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일부터 25일까지 메이홀 10주년 초대전
이정모 5.18시민군 삽화, 아틀리에 소품, 소묘 등 전시

이상호 '눈 감고, 눈 뜬 오월의 사람들' 전시 초대 글 [전문]


우리 옛겨레와 인연한 몽골에선 노래를 도(Duu)라 한다.

도에는 민요, 서사곡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기쁜 날 부르는 노래를 ‘여럴’이라 한다.

여럴은 ‘여르(행운을 빈다는 뜻)에서 왔다. 미래의 사건을 내다보며 행운을 비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
 

악기 반주 없이 가수가 단출하게 부른다. 그림으로 치자면 색을 넣지 않은 스케치와 같다.

전혀 기쁠 수 없는 정신병동에서, 정작 환우들은 넋 놓고 웃으며 여럴과 같은 노랠 흥얼흥얼 부른다.

그곳에선 처절한 비명과 동시에 웃음이 번진 여럴이 나풀대며 소음을 유발한다.

알 수 없는 내면의 깊은 상처들, 폭력(때론 국가폭력)에 노출된 한 인간의 슬픔이 뒤죽박죽된 공간이 바로 정신병동이다. 

사람이 죽으면 눈을 감게 된다.

아니 죽지 않아도 순간순간 인간의 눈꺼풀은 내려앉고 이를 ‘눈 깜짝할 새’라 말하고, 찰나라고도 한다.

밤마다 인간은 잠을 자기 위해서 또 눈을 감게 된다. ‘여럴’과 같은 역설처럼 눈 감은 어두움은 인간의 생명을 사뭇 연장시키는 일도 한다.

그러나 영영 죽게 될 때는 진짜 눈을 감게 된다.
 

이상호- 해방광주, 오월공동체 72x72cm 한지에 먹 2022.
이상호- 해방광주, 오월공동체 72x72cm 한지에 먹 2022.

역사는 그렇게 죽은 사람의 눈을 뜨게도 만드는데, ‘오월 광주, 오월의 사람들’이 그 주인공이다.

작가 이상호는 눈 감고 눈 뜬 이들의 목격자요 같은 운명의 어깨동무였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새가 파닥거리면서 울듯, 실낱같은 목숨을 부여안고 발표한 그간의 작품들은 여럴과 정반대의 슬픈 노래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웃으며 이웃으로 돌아올 때마다 누구보다 반갑고 기뻐서 박수를 치곤 했었다. 

광주정신 메이홀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여기에 5월 초대전으로 이상호 작가를 만장일치로 모셨다.

오월 광주항쟁과 유월 민주화항쟁 그날의 증인이자 정신인 이상호 작가의 신작과 함께 광주항쟁 인물전기 삽화, 정신병동 스케치 연작까지 그가 흥얼거리는 휘파람 소리까지라도 채집하여 부려놓고 싶었다. 

광주항쟁으로 아픔을 겪다 운명한 이정모 시민군의 전기에 수록된 삽화 10여점, 최근 그려낸 신작 5점과 이상호 아카이브로 선보일 아틀리에의 소품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그린 소묘 60점, 작가의 선친이 병상에 누웠을 때를 담아낸 소묘 20점도 전시된다.

비록 눈은 감았지만, 그의 그림으로 이들 모두 눈을 뜨고 살아있는 오월의 사람들이다. 

이상호- 감기 기운있는 자화상 화장실 거울앞에서, 28x14cm, 종이에 연필.
이상호- 감기 기운있는 자화상 화장실 거울앞에서, 28x14cm, 종이에 연필.

마음이 아파 잠깐 눈을 감는 것은 괜찮다. 그렇다고 눈을 감을 수 없는, 눈 뜬 이들은 전진하고 나아가리라.

한 화가에게 과잉으로 들이닥친 불운들, 국가폭력의 잔혹성에 물러서지 않은 진실이 여기에 있다.

무등산의 소나무 같이 강인한 화구의 선전 앞에 경의를.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 토하고 발언하고 내놓은 뒤에야 치유를 받게될 것이다.

작가와 우리 광주시민들 모두 상처가 아물고 새살을 품는 이번 전시가 되었으면 바란다.

최후항쟁지 전일빌딩을 지키며 72x72cm 한지에 먹 2022.
이상호- 최후항쟁지 전일빌딩을 지키며 72x72cm 한지에 먹 2022.
이상호-상무대 영창에 갇혀 72x72cm 한지에 먹 2022.
이상호-상무대 영창에 갇혀 72x72cm 한지에 먹 2022.
이상호-도청을 지킨 새벽의 전사들.
이상호-도청을 지킨 새벽의 전사들.
이상호-나주정신병원에서 제작한 문자도-51x107cm, 한지에 채색, 2013.
이상호-나주정신병원에서 제작한 문자도-51x107cm, 한지에 채색,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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