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와 모호의 이중성

추웠다. 등 뒤로 바람이 쌩쌩 불었다. 넓은 들판 한쪽, 막다른 곳에 작업실이 있었다.

장작 난로가 활활 타고 있었고, 작업 하는데 최적이었다. 동굴 같았다.

공간을 장악하고 화폭을 들여다보며 의식 저편의 우물 속 편린을 건져 올리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높은 천정을 받치고 있는 기둥과 벽면에는 작업을 끝낸 작품과 현재진행 중인 작품이 있었다.

작업실 밖에는 들판을 바라볼 수 있는 휑하게 뚫린 공간이 하늘과 맞닿아 작업으로 지친 머리와 손을 쉬게 했다.

나무 의자에 앉아 무심하게 사계절이 변화하는 들판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안개가 대체하는 것이란

'허언의 은유-조작된 풍경'- 김용안 작가. 116.8×91cm oil on canvas 2021. ⓒ광주아트가이드
'허언의 은유-조작된 풍경'- 김용안 작가. 116.8×91cm oil on canvas 2021. ⓒ광주아트가이드

대부분의 작업이 ‘Hidden’이란 명제를 가진다.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뜻을 가졌다.

맞다. 숨겼고, 완전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안개는 더 넓고 깊게 퍼져간다.

푸른 나무의 몽환적인 파란 색감이 작품 전면에 도포되어 있다. 안개가 파란 색감 위로 뒤엉키며 지배한다.

결국, 화폭은 온통 파랗고 하얀 안개뿐이다. 이 세상이 아닌 저편 다른 세상인 것만 같다.

겨울 어느 날, 폭설로 인해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것처럼 안개는 파란 나무의 전체를 볼 수 없게 하고 또, 나무의 밑동과 그 아래의 모든 것을 정확히 알아볼 수 없도록 깔려있다.

칼 샌드버그는 그의 시(詩)에서 우리는 언젠가는 안개로 돌아갈 것이며, 우리의 살과 뼈는 안개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노래했는데, 작가의 그림 속 안개는 이곳과 저곳의 경계를 나누는 어떤 것을 표식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또 있다. 안개로 대체되는 이중성이 바로 그것이다.

나무의 밑동이 보이지 않게 안개로 감싸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중성의 극한이며 욕망과 부조리, 부패의 모든 것을 뜻한다.

부드럽고 습하며, 때로는 푸근하게 느껴지는 안개는 밝고 정확한 경계와 염치(廉恥)마저 혼미하게 미혹하는 욕망의 덩어리를 근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관해 “안개는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죽음이란 이미지를 가진 두 개의 중의적 표현을 대체한다. 권력과 자본의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상과 현실의 모한한 경계까지도 안개에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나무 역시 자연적인 가지를 지니고 있지 않다.

누군가로 인해 인공적인 전지를 당하고, 원하는 품새로 적당히 구부러지고 심미적으로 길러졌다.

결국, 작가는 푸른 나무와 하얀 안개를 통해 본질적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물으며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감춰진 풍경 속 진실을 찾아서

늦었다. 좀 더 일찍 작가를 찾았어야 했다.

푸른 나무의 가지가 더 전지 당하기 전에, 안개가 화폭의 전면을 완전하게 도포 해버리기 전에 작가를 만났어야 했다.

진즉 감춰버린 안개 속 진실을 찾아내기에 이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얀 어둠 속에 갇혔다고 할까.

김용안 작가.
김용안 작가.

몽환적이고 경계가 모호할수록 위험하며, 반대로 아름답다. 안개로 위장한 상태.

안개가 덮어버린 수많은 권력 지향과 부조리, 자만감과 권력 과시 등은 안개가 걷혀야 비로소 눈에 보일 것이지만 그나마도 탐탁지 않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어서 폭풍의 눈처럼 고요하고 아름답다.

시간을 알 수 없으며 기다림에 지치고 휘몰아치는 광풍으로 마침내 무릎이 꺾이고 말 것이기에.

작가는 절망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며 나아간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조차 찾지 못했던 안개를 제치고, 현대인의 고립된 모습을 탈피해간다.

반대로 더 직접적인 화법으로 기호와 패턴을 이용해 인공을 첨예화시키는 작업도 끌어들인다.

반어법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더 극대화 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작업에도 기대가 크다. 작가는 “국립5·18민주묘역에 근접해 있는 작업실은 앞으로 해야만 할 작업에 대해 말을 걸어온다. 더 세밀하게 말한다면 권력 지향에 대한 거부 작업에 대한 생각의 기초라고 할까. 이곳이 작업실이 된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란 의미다. 내용적 고민에서부터 시각화하는 형식의 매칭을 고민 중이다.”며 “소재의 다양성 추구에서부터 시작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작가의 작업 속에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깊은 울림과 사유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어떻게 읽어 내고 내 안으로 들일지는 관람자의 몫이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48호(2022년 3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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