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약칭 PTA)의 작품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닐 법한 무의식을 특별한 그 어떤 것처럼 다루는 데 탁월하다. 신작 '리코리쉬 피자'(2022)도 예외는 아니다.

PTA는 <데어 윌 비 블러드>(2007)를 기점으로 이전과는 다른 작품 경향을 보여줬는데 이번에 개봉한 신작 <리코리쉬 피자>(2022)는 또 다른 분기점을 제시한다.

팬들은 그가 선보인 작품 중에 가장 “몽글몽글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초기작 <부기나이트>(1997), <펀치 드렁크 러브>(2002)의 향취를 품었다고 말한다.

새롭게 나아가든, 과거로 회귀하든 <리코리쉬 피자>가 하나의 분기점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필자는 변함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의 전반적인 작품을 관통하는 특징들이라고도 볼 수 있는 예측 불가한 몽타주(이것의 최정점은 난해하기로 유명한 <인히어런트 바이스>(2014)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근원적인 갈등(혹은 무의식)을 특별하게 드러내려는 시도들이다.

열등감, 질투, 복수심, 집착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다른 것보다도 이러한 감정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관해 더욱 집중해보고 싶다.

시대 드러내기 : 불연속적인 몽타주

PTA의 영화는 이어지는 시퀀스를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신(scene)조차 예상에 빗나갈 때도 있다.

이러한 시도는 대중적인 영화와는 색다른 측면으로 평가되는데 일반적 영화의 특징으로 대표되는 굵직하고 명확한 사건들과 갈등. 

이것의 부재를 ‘불연속적인 몽타주’라는 영화적 구성으로 대체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시도는 특정 시대상을 조각조각 담아내는 데에도 유용하다. <리코리쉬 피자>는 19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두며 PTA는 실제 역사를 러브스토리에 덧입혀 흔하지 않은 이야기로 완성시켰다.

대표적으로 ‘오일쇼크’로 인해 개리와 알라나의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는 대목이 그러하다.

기름을 넣지 못해 도로 위에 자동차들이 그대로 멈춰있어야만 했던 그 시대의 이슈를 불연속적 몽타주를 통해 적절히 드러내면서 서사적 갈등을 폭발시키는 요소로도 이용한다.

<리코리쉬 피자>에서 개리와 알라나는 10살 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커플이고 알라나가 아역 배우인 개리의 매니저가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알라나는 개리의 동료 배우 랜스와 사랑에 빠진다.

흔한 로맨틱 코미디라면 피튀기는 사랑싸움에 돌입하나 싶지만 뜬금없이 물침대(1970년대만 해도 생소한 물건이었나보다)가 불연속적 몽타주를 통해 등장한다.

그리고 개리는 물침대 사업을 하기 시작한다. 뻔한 삼각관계 로맨스를 상상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당혹스러운 전개일 수밖에 없다.

이후에 알라나도 랜스와의 짧은 연애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개리의 물침대 사업을 돕는다.

이 모든 이야기는 1970년대 할리우드의 제작자 ‘개리 고츠먼’의 실화를 근거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후반부에서 핀볼 금지법이 없어지면서 개리가 핀볼 게임장을 여는 모습도 등장하는데, 이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몽타주이지만 당시 시대적 이슈의 일부분으로서 두 주인공의 관계 속에 자연히 스며든다.

이처럼 PTA의 영화는 대부분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두며 그 시대만이 품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프레임 속에 펼쳐낸다.

<리코리쉬 피자>로 인해 소환된 그의 초기작 <부기 나이트>, <펀치 드렁크 러브> 역시 197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두고 있으며, 21세기 초 미국 석유 사업가의 야망을 다룬 <데어 윌 비 블러드>, 1950년대 영국 패션디자이너의 야망과 사랑을 담은 <팬텀스레드> 등도 불연속적인 몽타주를 통해 각 시대만이 지닌 이미지를 선보인다.

무의식 드러내기 : ‘어머니’와 근원적 환상

<부기 나이트>에서 성적으로 문란한 아들을 강하게 질책하던 어머니의 모습부터 <리코리쉬 피자>에서의 ‘유사 어머니’의 모습까지.

전 작품을 관통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PTA의 진지한 고민은 실제로 좋지 않았던 어머니와의 관계에 기인한다.

풀리지 않는 인생의 난제를 작품 속에 반영한 셈이다. 그의 작품에서 어머니와 근원적 환상은 모든 일의 원인일 때가 많다.

정신분석학 용어를 잠시 빌리자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거세공포와 같은 근본적인 트라우마를 그의 작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리코리쉬 피자>에서는 모자간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개리의 바쁜 어머니 대신하여 매니저가 된 알라나와 개리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흥미롭게도, 초반 알라나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개리가 무대 위에서 친 장난은 ‘어머니’와도 같은 정신적 지주인 중년의 여배우의 미움을 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개리는 극단에서 쫓겨나고 결과적으로 알라나만이 ‘유사 보호자’처럼 개리 곁에 머문다.

두 인물 사이에 이성적인 감정의 기류는 충분히 감지되지만, 누군가가 이들에게 연인관계냐고 물어보면 극구 부정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한편으론 생각에 잠기게 한다.

사랑의 감정이 없어서라기보다 10살이라는 나이차와 '유사 보호자'라는 관계로 인해 본능적인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미묘한 감정을 극복하고자 개리는 자신의 또래 여자아이와 교제를 시도하기도 한다.

알라나는 이에 대한 복수라도하듯 아버지뻘인 배우와 데이트를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개리와 알라나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함께하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알라나가 오일쇼크 상황에서도 철부지 없는 아이처럼 행동하는 개리에게 실망하기 전까지 말이다.

PTA의 또 다른 작품 <매그놀리아>(1999)에서 프랭크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인물이다.

이로 인해 생겨난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은 이름을 어머니의 성으로 개명하는 것으로 표출되고, 한편으로는 거세 불안을 떨쳐내려는 듯 강력한 여성 혐오자가 되는 데 일조한다. 

또한 <마스터>(2012)를 비롯해 대부분의 PTA 작품 속 남성들이 여성의 가슴,  특히 유두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은 어머니, 근원적 환상과 연결된다.

<리코리쉬 피자>의 이전 작품인 <팬텀 스레드>(2017)에서는 직접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기도 한다.

극중 유명 디자이너인 우드콕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옷소매에 고이 간직하는 인물로, 어느 날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중 알마라는 여성을 우연히 만난다.

부재하는 어머니의 자리의 대체재가 된 알마는 우드콕이 자신을 이용만할 뿐 진정한 사랑은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때 쓰이는 강력한 무기는 바로 '모성애'이고, 우드콕은 결국 굴복한다. 

지금까지 두 가지 요소로 PTA 작품의 경향을 이야기했지만 몇 가지 특성만으로 특정 감독의 전 작품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특히 PTA의 작품은 매번 색다른 시도를 하기 때문에 정의내리기는 더욱더 어렵다.

다만 이로 인해 PTA가 자신의 영화에 궁극적으로 담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이며 이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만 있다면 이 글을 읽는 시간이 전혀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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