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꿈', '녹슨 톱 메고, 저승동무', '일신방직' 등 12점 전시
오는 5일부터 30일까지 광주 동구 문화전당로 오월미술관에서

꿈꾸는 자의 늑인(勒印)

오다가다 자주 마주쳤다. 늦은 시간 저녁을 먹는 식당에서 마주쳤고, 전시 작가의 뒤풀이에서 얼굴을 읽히고 인사를 했었다. 한동안 작가를 못 봤다. 어디를 가도 보이지 않았고, 비슷한 시기에 같이하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나는 그 자리에 머무르는데, 한 무리가 공간이동을 한 것 같았다.

십 년도 더 된, 오래전 풍경이다. 다시 작가를 마주쳤을 때, 반갑게 인사하는 내게 작가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동안 했던 일들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존경하는 선배의 권유로 선배와 2인전도 해냈다. 선배가 후배를 일으켜주고 후배가 선배를 독려하며 깊은 강을 같이 건넜다.

부제 :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작가는 순천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잘하는 것이 그림 그리는 일이었으나 화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경찰인 아버지와 함께 작은 섬에서 살았다. 바다는 늘 경이로웠고, 지금의 화가로서의 감성을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다.

중학교를 진학할 무렵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혹독한 사춘기와 날 선 청소년기를 보내고, 고등학교 때는 미술부장을 하면서 ‘가문비’라는 문예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자주 소통했다. 군 제대 후 복학한 대학도 졸업을 앞두고 그만두었고, 오랜 시간 동안 학원가에서 강사를 했다.

작가는 “무엇으로도 내 안에 들끓는 소용돌이를 채울 수 없었다. 삶의 방향을 설정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었다”. 고 당시를 설명했다.

세상을 향해 벽을 치고 스스로 유폐도 했지만, 결국 사람 속으로 다시 돌아왔고 그림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중학생 시절 큰 형이 집에 가져다 놓은 항일무장투쟁 역사와 여러 권의 소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등의 책들이 삶을 돌아보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

책 읽는 것을 즐겼다. 다른 점은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책을 무차별 읽었다면 현재는 궁금점이 발화되면 해소될 시점까지 관련 책들을 읽어가는 것이 독서의 방법으로 진화했다. 역사에 집중했고, 늘 대중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극점을 찾았다.

그가 마침내 선택한 것은, 우리의 역사, 일방적 착취를 당하는 민중, 대한민국을 있게 한 이름 없는 영웅과 그 영웅인 독립운동가를 학살한 친일파와 매국노, 그리고 자국의 발전과 민주화보다 개인의 영욕에 발을 담근 추악한 자들에 대한 단죄를 자신의 작업 안에 끌어들인 것이다.

부제 : 꿈꾸는 자는 해방구다

노주일- '그림의 꿈' 162.5x130.5cn 종이에 수채,펜소묘 2021.
노주일- '그림의 꿈' 162.5x130.5cn 종이에 수채,펜소묘 2021.

작가는 꿈을 꾼다. 그 꿈은 역사적 현실에서 기초한다. 선배와 같이했던 2인전에서 보여준 거꾸로 보는, 뒤집어 보는 세상에서 진일보했다. 이번 전시에는 모두 12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대부분이 친일과 조국에 대한 매국 매판자본에 앞장선 이들에 대한 단죄가 주제이다. 더불어 해방 이후 철저하게 정리하지 못한 친일역사 처단과 관련한 작가의 소망이자 우리 모두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읽는 그림이다. 그림에 눈을 맞추고 천천히 들여다보며 역사를 읽어내야 한다. 아름다운 그림을 상상했다면 작가가 소원하며 꿈꾸는 조국이 나아가야 할 바람에 대한 아름다움을 읽어내면 될 것이다.

