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반장선거도 토론은 한다.

오래전 일이다. 손자 녀석이 제 방에서 혼자 떠들고 있다. 며느리에게 물었다. ‘반장선거에 출마한대요.’ 웃으면서 하는 대답이다.

토론 없는 선거

토론은 선거의 꽃이다. 뱃속에 제갈공명이 들어앉았어도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 수 있으랴. 말해야 안다. 토론을 통해서 자신의 소신을 말하고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한다.

지난 3일 대선후보 첫 4자토론에 나선 (왼쪽부터) 심상정,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후보. ⓒ국민의힘 선대본부 갈무리
지난 3일 대선후보 첫 4자토론에 나선 (왼쪽부터) 심상정,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후보. ⓒ국민의힘 선대본부 갈무리

자유당 독재 때 김대중 후보의 선거연설을 들으며 가슴을 태우던 기억이 역역하다. 토론이 없는 선거가 있다면 선거가 아니다. 아니 선거는 선거다. 가짜다.

자유당 정권 때 선거. 박정희 독재 선거. 전두환 정권 선거. 선거는 선거이되 누가 선거라고 하는가. 토론 없는 선거는 가짜 민주주의다. 진짜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 토론하는 것이다. 윤석열, 알아듣는가. 토론 싫으면 후보 사퇴해라.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2002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경쟁자인 이인제로부터 집요하게 사상공격을 받았다. 장인 때문이다.

“결혼 전에 장인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하고 지금 잘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사랑하는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 그래야 된다면 저는 대통령을 안 하겠습니다.”

더 말이 필요 없었다. 옆에서 여성 당원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뺨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거연설 역사에 기록될 노무현의 연설은 꽃이었다. 아름다운 꽃이었다.

토론은 저마다 나름대로 장기가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진실이 담겨있지 않으면 그것은 헛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토론에 무척 신경을 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 바탕이 진실하지 않으면 도둑이 경찰 행세하는 것이다.

새벽 2시, 눈이 떠진다. TV를 틀자 나오는 뉴스는 윤석열 후보가 토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거부하다니. 이게 무슨 소린가. 8일 기자협회 토론을 하기로 후보 간에 이미 약속하지 않았나.

그러나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토론이 불공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자협회가 주최하고 후보자 4인의 진영에서는 이미 토론하기로 날짜까지 약속했다. 이걸 파기한 것이다. 정치인이 할 짓이 아니다.

토론의 참석 여부는 후보가 결정할 문제다. 억지로 끌어다 밥 먹일 수는 없지만, 토론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대통령을 하겠다는 후보의 대국민 약속이다. 도대체 불공정이란 이유가 말이 되는가.

참모들은 뭐 하고 있었기에 합의하기 전에는 입 닫고 있었는가.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차라리 자신 없어 못하겠다고 고백하면 정직하다는 말이라도 들을 것이다.

머리가 비었다는 국민의 비아냥을 듣기보다는 차라리 토론 약속 파기하고 욕을 먹는 것이 낫다는 배짱이라면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다음은 후보에서 사퇴해야 한다.

저런 후보가 대통령 후보인가.

도대체 참모들은 뭘 하고 있는가. 검사를 지낸 참모들과 언론에서 밥 먹던 기자출신 실세 측근들은 선거기간 동안 귀 막고 살기로 작심했는가. 야당의 아는 의원에게 전화했다. 대답은 ‘죄송합니다.’

국민을 뭐로 보기에 저런 짓을 거침없이 저지른단 말인가. 국민에게 저런 대우를 하는 후보를 인정해야 하는가. 도대체 저건 무슨 배짱이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내 머리로는 해답이 안 나온다.

다행이 토론하기로 날짜를 잡았다. 언제 마음이 변할지 모르지만, 또 변하면 사람도 아니다. 소신껏 거짓말하지 않고 토론하면 된다. 머리도 안 좋은 사람이 머리 굴리며 말하다가는 모두 들통 난다.

후보의 자질은 토론을 보면 안다. 아무리 거짓말의 도사라 해도 눈동자는 속이지 못한다. 피부의 떨림은 도리가 없다. 솔직히 아는 대로 말하라. 정직 이상으로 설득력이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거짓말하지 말라.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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