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톡톡] '수프와 이데올로기'...지극히 사적이지만, 가장 공적인 이야기
[영화 톡톡] '수프와 이데올로기'...지극히 사적이지만, 가장 공적인 이야기
  • 정찬혁 시민기자
  • 승인 2022.07.11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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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감독은 오랫동안 가족영화를 만들어 왔다.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은 조총련 간부인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굿바이 평양>은 북한으로 보내진 오빠들과 조카들의 일화를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로 담아낸바 있다.

극영화인 <가족의 나라> 또한 재일조선인 2세인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픽션인 드라마로 변주했다. 아

버지, 오빠, 조카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양영희 감독의 영화들은 분명 지극히 사적인 한 가족의 일화이지만 개인사로 치부하기 어려울 만큼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에 연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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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식민지, 냉전이데올로기가 낳은 분단의 현실 그리고 제일조선인 2세의 애환 등 그녀의 가족들은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응축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양영희 감독의 영화들은 지극히 사적이며 공적인 가족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양영희 감독의 신작 <수프와 이데올로기> 또한 전작들처럼 가족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감독의 어머니다. 일제식민지 시절 제주에서 오사카로 이주한 그녀의 어머니는 한국의 여느 어머니들처럼 딸의 혼사가 걱정이다.

이러한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이번 영화에는 새로운 가족이 될 사람이 등장한다.

그 사람은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프로듀서이자 양영희 감독의 남편 아라이 카오루다.

일본인 사위는 절대 허락할 수 없다던 아버지의 말과 제일조선인2세라는 감독의 신분이 새로운 갈등을 예견하는 듯 하지만 이 가족들의 만남에 갈등은 없다. 어머니는 일본인 사위를 환대한다.

사위가 오면 장모는 씨암탉을 잡는다는 옛말처럼 삼계탕을 준비한다.

한국인답게 망설임 없이 마늘을 양껏 쥐어 닭 속에 집어넣는 것으로 영화는 어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정겹게 보여준다.

환대에 응답하는 것은 남편 카오루도 마찬가지다. 장모님이 해주신 삼계탕을 직접 요리해서 대접하는 카오루의 모습에서 이 가족에서 국경은 사라진 듯 보인다.

더욱이 80넘은 노인(어머니)에게 장례식 참관을 서비스로 제공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홍보 전화에 화를 내는 남편의 모습을 찍는 카메라에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멋지게 바라보는 감독의 애정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어머니와 감독 그리고 카오루는 새로운 가족을 이루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듯 보이나 영화의 이야기는 과거를 향한다.

어머니의 고향 제주에서 손님이 찾아온 뒤부터 감독의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손님들은 제주 4·3 연구소의 직원들이다.

연구소의 사람들은 4.3사건의 생존자인 어머니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묻는다.

물음에 답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불안한 듯 떨리고, 불안한 마음을 진정하려는 듯 어머니는 연신 자신의 손등을 문지른다.

당신이 경험한 그날의 이야기를 전하는 어머니의 말투에는 지금은 듣기 힘든 옛 제주 사람의 말투가 묻어있다.

마치 한국인으로서 그녀의 마음과 몸은 1948년 그 비극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힘겨워 보인다. 인터뷰가 끝난 뒤 어머니는 거짓말처럼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만다.

딸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고 한밤중 아무도 없는 다락에 홀로 올라가 동생을 찾는다.

그 동안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유쾌하고 다정함을 보여줬던 어머니의 모습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당사자가 마음에 봉인해둔 상처의 무게와 비극의 상처가 형태를 갖추고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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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러니하게도 양영희 감독이 부모님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은 이때부터다.

클래식과 커피를 좋아했던 오빠들을 일부러 북한에 보냈던 아버지와 어머니,

조총련 활동에 매진하고 연금까지 쪼개가며 북한의 자식들에게 돈을 송금했던 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1948년 4월 3일의 비극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감독은 이제야 알게 된다.

이웃과 가족은 물론 약혼자까지 잃고 도망치듯 제주를 떠나야 했던 어머니에게 한국은 비극의 가해자이자 피하고 싶은 끔찍한 괴물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가족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세대 간의 진정한 이해에 가닿는다는 평범한 가족영화의 클리셰로 끝을 맺진 않는다.

감독은 자신의 눈으로 어머니의 현재와 과거를 바라보는 자신의 삶을 카메라로 이야기할 뿐이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비극에 대한 공감이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저 어머니의 고향 제주를 직접 찾아가 4·3 사건의 전말을 확인하고, 현재의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을 담아내며 영화는 한 명의 딸이 겪은 가족의 역사를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가정사를 전하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비극이 오늘날 모두의 문제임을 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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