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진상규명 외친 민주열사 40명...예술만장으로 부활
5.18진상규명 외친 민주열사 40명...예술만장으로 부활
  • 이상현 기자
  • 승인 2022.05.12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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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예총, 42주년 맞아 5.18민중항쟁 '예술만장전'
민중화가, '스스로 오월이 된 사람들(열사전)' 제작 전시
'5.18 진상규명' 외치다 희생된 '민주열사' 40명 담아
이달 30일까지 국립5.18민주묘지 입구에 전시 중

5.18광주민중항쟁은 1980년 5월에 멈춰선 기념과 추념이 아니라 42년이 지난 2022년 5월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광주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회장 박종화)이 전국의 민중화가들과 함께 제작한 42주년 5.18민중항쟁 기념 '예술만장전- 스스로 오월이 된 사람들(열사전)'이 국립5.18민주묘지 입구에 전시되고 있다. 만장에는 1980년 5월 이후 5.18민중항쟁 진상규명을 외치다 희생된 40명의 민주열사가 그려져 있다. ⓒ광주민예총 제공
광주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회장 박종화)이 전국의 민중화가들과 함께 제작한 42주년 5.18민중항쟁 기념 '예술만장전- 스스로 오월이 된 사람들(열사전)'이 국립5.18민주묘지 입구에 전시되고 있다. 만장에는 1980년 5월 이후 5.18민중항쟁 진상규명을 외치다 희생된 40명의 민주열사가 그려져 있다. ⓒ광주민예총 제공
ⓒ광주민예총 제공
ⓒ광주민예총 제공

그날의 오월을 오늘도 내일도 현재진행형으로 만든 동력에는 1980년 5.18민중항쟁의 정신을 단순한 추념사업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 농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민주화, 통일 그리고 민족의 자주화를 외치다 거리와 대학캠퍼스, 공장, 차디찬 고문실에서 사망한 수많은 민족민주열사들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최후의 항전을 펼치다 계엄군의 총탄에 스러진 5.18열사의 연장선에 1980~90년대 민주열사의 붉은 피가 새겨져 있다.

광주민족예술인단체총연합(회장 박종화)은 42주년 5.18민중항쟁을 앞두고 이들을 추념하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예술인들이 민주열사 40명을 만장에 담아 국립5.18민주묘지 입구에 '스스로 오월이 된 사람들(열사전)'을 오는 13일부터 30일까지 전시한다.  

올해로 3년째 이어지는 5·18정신 계승을 위한 '예술만장전'은 전국의 민중화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2020년 5.18 40주년부터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제1회는 '오월의 미풍'이란 주제로 5월을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였고 제2회는 '오월의 미담- 존엄’을 주제로 죽음의 순간에도 인간 존엄을 숭고하게 희생으로 지켜낸 광주시민의 공동체정신을 담았다.

이현미 광주민예총 사무처장은 "5.18민중항쟁은 광주라는 공간에 갇히지 않고, 5월의 시간에도 얽매이지도 않고, '5.18당사자'라는 대상화된 존재를 넘어 전 국민이 365일 만들어온 위대한 항쟁이라는 역사를 기록하고자 했다"고 올해 42주년 예술만장전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현재진행 중인 5.18민중항쟁의 대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1980년~90년대 전국 곳곳에서 5.18 진상규명을 외치다 희생된 열사 40분을 모시는 열사전으로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광주민예총 제공
ⓒ광주민예총 제공

또 이현미 사무처장은 "김의기 열사를 비롯한 '스스로 오월이 된 사람들'은 하나 뿐인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진상 규명과 민주화, 통일을 외쳤다"며 "열사 40분의 평균 연령 26세. 그 꽃다운 나이를 민주의 제단에 바친 그 뜻을 다시 새기고 이를 세계 시민에게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42주년 5.18민중항쟁을 맞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는 추모객들은 묘지입구 이팝나무꽃 아래에서  붉은피로 만장에서 부활한 민주열사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주면 어떨까. 
 

아래는 '열사전' 참여지역, 작가, 열사.

