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옛 전남도청 앞 영결식장

다정했던 나의 친구, 5·18 사형수, 내란수괴, 그렇게 고생만 했던 정동년 형이 이리 그렇게 쉽게 눈을 감아버렸단 말인가.

5월 27일 팔순잔치에 초대받아 함께 점심을 먹고 막걸리를 마셨는데 29일 세상을 떠나버렸단 말인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소식을 듣자 가슴이 막히고 입이 닫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넋나간 기분일 뿐이네.

박석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31일 오전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엄수된 '고 정동년 선생 5.18민주국민장' 영결식에서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예제하

1964년 6·3한일회담 반대운동은 전남대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그 시절 운동하던 과정에서 같은 대학 학생으로 동지로 맺어져 60년이 다 되도록 우리는 함께 싸우고 함께 지내며 가장 가까운 벗으로 지냈었네.

나는 64년 6·3운동으로 가을에 구속되어 재판을 받느라 65년 초봄의 운동에는 한발짝 뒤에 서 있었네.

64년에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된 고인은 학생회 주도로 학생운동을 이끌겠다 면서 우리가 함께 모의하여 그해 3월 31일, 이른바 3·31 데모라는 전국 최초의 대학생 시위를 성공 적으로 수행했던 데모 대장이 되었네.

그 결과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고 학교는 제적당해 불행의 함정으로 들어갔네. 

몇 개월 뒤, 감옥에서 풀려 났고 휴교중이던 학교가 개학하자 나는 8월 23일 월남파병반대 데모를 주동하여 구속되었고,

얼마 뒤 나는 구속에서 풀려 감옥에서 나오자 군에 입영하라는 영장이 나왔고, 그대 또한 영장이 나와 우리는 한 날 한 시에 군용열차를 타고 논산훈 련소에 입영하고 말았네.

대학생 시위를 예방하 려고 시위 관련자를 군대에 보내는 첫 번째 케이 스로 우리는 군생활을 해야 했었네.

논산훈련소에서 전반기 훈련을 마치자 후반기 교육을 대구의 영천 군사학교로 나란히 배치받아 고인은 행정학교에서, 나는 헌병학교에서 교육 받으면서 주말이면 만나 함께 삶의 고단함을 하소 연하던 때가 엊그제 일 같구려.

후반기교육을 마치자 고인은 양구의 21사단에, 나는 같은 양구의 2사단에 배치되어 이웃 사단에서 군생활을 하면 서 우리는 또 3년간을 주말이면 만나 세상을 걱정 하고 삶의 고달픔을 토로하면서 함께 살아갔었네.

ⓒ예제하
ⓒ예제하

그래서 우리는 한 날 한 시에 나란히 제대하여 광주에서 다시 살아가야 했었네.

나는 복학하여 학교를 마쳤으나 그대는 학교를 등지고 사회로 나가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며 생활인으로 돌아갔었네.

그러나 37세이던 1980년 다시 학교에 복학하여 학생이 됐으나 5·17 군사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에 연루되어 견딜 수 없는 고생을 겪어야 했던 사람이 고인이었네.

5월 17일 야밤에 예비검속에 걸려 지하실에서 고문이나 받던 그대는 그 다음날 일어난 5·18운동을 알지도 못했던 일인데, 광주의 시민항쟁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둔갑시켜, 아무런 관계가 없던 그대를 김대중이 준 자금을 대학생들에 나눠주어 광주의 내란을 일으킨 수괴로 꾸며내 끝내 그대는 사형을 선고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말았네.

얼마나 심한 고문을 당했으면 거짓 자백을 해야 했고, 또 견디지 못해 자살을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해 사형수로 2년여 감옥생활을 하고 말았네.

감옥에서 나온 그대는 본격적인 민주투사가 되어 광주의 진상을 밝히고 신군부의 내란죄인들을 처벌하기 위한 온갖 투쟁에 앞장서서 싸웠던 사람 이 그대였네.

국회 광주청문회에 증인으로 나가 모진 고문의 실상을 온 국민에게 폭로하였고, 그 뒤로는 광주민주항쟁연합 상임의장,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공동의장, 5·18민중항쟁 30주년 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 이철규 열사 사인 규명대책위 공동의장, 광주 남구청장을 역임하면 서 광주의 진상을 밝히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했네.

시간이 많이 지난 2021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으 로 선출되고, 42주년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해야 할 책임을 성실히 수행했 었네.

그런 힘든 일을 집행하느라 누적된 피로가 끝내 그대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생각을 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구려.
 

ⓒ예제하
ⓒ예제하

광주가 낳은 위대한 민주투사요 민중운동가인 그대를 지상에 서는 다시 만날 수 없다니 이 허전한 마음을 어떻 게 달랠 수 있겠는가.

친구요 동지요 전우였던 정동년 형!

그대는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었네. 광주의 진상을 밝히고 민주주의가 꽃피도록 노력한 그대의 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네.

이제 모든 것 다 내려놓고 저승에서라도 편안하고 안온하게 영생을 누리시기 비오네.

그리고 민주주의가 더 이상 후퇴하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봐 주시기 바라네.

나의 영원한 친구여! 잘 가시게
2022년 5월 31일 

박 석 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