『녹슨 톱 메고, 저승 길동무』는 오월 항쟁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과장된 만화적 요소와 세태 풍자 가득한 이 작업은 역사에 반한 전두환과 백선엽 그리고 박정희를 등장시켰다. 사용하지 않아 적당히 붉은 녹 슬은 톱은 선명하게 날이 서 있다. ‘역사 청산’이란 붉은 머리띠를 이마에 질끈 동여맨 사람이 전두환 멱살을 잡고 백선엽 머리칼을 잡아채며 저승길로 데려간다.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정점을 저승길로 가는 길이라고 볼 때, 밝게 빛나는 정점마저도 이들에겐 아깝다. 역사청산이란 머리띠를 두른 사람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작가 자신이다. 멀리 박정희가 무릎을 꿇린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배경인 묘비석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역사 속 이름 없는 영웅들의 상징으로 이들의 지옥행은 지켜보고 있다.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인 다카키 마사오와 동일인이다. 해방 후 남로당 프락치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백선엽의 주도하에 살아났고, 5.16 쿠데타와 함께 대통령이 되어 18년간 장기유신독재를 주도하다 부하인 김재규에 의해 처단되었다.

백선엽은 항일무장 독립운동가들을 잔인하게 토벌 학살했던 주범이다. 윤봉길 의사에 의해 관동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사망하자 그 이름으로 창씨개명 한 철저한 친일 매국노이다.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 토벌대의 선봉장이고 32세에는 대장에 진급했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5.16 쿠데타 때 육사생도 800여 명을 선동해 쿠데타 지지 시위를 했으며 군대 내 비밀 사조직인 하나회를 만들어 대통령 친위조직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노주일- '녹슨 톱 메고 저승 길동무' 116x80.3 종이에 수채,펜소묘 2021.
노주일- '녹슨 톱 메고 저승 길동무' 116x80.3 종이에 수채,펜소묘 2021.

박정희가 죽자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했으며 1980년 5월 광주시민을 학살한 후 대통령이 되었다. 내란죄와 살인죄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지만, 특별사면 되었고 현재까지 광주학살은 본인과 연관성이 없다며 주장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11월 23일 사망했다.

『안중근, 박정희를 쏘다』는 완성도 높은 회화적 작품이다. 나선형을 그리는 붉은 꽃잎 배경은 시간과 의식의 흐름 등을 눈물겨운 상징으로 은유한다. 안중근의 단지한 손가락에서 붉은 선혈이 흐른다.

독립투쟁 과정에서 학살당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개개인이 한 송이 꽃으로 표현되었다. 그 꽃송이를 흐르는 피와 함께 굳건하게 딛고 서 있는 안중근 의사는 피 흐르는 손으로는 조국을 상징하는 심장을 싸안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다카키 마사오인 박정희를 가리킨다.

일본군 장교인 다카키 마사오의 손가락에서는 그가 학살한 독립투사의 죽음이 꽃송이로 이어져 바닥으로 떨어진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허공을 향한 왼손은 사람의 손이 아니다.

탐욕과 권력침탈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짐승의 발 같은 손이다. 탐욕과 친일 매국, 독재에 대한 반사회적 욕망은 감추려 할수록 자신도 모르게 결국 드러나는 것을 짐승의 손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안중근 의사의 굳게 직선으로 뻗은 손가락은 또 다른 강력한 일성의 총이다. 의사의 총은 단지한 손가락의 거대한 독립 의지를 향한 분출이며, 이 분노는 다카키 마사오박정희가 행했던 독립투쟁가들의 죽음에 대해 단죄를 실행한다.

한 발로 불안하게 균형 잡지 못한 채 비틀거리는 다카키 마사오의 일본도에는 붉은 핏기가 가시지 않았다. 몸이 땅에 닿는 순간 조국의 독립을 소원한 모든 백성이 그의 일본도로 목을 베어버릴 수 있다.

부제 : 생(生)은 작별하지 않는다

노주일- '일신방직의 옛 고가수조' 40.5x30cm 종이에 수채,펜소묘 2021.
노주일- '일신방직의 옛 고가수조' 40.5x30cm 종이에 수채,펜소묘 2021.

『오월의 눈물꽃』 앞에서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 주세요” 절망과 희망으로 새벽 밤거리에 울렸던 떨리는 목소리를 기억한다. 작가는 눈물로 호소했던, 그날 새벽 목소리의 기억을 무등산 위에 성큼 솟은 만월에 새겼다.

