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그려주세요.”...“원래 예쁜데요 뭘~.”
7월 3일 오후 3시 광주극장, 관객과 대화

4년 간의 기록, <니얼굴>


이번 6월, 종영한 지 얼마 안 된 드라마 한편이 화제가 됐다. 바로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극본 노희경·연출 김규태)이다. 드라마 이영옥(한지민)의 에피소드에서 그녀의 쌍둥이 언니역(이영희)을 맡은 정은혜씨 때문이다.

극 중에서 영옥의 언니 영희는 다운증후군으로 나오는데 그 역할을 맡은 정은혜씨는 실제 다운증후군이다.
 

ⓒ 영화 니얼굴 스틸컷
ⓒ 영화 '니얼굴' 스틸컷

안방극장이라 불리는 드라마에서 장애인인 장애인의 역할을 맡아 열연한 건 처음이기에, 은혜씨의 연기는 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그런 정은혜씨의 실제 이야기가 6월 23일 개봉했다.

영화 <니얼굴(서동일, 2020)>

영화는 양평의 문호리 프리마켓에서 사람들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은혜씨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카메라는 2016년과 2019년을 오가며 은혜씨의 집, 프리마켓, 그리고 2019년 서울문화재단 10기 입주작가가 되기까지의 모습들을 전한다.

원래 영화 <니얼굴>은 2020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나는 2020년 12회 <광주여성영화제>에서 처음 이 작품을 보았다.

당시 이 작품을 연출한 감독님이자 은혜씨의 아버지인 서동일 감독을 직접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할 때 만 해도“꼭 개봉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바람의 말을 전했는데 이렇게 개봉을 하게 돼 진심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12회 광주여성영화제 GV 사진
12회 광주여성영화제 GV 사진. 

서감독은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서 4년간의 은혜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여러 가지‘힘듦’이 있었음을 이야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가족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거기다 은혜씨가 일반인이 아닌 발달장애(다운증후군)를 가지고 있기에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는 경우(일반인이라도 그럴 경우가 다반사겠지만)가 간혹 있어 이 모든 것을 오롯이 다 담기에는 가족으로서의 제약과 어려움이 따랐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그는 이미 2007년에 <작은 여자, 큰 여자, 그 사이에 낀 남자-에피소드2>에서 만화가인 7년 연상의 아내 장차현실, 다운증후군 딸 은혜씨, 그리고 당시 3살이었던 막내아들 서은백군의 일상을 통해 자신의 가족 간의 여러 고민과 갈등 등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바 있다.

그러한 그가 다시 한번 자신의 가족들에 관한, 그러나 이번엔‘니얼굴’작가로서 은혜씨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히 담아냈다.

“직장도 없어요. 장차현실 소꿉이라는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미술학원에서 청소하고 뒷정리하면서 돈을 벌었죠. 그런데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질투가 나서 저도 그 옆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림 그린 지 4년이 되었습니다.”(영화 <니얼굴> 은혜씨의 말)

엄마인 장차현실이 유명 만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은혜씨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엄마가 어릴 적 가르쳐보기도 했지만 그때는 전혀 흥미도 관심도 없었다.

그런 은혜씨가 우연한 기회로 인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매달 셋째 주 주말에 열리는 경기도 양평 문호리 프리마켓에서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주는‘니얼굴’의 작가로 인기 있는 셀러가 됐다.

ⓒ영화 니얼굴 스틸 컷
ⓒ영화 '니얼굴' 스틸 컷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은혜씨는 때로는 엄마에게 변덕도 부리고 짜증도 내지만 흥도 많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프리마켓의 이쁜이다.

영화는 은혜씨의 일상과 4년간 2000여 명의 캐리커처를 그린 그의 열성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그리고 사회와 소통하는 은혜씨의 모습을 여과 없이 담아낸다.

그리고 2019년 10기 입주작가 공모전에 지원, 당당히 서울문화재단의 작가가 되어 활동하는 은혜씨의 모습을 통해 장애인도 비장애인 못지않은 사회 활동의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한다.

한국 영화계의 또 다른 미래, 은혜씨

은혜씨는 15살 때 국가인권위원회 지원으로 제작된 옴니버스 인권 영화 <다섯 개의 시선(2005)> 중 한편인 <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박경희 감독, 각본)>에 출연했지만, <우리들의 블루스>에서처럼 대사가 많거나 하진 않았다.

영화 <언니가...>의 첫 화면에는 “이 시나리오는 정은혜양의 실생활을 기초로 구성되었습니다.”라는 자막이 나오고 영화는 시작된다.

연기 같으면서 연기가 아닌 듯한, 은혜씨의 어릴 때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15살이었던 은혜씨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스태프들이 온전히 은혜씨의 기분을 맞춰줘야 했기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한 그가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그때보다 많은 대사를 소화하고 능청스런 연기도 하며 마지막엔 직접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를 감독과 연기자, 스태프들에게 선물까지 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올해 3월, 핀란드 영화 한편이 개봉했다. <그 남자는 타이타닉을 보고 싶지 않았다(테무 니키 감독, 2021)>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다발 경화증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어 시력과 기동성을 모두 잃은 야코라는 남자가, 전화로만 소통하다 사랑에 빠진 연인 시르파를 만나러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를 찾아가는 위험한 여정을 그린 영화로, 2021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오리종티 엑스트라 관객상을 받았다.

이 영화가 더욱 주목을 받은 이유는 비장애인이 장애인 캐릭터를 소화해 냈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야코역을 맡은 배우 페트리 포이콜라이넨이 실제 다발 경화증을 앓고 있는 시각 장애인이자 지체 장애인으로 장애인의 역할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이는 전 세계의 영화계에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었다.

ⓒ광주극장에 붙혀진 포스터
ⓒ광주극장에 붙혀진 포스터

그러나 그는 원래 비장애인이었다가 공교롭게 장애인이 된 경우이기에, 영화 <언니가 이해하셔요>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의 은혜씨의 연기(지적 장애인)는 또 다른 의미로의, 한국 영화계의 도전과 미래라 할 수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한 관객으로서 비장애인의 장애인 연기가 아닌 이제는 은혜씨와 같은 연기자가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이질감 없이 배우로 받아들여지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그 날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영화 <니얼굴>을 보고 있을 당신은 비록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살며 주변 사람들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은혜씨의 일상을 보면서 어느새 잔잔한 웃음이 입가에 번지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이젠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할‘지금’이다.


**영화 <니얼굴>은 광주극장, 광주독립영화관에서 절찬리 상영 중이며, 7월 3일 오후 3시 상영 후, 광주극장에서 정은혜, 장차현실, 서동일 감독의 관객과의 대화(GV)가 있을 예정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