강원 : 신구경(박인기 열사)
경남 : 신미란(허원근 열사) 신희경(양영진 열사) 이문희(이석규 열사) 이경미(박진석 열사)
경북 : 박종범(박태영 열사) 송주응(황보영국 열사) 안중돈(신호수 열사) 정봉진(김종태열사)
제주 : 고경화(김길호 열사)
전북 : 김미경(최덕수 열사) 송은경(강상철 열사) 한숙(조성만 열사)
광주 : 김병택(장용훈 열사) 김희련(기혁 열사) 노여운(이상남 열사) 바다(박관현 열사) 박철우(이철규 열사) 박태규(김병국 열사) 이사범(송광영 열사) 정희승(홍기일 열사) 조정태(이상모 열사) 허달용(김학수 열사)
충북 : 김성심(장이기 열사) 최승민(박영진 열사)
경기 : 박일훈(김의기 열사) 박정민(이길상 열사) 이문영(이재문 열사) 이해균(박래전 열사)
서울 : 김선동(이동수 열사) 김천일(최동 열사) 박은태(박종철 열사) 박흥순(이재호 열사) 서수경(박선영 열사) 양형규(김태훈 열사) 이동주(이내창 열사) 이영선(신장호 열사) 이종희(이한열 열사) 이철재(표정두 열사) 장순일(김병구 열사)

 

       2022년 예술만장전- 스스로 오월이 된 사람들
          자료제공: 광주전남추모연대 

 

이름

사망년월일

내 용

비고

1

김의기

1980.5.30

(향년 22)

서강대생으로, 광주학살에 항의하는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남기고 종로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투신 사망하였다

국립518

민주묘지

2

김종태

1980.6.9

(향년 23)

노동자로, 서울 이화여대 앞 네거리에서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나라!"고 외치며 분신 사망하였다

국립518

민주묘지

3

김태훈

1981.5.27

(향년 23)

서울대생으로, 학내에서 산발적인 시위 도중에 도서관 6층에서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를 세 번 외치고 투신 사망하였다

국립518

민주묘지

4

박관현

1982.10.12

(향년 30)

80년 전남대 학생회장으로 광주항쟁과 관련 구속되어 5·18 진상규명 요구 단식 중 운명하였다

국립518

민주묘지

5

홍기일

1985.8.22

(향년 26)

노동자로, 광주 전남도청 앞 금남로에서 "광주시민이여! 침묵에서 깨어나라!"고 외치며 분신 사망하였다

이천

민주공원

6

송광영

1985.10.21

(향년 28)

경원대 재학 중 9학원악법 철폐하고 독재정권 물러가라!”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외치며 분신 사망하였다

이천

민주공원

7

장이기

1986.3.16

(향년 34)

청주대 졸업, 안양 박달 예비군 훈련장에서 전두환 정권을 옹호하는 시국훈화에 대해 반박, ‘정권 탈취 야욕에 불타 광주시민 수천 명을 학살한 전두환을 처단하자라고 외친 후 교관들에 의해 폭행, 사망하였다

이천

민주공원

8

이동수

1986.5.20 (향년 24)

서울대 재학 중 학생운동 참여, 86년 서울대 오월제 행사 중 학생회관에서 파쇼의 선봉 전두환을 처단하자”, “미 제국주의 물러가라외치며 분신하였다

 

9

강상철

1986.6.25

(향년 23)

사회운동가이며, "전두환 및 5.18 쿠데타 주동자는 물러가라"고 주장하며 목포역에서 분신 사망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10

표정두

1987.3.8

(향년 25)

노동자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11

황보영국

1987.5.25

(향년 27)

노동자로, 부산 상고 앞에서 독재타도’, ‘광주학살 책임지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등을 외치며 분신 사망하였다

이천

민주공원

12

박태영

1987.12.10

(향년 21)

목포대생으로, “군부독재 끝장내고 민주정부 수립하자!"는 주장을 하면서 42일간 학내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분신 사망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13

조성만

1988.5.15

(향년 25)

서울대생으로,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14

최덕수

1988.5.26

(향년 21)

단국대생으로,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외치며 학교 교정에서 분신 사망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15

박래전

1988.6.6

(향년 26)

숭실대생으로, "광주는 살아있다!"고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하였다

마석

모란공원

16

김병구

1989.9.2

(향년 34)

노동자로,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서 광주학살 원흉 처단과 노태우 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투신, 이후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자결하였다

이천

민주공원

17

박인기

1990.12.17

(향년 29)

강원대 전두환 장기집권 음모저지 및 민족민주운동 탄압분쇄 투쟁위원회위원장으로 활동 중 구속수감, 수감생활 중 단식으로 신장염 투병 중 사망하였다

이천

민주공원

18

이길상

1998.12.7

(향년 38)

경희대 재학 중 8011월경 살인마 전두환 물러가라”, “광주 민중항쟁 투쟁으로 계승하자유인물을 제작, 학내 살포로 연행되어 고문 조사, 그 후유증으로 투신 사망하였다

이천

민주공원

19

기혁

1985.01.31

(향년 21)

85년 전남대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을 하던 중 행방불명, 16일 만에 무등산 중봉 근처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어 아직까지 그 죽음의 이유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20

이재호

1986.05.26

(향년 23)