목소리는 공명을 일깨우며 음파의 진동으로 만물을 깨운다. 심지어 눈물꽃을 곳곳에 피워올린다. 그날의 목소리는 음파의 진동을 넘어 만월로 빛나며 우리를 영원히 지켜볼 것이다.

작가는 작년 초 무렵, 미끄러지며 오른팔 손목을 다쳤다. 『오월의 눈물꽃』 은 그런 그가 왼손으로 시도한 첫 작업이다. 사용하지 않으면 나을 것이란 의사의 권유대로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려 노력하지만 세밀한 부분은 역시 오른손과 손목을 사용해야만 했다.

결국, 왼손으로 시작했던 작업은 오른손의 협력으로 매듭을 지었다. 의사가 치료 완료를 약속한 1년은 다가오지만, 오른손의 기능은 여전히 탐탁지 않고 수리보증 기간은 길게 남았다. 작가는 좌파본능이 살아났다고 했다.

『철거 전 일신방직 공장 안』, 『일신방직의 옛 고가수조』는 좌파본능에 충실하게 왼손으로만 그렸다. 1934년 일제강점기에 가네보 방적으로 문을 열었던 일신방직이 2019년 공장 이전과 함께 현 부지가 주거, 상업용으로 용도 변경되면서 어린 여공들의 수탈과 강제노동 집약 역사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작가는 식민지하 어린 여공들의 눈물과 우리 민족의 수탈현장을 기록하고자 현장 스케치를 감행했고, 그 결과물이 이번 전시에서 우리를 맞는다. 작가는 자신만의 언어로 역사적 책임을 깊이 성찰하며 우리에게 기억에 관한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부제 : 마치며

노주일 작가.
노주일 작가.

작가의 생애를 돌아보면 어느 한 곳 멀쩡하고 아프지 않은 생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시간의 갈피 갈피마다 고통스러웠다. 능동적이고 낙관적이라고 여겼던 성정이 이제 와 돌아보니 그 고통을 덮기 위한 포장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0.05mm~1.2mm 펜으로 역사적 오류를 앎과 동시에 후회와 회한으로 도장을 찍듯이 그려낸 작업은 그래서 심장에 찍는 바늘 같은 단죄의 도장이 될 수밖에 없다. 좌파본능에 충실하며 점점이 찍어내듯 완성한 일신방직 관련 작업이 온갖 박해와 수탈과 설움, 노동집약의 식민지 백성의 한과 눈물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너와 내가 느끼는 어떤 것을 그림이란 매개를 통해 나를 감동하게 하고 깨어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있다.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동시대의 부조리를 작업 안에 끌어들이는 일이다.

현실과 유리되어 시대를 관통하지 못하는 그림은 당대에서 사라지지만 시대를 기록하는 화가의 사명을 다한다면 그 그림은 역사와 함께 후대가 기억하는 것은 엄연한 절명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잊고 있었던 역사의 한 부분을 다시 한번 되새김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 또한 작가에게 앞으로의 작업에 힘을 실어주는 따뜻한 독려일 것이 분명하다. 그의 절대적 좌파본능을 기대한다.
 

  [전시 서평] 불의한 현실에 가차없이 싸대기 올리기

그림을 여행하다가 사람을 만난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작품들을 그저 풍경으로 지나치는 수가 많은데 그렇지 않고 그 배경에서 문득 잉잉한 인간의 인광(燐光)을 마주치는 것이다. 4년 전 이맘때 예술의 거리를 여행하다가 한 그림 속에서 그런 체험을 했다.

‘고래의 꿈’이라는 펜소묘였는데 바닷속 웅혼한 고래의 품에 싸안긴 수많은 어린 고혼(孤魂)들의 하염없는 몸부림이 온 가슴에 핏빛억수로 사무쳐왔다. 돌이키기도 몸서리나는 세월호 원혼들의 위령(慰靈)의식이었다.

