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제목인 ‘더 스퀘어’는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평면적인 조형물로, 영화 전체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정사각형이 바닥에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의 설명은 이렇다.

“‘더 스퀘어’는 신뢰와 배려의 성역으로 이 안에서는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무가 있다.”

공공의 공간인 길에 정사각형을 이루는 선을 그려 넣어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냈다. 

모든 선이 대칭되어 만나는 도형은 인간의 평등을 상징한다.
 

미술관 앞 ‘더 스퀘어’ 설치작품. ⓒ김유진
미술관 앞 ‘더 스퀘어’ 설치작품. 

‘더 스퀘어’ 안에서는 인간이라는 조건만으로 모든 개인이 평등한 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상식적이고 윤리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 스퀘어’의 존재를 떠나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더 스퀘어’가 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입을 수 있는 것은 그렇지 않은 현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을 영화는 비판하고 있다.

의식 높은 사회인 복지 국가 스웨덴의 계층화와 자국민이 가진 이민자들을 향한 사회적 반감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이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들의 발밑에 고개 숙인 노숙자들과 구걸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층 빌딩의 밑에서 아무렇게나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주위의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의 경계는 매우 가깝다. 

손을 뻗으면 충분히 닿지만 누구도 손을 건네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암묵적으로 약속된 행동으로 보이기도 한다.

2015년 4월, 스웨덴 베르나모 지역의 반달로룸 디자인 미술관 광장에 설치된 정사각형 조형물은 감독의 문제의식이 표현된 예술 작품으로 '더 스퀘어'의 제작 배경이 되었다. 

감독인 루벤 외스툴룬드는 인간 본성이 가진 문제점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왔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주제로, 제시된 공간 안에서 낯선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루벤 외스툴룬드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관객들을 적극적이고 사려 깊게 만들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에서 관객들은 매우 안전하게 놓여 있을 뿐입니다. 관객들은 누구에게 동정심을 느껴야 하는지 알고, 누구와 사랑에 빠질지도 압니다. 모든 것은 형식이 있습니다. 저는 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습니다. 관객이 스스로 도덕적 입장을 취하도록 만들려 합니다.”

그의 영화는 예술의 현장에 놓인 게 아닌, 스크린을 통해 안전함을 확보한 상태로 예술과 서사를 관람하는 관객의 도덕성을 끌어내기 위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의 양심을 시험하기 위한 시각적 장치와 심리적 장치를 사용한다. 

장애인, 난민, 노숙자, 등 길바닥에 앉아 행인의 적선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배경은 한낮의 도시의 활기 속이며 그 안에서 확연한 계층 간의 이질감을 표현한다. 

반복적으로 취약계층을 비추고, 그런 시퀀스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것은 결국 아무도 그들에게 적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가 존재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티안이 적극적으로 적선을 원하는 난민에게 샌드위치를 사주는 장면에서 그는 크리스티안에게 당당히 양파를 빼고 주문해 달라고 요구한다. 

어이가 없어진 크리스티안이 던지듯 샌드위치를 테이블에 놓으며 양파는 직접 빼라고 말한다. 

사실적인 카메라 묘사 속 냉소적인 유머는 러닝타임동안 관객의 양심이 동정심으로 치우친 상태로 놓이게 됨을 방지한다.

‘더 스퀘어’, 정사각형은 영화 속 곳곳에 장치되어 기능한다. 

크리스티안이 자신의 소지품을 훔친 범인을 협박하기 위해 편지를 넣으며 내려오는 아파트 계단은 정사각형 모양을 띤다.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오래된 아파트에 두려움을 느끼는 크리스티안은 정사각형 형태의 계단을 빠르게 내려간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계단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다. 이때 원근법으로 인해 계단은 마치 피라미드를 거꾸로 놓은 듯한 형태가 된다.

크리스티안 집 현관의 그림.
크리스티안 집 현관의 그림.

크리스티안의 집 현관엔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다. 

이 그림은 정사각형 모양이며 크기와 색을 통해 여러 정사각형이 겹겹이 쌓인 듯한 시각효과를 가지고 있다. 

입체적으로 생각해볼 때 피라미드를 띤 형태이며 사회 계층 구조 중 하나인 ‘피라미드’를 형상화한다. 

이는 부분 불평등 계층구조로 상층이 매우 희귀하게 나타나고 중간층은 일부 존재하며 하층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구조의 특징은 세습적인 사회상으로 지위의 변동이 적어 계층 간 이동이 어려우므로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쫓기듯이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는 크리스티안의 모습은 상위 계층이 자신의 계급이 아닌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본능을 표현한다. 

즉, 정사각형인 ‘더 스퀘어’는 모두가 동등하고 평등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시선의 방향을 바꾸면 계층화가 뚜렷이 보이는 피라미드형 계층화를 상징한다.

크리스티안의 딸이 속한 치어리딩 팀은 정사각형 무대 안에서 치어리딩을 펼친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채로 동등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일정한 영역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이 장면은 영화 안에서 ‘더 스퀘어’가 조형물로서 가진 의미로 보인다.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채 살 수 있는 사회이며, 모였다 흩어지기며(치어리딩 동작 중 하나) 평면적인 구조 또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질을 상징한다. 

이를 표현하는 인물이 크리스티안의 딸, 아이들이라는 점과 영화 전반적으로 크리스티안의 윤리성을 아이의 시선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아직 사회에 고착화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평등화의 가능성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스퀘어'는 ‘더 스퀘어’뿐만 아니라 미술관에 전시된 다양한 공간 미술들로 공간에 대한 낭만성을 나타낸다. 

모든 전시물이 각자 의미를 품고 있다. 하나의 공간을 차지함으로써 그 공간 안에 예술의 가치가 실존하는 것이다.  

즉, 예술은 공간 안에 존재함으로써 그 가치를 향유한다. 

특히 ‘더 스퀘어’는 공간에 특정한 조형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같은 길이의 선으로 이루어진 일정한 공간 자체만으로 예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공간에 추상적 메시지를 부여하며 사회의 구조적 이상인 평등함을 위치시킨다. 

이러한 조형물과 공간의 구조는 예술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사용해 인간의 이상을 상징화하고 있으므로, 공간을 낭만적으로 해석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스퀘어 안에서 치어리딩 하는 아이들.
스퀘어 안에서 치어리딩 하는 아이들.

'더 스퀘어'는 이 사회를 풍자하는 영화이다. 

값진 예술들을 통해 그 과정을 또 하나의 ‘더 스퀘어’인 네모난 스크린 안에 담아냈다. 

주인공이 사건과 윤리의식 혼란으로 인해 정체성에 변화를 겪게 되는 내러티브는 영화 내에 분명히 나타난다. 

이는 관객의 자기반성을 의도한 시도로 보인다.  

상징화된 인물 '크리스티안'을 통해 개인이라는 고립된 영역과 예술의 간극을 표현한 '더 스퀘어'는 계층화의 허점과 개인의 허영을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시대의 사회 문제를 예리하게 사유할 수 있게 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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