83년 서울대에 입학하여 86년 서울대 총학생회 반전반핵 투쟁위원장으로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가두투쟁을 전개하던 중 김세진 동지와 함께 분신으로써 항거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21

신호수

1986.06.19

(향년 24)

86년 방위 근무 중 모아둔 삐라를 문제 삼아 경찰이 강제 연행한 후 여천 대미산 동굴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2009년 진실화해위에서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가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밝혀졌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22

박선영

1987.02.20

(향년 22)

87년 서울교대 재학 중 학회 편집부에서 활동하였지만 학내 비민주적 학사운영 및 암담한 조국의 현실에 분노, 항의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자결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23

이한열

1987.07.05

(향년 22)

87년 연세대 재학 중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석, 경찰 최루탄 파편에 맞아 사망하였다. 이한열 열사의 피격사건으로 학생, 시민들은 분노를 참지 못해 궐기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876월 항쟁은 전국을 뒤흔들었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24

이석규

1987.08.22

(향년 22)

87년 대우조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하여 동료 노동자와 평화시위 중 직격 최루탄에 맞아 운명하였다. 망월동 안장을 위해 운구 행렬이 출발하자 경찰은 공권력을 동원하여 고성의 다리 위에서 시신을 탈취, 남원의 선산에 안장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남원

선산

25

김길호

1988.03.25

(향년 35)

80년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한 후 당시 기독교 농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86~87년 농산물 제값받기 투쟁에 참여하였다. 87년 무안읍에서 농민회 회원들과 광주 방면으로 행진하다가 경찰의 진압 구타에 의하여 운명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26

장용훈

1988.05.30

(향년 30)

택시기사로 근무하면서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 대변하는데 앞장서던 동지는 88년 순천 현대교통 근무 중 부당해고에 맞서 분신 항거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27

양영진

1988.10.10

(향년 22)

부산대생으로 올바른 문학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고민하던 중 88년 군입대를 앞두고 조국통일, 반미자주, 군자주화를 염원하며 이제 조국 산하에 실하디 실하게 뿌리박은 진달래가 되고파하며라고 절규한 후 투신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28

이철규

1989.05.06

(향년 26)

조선대 민주조선 교지편집장으로, 89년 교지에 <미제침략사>를 게재하였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수배 중 경찰의 검문을 마지막으로 행방불명되어 7일만에 4수원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죽음의 이유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29

이상남

1989.05.16

(향년 31)

879월 노동자 대투쟁 시 현대중공업 사측의 강제진압 중 구사대에서 차량을 전진시켜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이후 18개월의 긴 투병기간 중 끝내 운명하고 말았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30

이상모

1989.05.29

(향년 21)

89년 박진석 동지의 분신소식을 듣고 회사의 노조분열 책동에 분노하여 대우조선 기숙사 옥상에서 분신 항거하였다. 동료에게 평소에 분신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31

박진석

1989.06.04

(향년 23)

89년 대우조선 사측에서 구사대 가입 강요를 받고 이에 반발 노동자와 노동자간의 싸움을 유발 시키지 말라항의하며 분신, 민주노조사수의 희망을 이야기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32

김병국

1989.06.18

(향년 24)

광주교대에 입학하여 잘못된 교육 모순 타파를 염원하며 학내 신문사 활동을 하였으며, 89년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되었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33

신장호

1990.05.19

(향년 22)

89년 성남 대유공전에 입학하여 민중가요 노래패 어울림활동을 하였으며, 90년 전대협 출범식에 참여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가던 중 장성역에서 검문을 피하려다 열차에서 뛰어내려 사망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34

김학수

1990.06.06

(향년 24)

조선대 산업공학과 학생으로 총학생회 예비역 협의회 총무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905·18 10주기 기념식 시위도중 과도한 최루가스 흡입 후유증으로 투병 중 운명하였다.

망월동 민족민주

열사묘역

35

이재문

1981.11.22

(향년 48)

남민전 사건으로 검거된 후 옥중에서 광주학살에 항의단식,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하였다

마석

모란공원

36

허원근

1984.04.02

(향년 23)

부산 수산대생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강제징집으로 군복무 중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천주교

흑석동성당

37

박영진

1986.03.17

(향년 27)

신흥정밀 노동자,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노동3권 보장하라며 경찰 구사대에 맞서 분신 자결하였다

마석

모란공원

38

박종철

1987.01.14.

(향년 23)

서울대생,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던 중 고문으로 운명하였다

마석

모란공원

39

이내창

1989.08.15

(향년 28)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안기부 기관원에 의해 거문도로 유인된 후 의문사 당하였다

이천

민주공원

40

최동

1990.08.07.

(향년 31)

학생운동 후 노동운동 투신, “미제와 적들의 탄압을 고발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자결하였다

이천

민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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