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통해 들려온 목소리가 짱짱했다. 구불구불 산자락을 돌아 도착한 작가의 작업실은 넓고 평화로워 보였다. 겨우 차 한 대가 들고 날 수 있는 작은 길 너머 멀리 바다가 보였다. 오랜만에 잔디를 깎고 작업실 내외부 청소를 했다고 했다. 밝았다.

차분차분, 이야기하는 동안 격정에 차올랐고, 때론 눈을 감았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현재까지가 4·3에 집중한 삶의 방향성이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같은 선상에 있는 4·3은 작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현재진행형인 ‘학살’에 집중해 질문과 작업의 방향과 주제를 주고받았다.

늦가을로 가는 길이었는데, 무덥고 더웠다. 폭풍의 눈 안에 점점 다가서고 있는 느낌이었다.
 

스물일곱에 만난 탐라미술인협회

제주 양미영 작가. ⓒ광주이트가이드
제주 양미영 작가. ⓒ광주이트가이드

탐미협에 함께 한 후 때때로 걸음 걷기가 두려웠다. 아름다운 제주 풍경 속에서 눈을 둘 곳이 사라졌다. 발이 딛고 서 있는 땅 밑이 무덤이었고, 눈에 보이는 풍경 모두가 학살지였다. 몸을 휘감는 바람이 그 소식을 무언으로 전해주었고, 발등을 적시는 물은 수많은 육신이 녹아서 흘러내린 물이었고, 물소리는 그들의 신음이었다.

작가는 “처음 4·3에 관한 전반적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부터 학살, 저항, 항쟁, 살육 등을 공부하며 학살 터를 다녀오면 며칠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턱밑까지 알 수 없는 울분과 분노와 울음이 차올랐다. 70년 전의 일이 지금도 미해결책으로 있는 것,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것, 엄연히 학살은 피해자로 존재하는데 가해자는 얼굴을 보이지 않은 것 등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고 고백했다.

4·3은 불순한 외부세력의 폭력으로부터 제주섬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한 자주 항쟁이었다. 이 피어린 항쟁의 와중에 이 땅의 순박한 민중들은 가공할 국가폭력에 의해 집과 삶의 터전을 총체적으로 유린당했다.

빼앗긴 것은 무조건 되찾아야 하고 복원되어야 한다. 빼앗긴 마을, 빼앗긴 기억, 빼앗긴 세월을 치유하고 봉합해야 한다. 정신적 원형을 온전하게 찾아야 한다. 작가는 “그날이 오기까지 엄숙하고 결연하게 역사의 현장에서 작업 해나갈 것이다”. 고 말했다.

이후의 삶은 현재까지 4·3을 정확한 눈으로 마주치기로 시간을 견뎠다. 항쟁지 답사를 기본으로 순례기행을 계속하며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것은 작업 안으로 자신이 체험하고 느낀 감정을 질감으로 끌어들인 일이었다.

시간과 기억을 겹(layered)이란 형식으로 차용했고, 무엇보다 지속성을 가지고 4·3 정신과 정체성을 찾아 기록하는 일을 시작했다. 삶의 변곡점이었다.


그 섬에 우리가 살고 있다

양미영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양미영 작가. ⓒ광주아트가이드 제공

작가는 재료, 장르, 시간을 불문하고 무차별 전방위적 작업을 해낸다. 필요한 장소, 주제, 환경이 주어지는 그대로 자신의 작업과 화합하고 조우한다. 흙 작업, 설치, 평면 영상까지 자신의 노동과 감정과 생각을 전달 할 수 있는 모든 매체를 이용해 4·3을 발언한다.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부를 내 보일 것. 그동안의 작업을 들여다보면 숨이 막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아이들의 싸움방법Ⅰ·Ⅱ』(2005)에서는 ‘삶(生)과 죽음(死)’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진리였다. 몸짓이 작은 아이들은 어디에도 숨었다. 낮은 토방 밑과, 우거진 수풀 속, 큰 장독 안과, 헛간의 어딘가 보이지 않을만한 장소를 찾았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 형제 등 가족과 마을사람들을 향해 총부리를 날리는 붉은 총구와 선혈을 낱낱이 지켜보았다. 심리적 공포와 실제적 총탄으로 몸에 박힌 상흔을 뒤로하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공포의 눈이면서 진실의 현장을 기억하는 눈이다. 이 작업은 아이들이 지켜본 학살의 증거를 표상한다.

『무명천 할머니』(2007)도 있다. 진아영(秦雅英) 할머니는 마을에 난입한 남로당 무장대를 소탕하기 위해 작전 중이던 불상의 토벌대가 발사한 총에 얼굴을 맞았다. 이때 할머니 나이 36세였다.

아래턱을 잃은 할머니는 2004년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상 이후 사라진 턱을 하얀 무명천으로 가렸다. 작가는 무명천 할머니로 불리는 진아영 할머니의 무명천을 만들고, 사라진 턱의 원형을 복귀시켰다.

50년이 넘은 평생의 고통이 작가의 화폭 안에서 36세 이전의 얼굴로 돌아가 날 선 눈으로 세상의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내가 그린 그림은 저항이다. 4·3 정신을 구상하며 자존심을 찾아가는 길이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나만의 언어를 찾아 그날의 통곡과 분노를 직접화법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기억하지 않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45호(2021년 1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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