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전부

십 년도 훨씬 전에 작가와 한 건물에서 지냈던 적이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는 달랐지만, 작업실에 들러 「생명의 숲」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작가를 보았다.

먹(墨)이 품는 대나무의 육중한 힘을 그곳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서로 이사를 나가면서 오랜 시간 작업을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지만, 작가가 집중하고 있는 작업의 근간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다시 작가를 만나면서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다.

올곧은 생각과 작업에 대한 신념은 퇴색되지 않았으며 붓을 놓는 그 순간까지 변함없을 것이란 생각이 확고하게 들었다.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창과 창을 통해 맞바람이 들치는 작가의 작업실은 그 모든 것들을 있게 한 근간으로 보였다.
 

■생(生)의 안과 밖

홍성민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홍성민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이번 전시의 주제는 『숨』이다.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나온 우리는 마지막 숨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혼자의 힘으로 숨을 쉰다.

들숨과 날숨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살(肉)을 키우고 뼈(骨)를 세우며 살아간다.

이것이 우리의 생이다. 하지만 작가가 전시에서 보여주고 말하고자 하는 숨은 원초적 숨을 쉬는 행위가 아니다.

작가는 “안(生)과 밖(死)의 숨을 말하고 싶었다. 몸은 세상을 떠나도(死) 그가 추구했던 정신은 영원히 살아있다(生). 다시 말하면 우리 곁에 살아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이다. 전시 명인 「숨」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을 넘어선 살아있음, 다시 말해서 생의 안과 밖을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홍성민- 겨울한파   한지에 수묵채색, 116×177cm   1984. ⓒ광주아트가이드
홍성민- 겨울한파. 한지에 수묵채색, 116×177cm 1984. ⓒ광주아트가이드

작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오월항쟁과 맞닥트렸다.

그리고 40여 년이 넘은 세월 동안 그 안에서 목을 축이고 몸을 뒤척이며 살아왔다.

바로 세울 척추를 바랐으나 굽어진 허리는 잠자리마저 바로 눕지 못할 날 선 대나무를 선택하게 했다.

작가는 “단과대 축제를 시작으로 입영훈련 중에 오월항쟁을 맞았다. 그리고 최루탄과 함께 거리에서 대학 4년을 보냈다.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5년 7개월의 사범대학의 교직 의무기간을 마치고 결국 내가 할 일은 그 부끄러움이 그림의 몫으로 되새김하는 일이었다. 덤으로 사는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염치를 차리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작가는 대나무를 화제로 선택했다.

버릴 것 없는 대나무는 우리 산천 어디서나 머리를 들어 올리며 자란다.

먹을 것이 없는 구황 시에는 죽순으로 먹을거리를 내어주고 다 자란 대나무는 생활용품이 되었으며 댓잎은 콩과 더불어 된장과 장을 담그고, 난방용 불쏘시개가 되었고, 동학농민혁명을 거치면서 대창으로 무기가 되어 싸움의 일군(一軍)이 되었다.
 

발상의 전환과 익숙한 낯섦

홍성민- 그날   한지에 수묵, 150×420cm 2019. ⓒ광주아트가이드
홍성민- 그날. 한지에 수묵, 150×420cm 2019. ⓒ광주아트가이드

대나무는 작가의 작업에서 재해석되어 새롭게 태어난다.

문인화에서 보는 대나무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의 선비정신과 유교와 성리학으로 학습된 정치 질서에서 존재하지만, 작가는 대나무를 당연한 인식의 관습 깨기로 낯설게 보기에 도전한다.

작가는 “나의 절대적 삶의 축은 학습된 환경적 지배에서 벗어남에서 시작됐다. 내게 대나무는 민중의 대나무가 맞다. 판화마저 대나무가 주류인 이유가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확장된 작업으로 대나무에 독재자 전두환을 참수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다시 말하면 대나무는 선비들의, 가진 자들의 놀이가 아니라 민중들의 삶 그 자체인 셈이다.”고 설명했다.

오월항쟁 작업에 전력을 다한다.

「우리동네」(1984), 「겨울한파」(1984)를 시작으로 「열사의 고향」(1993)까지 현재를 있게 한 역사의 참상을 기록한다.

항쟁의 전면에 나섰던 열사와 이 땅의 주인인 민중이 살았을 공단의 동네 풍경인 「우리동네」(1984), 얼어붙은 불완전한 시대의 자화상인 「겨울한파」(1984)는 항쟁을 있게 한 열사들이 거주했던 광천동 시민아파트와 우리 모두의 서늘한 얼굴 그 자체이다.

「열사의 고향」(1993)은 땅에 발을 딛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도는 열사들의 안과 밖을 보여준다.

박승희를 시작으로 강경대, 이철규, 조성만, 홍기일, 오월항쟁의 무명열사1·2·3, 박종철, 이한열, 문재학까지 모두 12분의 열사를 모셨다.

몸이 없는 박승희, 물에 포박된 채 떠 있는 이철규, 검게 불에 탄 홍기일, 몸과 머리, 사지가 없는 오월항쟁의 무명열사까지 작가가 안고 있는 열사들의 안과 밖은 처절하다 못해 가슴이 미어진다.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다.
 

생명 평화 미술행동

홍성민- 조왕님 전. 한지에 수묵채색, 178×76cm 1995. ⓒ광주아트가이드
홍성민- 조왕님 전. 한지에 수묵채색, 178×76cm 1995. ⓒ광주아트가이드

80년대 작업부터 현재까지를 망라한다.

작품은 완성되었으나 때를 놓쳤던 오월항쟁 관련 그림들이 대거 전시되는 이유다.

420 ~ 450cm의 초대형 작품 4점이 전시장을 빼곡하게 채운다. 철저하게 오월을 표상하는 전시다.

표정이 없고, 수의를 입은 채 발을 땅에 딛지 못하고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열사를 작가만의 발언으로 위무하는 전언일 수 있다.

또, 「열사의 고향」(1993)처럼 거꾸로 가며 누워 있는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더 큰 생각으로 작업의 지평을 확장하며 나아간다.

장소 시간에 구애 없이 전국 어디서나 필요한 곳이면 달려가 그곳의 작가들과 연대하며 자유로운 미술행동을 펼친다.

특히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지경인 바다 생명 복원 촉구와 경고의 시작으로 플라스틱 쓰레기 가득한 연안 환경에 집중한다.

4대강 사업과 DMZ에도 지속적 접근을 시도한다.

더불어 고(故) 박관현과 최미애 윤상원 열사의 삶인 안과 밖도 곧 조명할 예정이다.

작가의 12년 만의 개인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박수를 보낸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50호(2022년 5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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