그때, 형체도 헤아리기 힘든 실낱같은 산화(散華)들 뒤로 깊은 해저에서 꿈엔 듯 커다랗고 순은(純銀)한 빛더미가 쏟아져 나왔다. 해원의 기도처럼 여겨지는 그 빛의 세례는 잠시였지만 내게 욱복한 위안을 안겨주었다.

노주일 작가가 그 인연이었다. 그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얼혼을 안쓰러이 보듬어안은 모습으로 고개를 숙였다. 해맑은 천진동자의 인상이었다.

이상호 작가와의 동반 소묘전 자리. 이작가의 원만한 불화와 어울려 전시장은 온통 참회와 해원과 용서의 만다라로 환희로웠다.

‘그림의 꿈’이란 간판으로 작가가 첫 개인전을 연다. 그는 쉽고 단호하게 말한다. “세상의 불의를 그림으로 깨트리는 것이 나의 꿈”이라고.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그의 선언을 백열하게 보여준다. 백열하다. 그런데 양식이 얼핏 이원화된 걸로 읽히기 쉽다. 동심의 꿈이 어른대는가 하면, 악한들의 폭력이 등장하니까. 하지만 그건 인과관계일 뿐 양식의 분화가 아니다.

순수하지 않은 열정이 있던가. 분노 없는 용서가 가능할까.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그림의 꿈’에서 아기가 손가락끝에서 피워내는 꽃들의 함성을 듣고, ‘보안법 철폐’에서 수인이 쇠날끝으로 벽에 파새기는 구호의 함성을 듣는다. 다르지만 똑같은 소식이다.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민중의 이름으로 해원하는 판굿의 몸짓과 극악한 역사의 죄인들을 민중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판굿의 몸짓에서 우리는 똑같은 희망을 본다.

‘아이’ 그림의 유연하면서도 섬세한 선면과 활달무애한 구도에서 우리는 인간 본연의 선성과 자유의 행복을 향유하며 미래로의 무한한 희망을 구가한다.

그러나 ‘수인’ 그림의 강퍅하고 투박한 묘법과 압박일변도의 공간 배치에서 우리는 막장절망의 질곡과 그를 억지극복하려는 단말마의 몸부림을 본다. 이 무슨 지악스런 순명(順命?)이란 말인가.

이 사태는 우리가 작가의 성장 족적을 잠시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 쉽게 요해된다. 노작가는 온실성 화초와는 거리가 있다. 일찍이 세파를 겪으며 좀 거친 여정을 거쳤으며 당연스레 예술도 거리에서 시작했다. 광주민미협의 일꾼으로 오월 현장에서 열심히 굴렀다.

“이쁜 그림과 실한 그림과가 어떻게 달리 사유되고 생성되는가를 여러 선배들의 작업을 지켜보면서 알게 됐지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실한 예술을 사용하고 누려야 할 주인은 민중이라고 불리는 우리 공동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의 토로.

그 깨침은 막일이라고 할 육탄전을 통해서 뚝심으로 길러졌다. 우선 몸에 부딪쳐 오는 현실의 삶에 진하게 부대끼면서 그 박동을 느낌대로 그려내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그 끈적이는 생동감이 미학적 본연의 소슬함을 잃지 않도록 가다듬는 데 진력했다. 예술하는 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왕복달리기 단련이련만 그는 이 혹독한 형벌을 초장에 누구보다 달게 무릅썼다고 자부한단다.

그 간단찮은 굴곡을 거쳐 그는 이제 비켜설 수 없는 시대의 빙벽(氷壁)에 마주선다. 느물거리는 감상주의적 미학의 탈을 벗어던지고 홀로만의 순수고독을 정시(正視)하게 된 것이다.

자, 한 착한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잿빛 독방에 갇혀 생존 자체를 저주하면서 밤새 뒤척거리다가, 그 가위눌림이 이제 그만 끝났으면 하는 바람 하나로 쇳조각으로 감방 시멘트벽에 적고 새긴다. ‘국가보안법 철폐!’ 희망이나 기대도 없이 그저 적고 새긴다.

