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해공원 반대 편지쓴 경남 합천 원경고 정겨울 군

   
한 고등학생의 편지가 네티즌 및 국민들을 1980년 한국현대사의 한 복판으로 끌어 들이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주인공은 경남 합천군 원경 고등학교 정겨울 군. 정 군은  합천군이 '일해공원'으로 개명을 추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심의조 합천군수에게 이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편지 글 형식으로 조목조목 피력했다. 

경상남도 합천군은 지난 1월 합천군에 있는 '새천년 생명의 숲'을 '일해공원'으로 개명하기로 확정했다.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광주 시민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해'라는 명칭이 5.18 학살주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이기 때문이다.

'일해공원'으로 개명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국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합천군수는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15일 이 편지를 쓴  정겨울군을 본보가 전화로 인터뷰했다.  정군은 인터뷰에서도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반대운동을 모색하겠다"는 다부진 다짐을 전했다.


정겨울군은 어떻게 편지를 쓸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일해공원으로 개명하겠다는 보도이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마다 인기검색어로 합천, 일해공원이 올라온 것을 보고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과 관련된 이야기라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자료도 찾아보고 관련된 기사를 읽어보면서 이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생각을 다른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니 동조하면서 함께 하겠다고 말해 힘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정군은 “처음에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편지를 쓰기는 했으나 사실은 걱정됐다. 악플도 걱정됐다. 그런데 지금은 다행히 여러 분들이 격려해주셔서 어깨는 무거워졌어도 힘은 난다. 어떤 분은 한국의 근현대사라는 책도 보내주시고 어떤 분은 편지를 보내주셨다”고 덧붙였다.

이어 “일해공원이라고 개명한다면 이제까지 배워온 역사교육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광주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광주사태여야지만 일해공원으로 불릴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이미 국가가 민주화 운동이라고 인정한 일이며 피해자 가족들이 여전히 가슴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데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합천 청소년 자치위원회 위원장이자 원경고등학교 총학생회장인 정군은 “앞으로 지역 고등학교와 연대해 반대 성명서를 내거나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며 “가능하다면 심의조 군수를 만나 이 문제를 이야기 하고, 또 함께 광주 5.18국립묘역을 참배해 억울한 이들에 대해 우리가 해야할 일을 고민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향후 유기농 식품이나 화장품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정겨울군은 평범한 고3학생이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 실천하는 용기를 보여줬다. 정군의 글이 인터넷에 회자되면서 이를 왜곡하는 시선도 있었으나 전화인터뷰를 통해 만나본 정군은 자신의 생각과 주관이 또렷하고 침착했다. 생각이 다른 것과 틀린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틀린 것을 과감히 지적한 미래 이 땅의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아래는 정겨울군이 심의조 합천군수에게 보낸 편지 전문.

합천군 심의조 군수님께.
저희는 합천군 적중면에 있는 원경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군수님께서 '새천년 생명의 숲'이라는 공원 이름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바꾸려고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합천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저희끼리 토론도 해보고 전체 회의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들을 직접 체험한 세대는 아닙니다. 저희 중에는 개인적인 관심사에 따라 '광주민주화운동'이라든지, '삼청교육대'라든지, '언론탄압', '자기 말 듣지 않는 사람을 고문하고 심지어는 죽이기', '부정하고 불의한 돈 긁어모으기', '세금내지 않기' 등등에 대해 깊이 알고 있어서 분노하는 친구도 있고, 그냥 역사상식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수님께서 일해공원을 세우려고 하시는 바람에 좀더 깊이 있게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전두환을 존경할 수가 없습니다.

군수님께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합천 출신이라는 이유로 합천을 드높이기 위해 공원 이름에 그분의 호를 붙이자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군수님. 그러려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훌륭한 분이다"하고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광주 금남로에서 도청 앞 광장에서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이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는 사진도 봤고,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도 많이 봤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TV프로그램에서 '삼청교육대'에 억울하게 끌려간 사람들이 피맺힌 절규를 하는 것도 보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억압하고 언론을 폭력으로 다스린 것도 보았습니다.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는 말년에는 기업대표를 불러다가 협박해서 수천억대의 돈을 긁어모아서 자기 호를 딴 일해재단을 만들려고 했고, 자기는 "단돈 29만원밖에 없다"고 하면서 세금도 내지 않고 있으면서 툭하면 숨겨놓은 돈이 발각돼서 조사를 받는 사람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사과는커녕 뻔뻔스럽게 거짓말이나 일삼는 사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저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군수님께서 어느 인터뷰에서 과거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식의 말씀을 하셨더군요.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자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신 군수님께 꼭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역사공부는 왜 하는 것인가" 하고요.
전두환 전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부모형제를 잃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혹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지요? 군수님도 그 사람들이 다 빨갱이거나 나쁜 사람들이라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과거 매달리지 말라고요? 역사공부 왜 하나요?

저희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국가가 법률로 민주화운동이었음을 인정했고, 따라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그 죄를 물어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수님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훌륭한 인물인 듯 대대로 기리게 될 공원 이름에 그분의 호를 붙여서 칭찬하려고 합니다.
저희가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국가가 맞는지, 군수님이 맞는지 도대체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배웠고, 알고 있고, 보아온 것들이 모두 군수님 앞에서는 거짓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의 차이는 존중해야 한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군수님께서는 우리 생각과 '다른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명백히 '틀린 일'을 하신 것 같습니다. 아직 배우는 저희가 봐도 심각하게 틀린 일입니다.

군수님, 망월동 묘지를 가보셨는지요? 그 숱한 죽음들을 우리에게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는지요? 군수님께서 지금 하시는 일을 그 영령들은 어떻게 바라보실 거 같은지요? 그 가족들은 또 어떤 생각이 들겠는지요?
어린 저희도 그 정도의 도리는 알겠는데 군수님은 무슨 연유로 이런 일을 하시는지요? 군수님. 광주는 우리의 조국이 아닌지요? 군수님께서 지금 하시는 일은 정의롭지도 않고, 오히려 지역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군민의 대표이신 군수님께서 합천군민인 저희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디에 가서 합천에 있는 학교를 다닌다고 말하기가 창피합니다. 군수님께서도 저희 같은 손자나 손녀가 있을 테지요. 제발 생각을 바꿔주셔서 정의가 무엇인지, 올바른 역사가 무엇인지, 참된 도리가 무엇인지 알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2007년 2월 9일 경남 합천군 원경고등학교 총학생회장 정겨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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