나 무자비하고 무의미한지 다시 기억하며, 끊임없이 발생하는 전쟁과 집단살인에 반대하며 세계평화를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을 작품으로 그려내었다.

1980년 5월 광주, 그곳에 있었던 하성흡 작가는 몸소 겪은 역사적 기억을 재현하여 수묵으로 서사를 그려낸다.

작가는 증인으로서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하는 마음을 품고 그들의 넋을 위로해주고, 역사적 사건을 놀랍도록 세밀한 필치와 스케일이 큰 작업을 통해 우리의 기억에 각인되는 강렬한 작품을 선보인다.

역사적 사실과 상처를 기록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예술적 범주를 넘어 진실에 접근하고자 얽혀 있는 실타래를 조심스럽게 풀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정영창, 이시히 시로 (731 부대장), 2019, korean Ink acrylic and laquer on canvas, 160c_. ⓒ은암미술관 제공
정영창, 이시히 시로 (731 부대장), 2019, korean Ink acrylic and laquer on canvas, 160c_. ⓒ은암미술관 제공
하성흡, 김군, 2019, 한지에수묵, 21cmx30cm. ⓒ은암미술관 제공
하성흡, 김군, 2019, 한지에수묵, 21cmx30cm. ⓒ은암미술관 제공

바로 잡지 못한 역사는 기록으로 소환되어 우리의 기억 속에 각인되는 예술작품으로 만나보도록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다.

전시 기간에 참여작가들과의 대화가 토크쇼 형식으로 예정되어 있다.

9월 30일 오후3시부터 은암미술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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