하릴없이 새기고 그리는 행위. 거기에 거리의 작가들의 존재는 엄존한다. 그 궁극에서 터져나오는 사소하고 미약한 개인의 절규는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허망하고 얼마나 허접스런 것인가.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그러나 결국 그의 시선은 푸르게 우거져 있는 하늘을 향해 거룩하게 열린다. 아기고래와 심해의 자유천국에서 행복하게 영글어가는 젊은 영령들의 부활과 온전한 민주와 온전한 평화와 온전한 통일이 소담하게 개화한 국토의 건설을 기어히 보아내고야 만다.

작가는 언젠가 시장국밥집에서 어느 시인으로부터 어떤 계시 같은 잠언을 듣고 자신의 지남(指南)으로 삼아지내고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예술이란 누군가의 욕망을 너의 가슴을 통해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것”이라는. 그는 그 누군가의 욕망을 천착하기 위해 서대문형무소로 비무장지대로 황토현으로 광주전적지로 일신방직옛터로 역사현장을 답사하며 님들의 숙한(宿恨)을 가슴속에 쟁이고 발효시켜 왔다.

그리고 그 곰삭은 정수(精髓)를 강하고 깨끗한 펜선과 무채 위주의 색면과 가식없는 실사(實寫)를 통해 형상화 해왔다.

우리는 이쯤해서 붓든 이들의 영원한 화두인 ‘의재필선(意在筆先)’을 되뇌이게 된다. 재주보다 뜻이 앞서야 한다. 눈에만 좋고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건 그림이 아니다.

노 작가는 이 주문에는 어느 정도 득의(得意)한 것 같다. 순정하고 치열한 정공(正攻)의 지조는 우리들 가슴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선인들은 ‘의재필선’의 옆에 ‘취재법외(趣在法外)’라는 방법론을 달아 두었다. 맛은 법을 벗어난 데서 우러난다. 뜻을 충실히 반영하되 그 표현에 있어서는 자재로워야 한다는 일침이다. 지극하게 슬퍼하면서 가만히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게 수승한 작가라고 했던가.

우리는 노작가가 그 곧은 뜻을 더욱 준열하게 벼리고 거기에 더해 따뜻하고 아름다운 화법을 완성해 그가 염원하고 모두가 동참하는 ‘그림의 꿈’을 이루기를 기원한다.

意만이 아닌 趣의 겸비를 기자는 그가 언젠가 가만히 중얼거리던 독백에서 확인할 수 있기도 했다. “저는 백지 위에 서걱이는 펜촉소리가 그저 그렇게 좋대요.”

정담 한 가지 덧붙이건대, 광주 임동 조촐한 작가의 공방에서 이상호 화가와 함께 나누던 환희로운 차담 자리는 오래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 복전에서 이심전심 투합했던 자리이타의 서원이 원만하게 회향되기를 두손모아 빌어본다.

한송주 기자

노주일- 꿈은 죽지 않는다.
노주일- 꿈은 죽지 않는다.
노주일- 니랑 나랑 살자 2  펜소묘 117x91cm  2018.
노주일- 니랑 나랑 살자 2 펜소묘 117x91cm 2018.
노주일- 망월묘역에 소나기 내리는 밤 55×45.5 펜소묘 2017.
노주일- 망월묘역에 소나기 내리는 밤 55×45.5 펜소묘 2017.
노주일- 물에서 새를 낚다  53×45.5cm  펜소묘 2017.
노주일- 물에서 새를 낚다 53×45.5cm 펜소묘 2017.
노주일- 안중근 박정희를 쏘다.
노주일- 안중근 박정희를 쏘다.
노주일- 일신방직의 옛 화력발전소 안.
노주일- 일신방직의 옛 화력발전소 안.
노주일- 철거 전의 일신방직 공장 안.
노주일- 철거 전의 일신방직 공장 안.
노주일- 팥쥐엄마의 그리움의 노래.
노주일- 팥쥐엄마의 그리움의 노래.
노주일- 하늘에서 붕어를 낚다  53×45.5cm  펜소묘 2017.
노주일- 하늘에서 붕어를 낚다 53×45.5cm 펜소묘 2017.
노주일- 흥정 90.0×72.7 펜소묘 2017.
노주일- 흥정 90.0×72.7 펜소묘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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