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 영결식장에서 낭송
■조시
깨끗한 민주의 새벽을 위하여
-정동년 선생 서거를 애도하며
박 몽 구(시인,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원)
오직 민주주의의 외길을 걸어온 사람 정동년
그는 자신에게 버거운 삶의 무게가 주어질지라도
한번 마음먹은 길을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지상에 자신을 한낱 재로 남길지 모르는
사형수라는 멍에가 씌워져도
5.18광주민중항쟁은
북한의 사주로 벌어진 일도 아니고
특정 정치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일으킨 폭동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손길 하나 빌릴 데 없는 감옥에서도
철창에 머리를 부딪치며
길고 질긴 독재의 사슬 끊어
끝내 이기리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버텨냈다
오직 한 사람의 권좌를 지키기 위하여
사냥개들 풀어 캠퍼스 구석구석 냄새 맡고
위기에 처한 때 국민을 지키라는
준엄한 법의 명령 어긴 채
군대를 풀어 입들을 틀어막기에 급급했던 봄날
정동년은 15년 만에 빼앗긴 강의실을 찾아 돌아왔다
접어두었던 페이지를 막 열려던 그를
검은 속 숨긴 권력의 충견들은
내란 음모의 주동자로 몰아
사위가 막힌 컴컴한 독방에 밀어 넣고
끝없이 배후를 자백하라고 짓눌렀다
하지만 그는 일본 제국의 아가리에
다시 먹혀들어 갈 뻔한 강토를
온몸을 던져 구한 일밖에 없다고
결코 누구의 꼭두각시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며칠이고 잠을 빼앗아 세 치 혀를 굽히려 들고
통닭구이 틀에 그의 온몸을 꿰어
마음에 없는 말을 뱉으라고 윽박질렀지만
그는 마음 밖의 말을 한마디도 뱉지 않았다
혹독한 고문을 거뜬하게 견뎌냄으로써
5.18은 민주 제단에 온몸을 던진 애국시민들이
민주정신으로 이룩한 혁명임을,
살신성인으로 이룩해낸 민주 해방구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온몸으로 민주의 성지를 지킨 정의의 사도
일생 고난과 남루를 견디며
민주 회복의 외길 걸어온 참일꾼
이제 내려놓은 묵은 짐 동지들에게 맡기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라
하늘에서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향해 발포한
원흉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혀내는 데
갈고 닦은 지혜를 빌려주시고
가난과 푸대접으로 포위된 광주가
다시 하나로 뭉쳐
깨끗한 민주의 새벽
들어 올릴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라며
정한수 한 그릇 올린다
비록 우리 곁을 먼저 떠났지만
미처 다 걷지 못한 민주의 대도
지치지 말고 묵묵히 걸어가도록
하늘나라에서도 함께 해주시기를
온 마음 담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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