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기능이양제도 변화로 본 지방분권의 어제와 오늘

지방자치란 주민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또는 자치단체를 통하여 처리하는 것을 말하며, 자치단체는 주민으로부터 자치권을 위임받고 있다. 이러한 자치권은 제도적으로는 헌법 제117조에 의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 속에서 구체화 되는데,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자치조직권, 자치행정권 등으로 분류된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6월항쟁의 결실인 6·29선언에 명기되고, 김대중대통령의 단식투쟁으로 1991년 지방의회의원 선거가 실시되면서, 5·16군사혁명으로 중단된 지 30년 만에 부활하였다.
 

지방자치 부활 30년이 지난 시점에 우리의 지방자치가 아직도 제대로 정상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는 지방에 자치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법·재정·조직 등 주요 권한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이유는 지방에 돈이 없다는 점이다. 어찌된 일인지 재정자립도는 갈수록 하향추세이고 국고보조금은 지금도 계속 증대되고 있다. 지방공무원 급여마저도 중앙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지방에 내세울만한 산업도 없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방 스스로의 기획은 설 땅이 없다. 쉽게 말해 돈벌이가 없는 것이다.

시민운동가 시절부터 자치분권 전도사로 불리웠던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장집무실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그날 박시장은 우리의 지방자치가 막혀있는 현실을 절망적으로 토로하였다.

“중앙과 지방관계가 여전히 수직적이고 종속적 관계이다. 지방은 단순히 중앙의 결정과 지시를 이행하는 대리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의 민원이 폭증하는 동물보호정책을 처리하기 위해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싶은데 시장권한 밖이다. 지방이 일부 자율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중앙정부의 정책적 결정과 방향을 같이 해야 한다. 중앙정부에서 결정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중앙정부 기능의 지방이양은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되었고, 노무현정부에서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하는 등 대대적인 노력을 경주하였으며 역대정부에서 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지속적인 시도가 있었다.

김대중정부의 지방이양추진위원회에서부터 현재의 자치분권위원회에 이르기까지 지방이양 전담기구를 통해 지방분권정책의 핵심과제인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을 추진해 왔다. 기능이양의 원칙과 배분기준도 자치분권특별법상에 기재된 중복배제 원칙, 현지성 또는 보충성 원칙, 포괄적 배분 원칙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기능이양작업은 권한과 조직을 지방정부로 내려놓지 않으려는 중앙부처의 관성, 지방분권에 호의적이지 않는 입법부의 비협조로 번번이 장애에 부딪쳐왔다. 그 결과 국가사무와 자치사무의 비율은 여전히 7:3 수준에 머물러 있고 자치입법이나 재정분권 수준은 지방의 요구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와 같은 결과를 보더라도 한시적인 단기간의 노력만으로는 자치사무의 비율을 쉽게 끌어올릴 수 없다. 과거 지방분권촉진법에서부터 현재의 자치분권특별법에 이르기까지 이들 특별법들은 일종의 한시법으로서 추진위원회의 활동도 이에 따라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지방분권을 촉진하여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한시적일 수 없다는 점에서 동법을 한시법으로 규정한 것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정부는 연방제에 준하는 실질적 지방분권을 표방하며, 먼저 지방분권형 헌법개정을 추진하였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헌법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치분권 법령의 제개정과 국가사무의 과감하고 신속한 지방이양을 통해 지방분권정책의 획기적인 성과를 달성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2018년 5월 대통령이 참여한 5당대표회담에서 여야 합의로 지방일괄이양법을 추진하기로 하였고, 66개 법률개정안, 571개 이양사무로 구성된 제1차 지방일괄이양법이 그해 10월 국회 운영위에 회부되어 마침내 2020년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지방이양법제의 일괄입법은 2004년에도 행정자치부와 지방이양추진위회가 법제정을 시도하였던 것이지만, 국회 상임위원회 소관주의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국회접수가 어려워 난항을 겪었던 것인데, 문재인정부에서 지방이양일괄법 제정을 국정과제에 포함시켜서 여야대표 합의로 진행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방분권에 대한 입법부의 비협조는 또다시 본색을 드러내어 일괄이양방식의 지방이양법 입법은 당장 2차 지방일괄이양법의 국회 상정에서부터 가로막혔다.

자치분권위원회가 이양대상 사무를 의결하여 행안부에 이송하여 발의된 법안이 21년 제2차 지방일괄이양법으로 국무회의를 통과하였고 1차 때처럼 운영위 직속 상정을 추진하였으나 야당은 또다시 국회 상임위 우선주의 원칙을 내세우며 가로막았다. 결국 주무부처인 행안부는 우회로를 선택하였고 상임위별로 나누어진 12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일괄이양방식 입법의 후퇴이자 향후 법제화에 난관으로 작용하지 않을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이러한 입법방식 논란은 가뜩이나 지난한 중앙정부 권한·사무의 지방이양 사업을 더욱 더디게 할 가능성이 높은 현실에서 지방일괄이양법의 심의 권한을 갖는 ‘지방분권 관련 상설특별위원회’의 설치 노력이 경주되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지방일괄이양법 제정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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