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 참사 추모 1주기에 부쳐                       
 
아, 하늘은 우리들의 하늘은 

이효복/시인
 
 
1. 꼿발로 서본다
 
뜀박질로 네가 올 것만 같아 내게로 내게로 올 것만 같아 
살얼음지는 유월의 빙판길 어딘가에 네가 있을지 몰라 
나를 묻지 말아요 죽었다고 말하지 말아요 난 아직 살아있어요 
생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해요 운림 54번 시내버스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 22분, 짓눌린 버스 안에 갇혀 
난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난 집으로 가야 해요 
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해요 맑은 새소리 밤새 칭얼대고
둔덕마다 아롱진 꽃들 온통 울음뿐인 밤 
어딘가에 네 음성 들려만 오는데
 
 
2. 불멸의 시간, 불멸의 기억
 
사라지지 않아요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어떠한 것도 바라볼 수 없어요
바람으로도 숲의 음울로도 나의 귀는 어두워 차마 들을 수가 없어요 
어찌하나요 이렇게 곱디고운 6월의 연푸름, 
길목마다 수국이며 자귀꽃 펴오르는데
심장이 멎고 하늘도 눈을 감아 울어버려요
해도 달도 문을 걸어 갈피마다 당신 발자국 듣는데,
이제라도 창밖 여울져 품안 자락에 껴들 것만 같은데, 
형형색색 그리움의 나라에 아무런 소리 들리지 않아요
 
우리들의 가슴은 어디에 있나요 
우리들의 심장은 어디에 있나요
여린 하늘이었다가 매섭게 우는 저 비명의 처연
숨결이 바람결이 나의 곁을 휘돌아 달려갑니다
이렇게 시간이 모지게 버거운 날이었습니다
 
 
3. 꿈의 시간들, 날아오른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일이다
걷는다는 것, 숨결을 느낀다는 것 
절망 속에서 우리가 빚어낸 거룩함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즐기며
우리는 날마다 날아오른다
그렇게 업적을 이루며 꿈꾸는 것이다
 
위태롭게 살아가는 우리
우리는 얼마나 평화로울 수 있는가 
꿈의 시간들 함께 공존할 수 있는가
꿈의 물결, 그것이 우리가 지망하는 사랑인 것이다
 
아무도 없는 뜨락, 아무도 없는 페허의 집
무음의 바람, 얼마나 악독하고 지독한 형벌인가
누군들 지하의 땅속에 묻지 마라
우리들의 고귀한 영혼을 헤죽이지 마라
 
우리는 함께 가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추상과 느낌
하나일진대 그와 내가 한 몸일진대 
우리는 공기로도 바람으로도 숨결로도 호흡으로도 만나는 것이다
얼마나 애태워 기다렸던가
한 번만, 눈꺼풀 한 번만이라도 떠보시라고
손끝의 차가운 온기 한 번만 뿜어보시라고
그대의 숨결, 한 번만 단 한 번만 품어 안고 싶었지
그것이 위대한 것이라고
마지막을 그렇게 떠나가시었네 
아, 하늘은 우리들의 하늘은 눈감으시었다
이처럼 별도 달도 내리지 않아 세상은 나의 시간은 멈춰 
불멸의 기억이 되었다 어찌 꿈으로라도 바람으로라도 
숨결로라도 아니 오겠는가
그 시간들이 우리에게 영원히 살아남지 않겠는가
우리에게 위안이고 희망인 것을 우리는 안다 
하늘은 우리들의 하늘은
맑은 해를 쏟다가도 가끔씩 흔들려 우는 하늘은
망연자실 뼈를 깎는다 
 

지난 9일 광주 학동참사 1주기 추모제에서 이효복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예제하
지난 9일 광주 학동참사 1주기 추모제에서 이효복 시인이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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