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갑 전 기자, 문학들출판사에서 발간
전두환 죽은 날의 서글픈 에피소드

지난 11월 23일 전두환이 죽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실 또한 그와 함께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지는 것인가. 그가 세상을 떠난 날 광주 하늘에 무지개가 떴다는 목격담과 사진이 SNS를 달구고 있다. 공교롭게도 무지개가 뜬 장소는 당시 시위대가 끌려가 모진 고역을 치른 ‘상무대’가 위치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그가 사망한 다음 날인 24일 전남 강진군 군동면 한 저수지에서 5·18 부상자인 이 모씨가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의 한 자락이 읽는 이의 가슴을 적신다. “어머니께 죄송하고, 가족에게 미안하고, 친구와 사회에 미안하다” “5·18에 원한도 없으려니와 작은 서운함들은 다 묻고 가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아버지께 가고 싶다.”

나의갑 전 기자가 최근 펴낸 '전두환의 광주폭동이라니요?' 책 표지그림. ⓒ문학들 제공
나의갑 전 기자가 최근 펴낸 '전두환의 광주폭동이라니요?' 책 표지그림. ⓒ문학들 제공

이 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자들을 구조하다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는 수십 년간 통증에 시달렸으며 하루에도 6번씩 통증 완화 주사를 맞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88년 국회 광주 특위 청문회와 1995년 검찰 조사, 2019년 5월 13일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혐의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했다. 재판에서 헬기 사격으로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여학생을 구조해 적십자병원으로 이송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전두환 씨는 5·18과 자신의 관련성에 대해 모든 것을 부인했다. 5·18의 주역이었던 그가 사과 한 마디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공교롭게도 그의 ‘회고록’에 대항한 책 『전두환의 광주폭동이라니요?』(심미안)가 출간됐다. 생전의 전두환 회고록을 정면으로 겨냥한 책의 냉철한 질문은 이제 당사자의 답변을 들을 수 없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무거운 멍에에서 무엇을 덜고 무엇을 보태는 것이 진실인지를 조목조목 분별해 준다.

5·18 당시 사회부 기자로 현장을 누빈 저자의 책무

1980년 5월 당시 저자는 <전남일보> 사회부 4년차 기자였다. 5·18의 도화선이 된 전남대 정문 앞 충돌부터 시작하여 5월 27일까지 5·18 전 과정을 눈으로 지켜보고 자신의 취재수첩에 기록했다. 그러나 그가 쓴 기사는 광주505보안부대의 검열로 한 글자도 게재되지 못했다. 41년의 세월 동안 그가 지고 온 ‘쓰지 못한 죄’의 멍에를 조금이나마 부려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현지 신문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은 ‘검열받지 않는 신문’을 만들다 광주 505보안부대에 들통나 5월 21일자부터 윤전기를 돌리지 못했습니다. 광주지역 방송(4개)도 KBS만 살려 놓고 20일 밤부터 강제로 ‘소리’를 중단시켰지요. 21일로 ‘5ㆍ18 재갈’이 풀린 서울지역 등 전국의 언론은 억지로 펜을 들어 ‘폭도’를 쓰고, 혹은 ‘폭동’으로 내몰았습니다. 생각할수록 그건 족쇄를 채워 두었다가 일제히 풀어 준 것이나 폭동의 발명이나 전두환 보안사의 ‘기획된 언론공작’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광주광역시 5·18진실규명지원단 자문관을 맡고 있던 2017년 4월, ‘전두환 회고록’이 나왔다. 그는 시장 명의의 반박 성명서를 쓰면서 회고록에 속을 수도, 말려들 수도, 오래된 미래로 가면 참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5·18 총책임자는 전두환”, 말은 그렇게들 하지만, 정작 전두환을 책임의 중심 자리에 꽂아 두고 5·18 행적 등을 대상화해 들여다본 기록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전두환 공부’가 덜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전두환을 전문으로 다룬 ‘전두환의 5·18’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한 결집문이다. 이 글은 전두환을 전문으로 취급한다. 그야말로 ‘전두환의 5·18’이다. 먼 시간 속에 묻혀 있는 전두환, 감추어 둔 전두환, 조작과 미화로 원형이 훼손된 전두환, 대리인을 운용하는 전두환, ‘해놓고’ ‘안 했다’고 우기는 전두환, 기록 속 미발견 전두환 등을 낱낱이 끄집어내고, 여기저기 흩어져 낱개의 기록으로 잠자는 전두환도 모아 온다.

‘전두환의 5·17 사전모의 행적’과 ‘전두환의 5·18 행적’을 온전히 들추어냄으로써 그를 원래의 중심자의 위치에 되돌려 놓는 것이 이 글의 중요한 임무다. 두 사건의 행적을 축으로 그가 ‘5·18 총사령관’임을, 나아가 5·18은 광주 사람들의 폭동이 아니라 ‘전두환의 광주폭동’임을 증명하는 것이 이 글의 2대 목표다. 부동(不動)의 증거에 탄탄한 분석과 논증을 물리고 있으므로 이 책을 통해 5월 진실이 ‘전두환의 5·17 내란’으로, ‘전두환의 5·18 내란’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전두환 회고록’의 대항 기록이다.

전두환은 과거, 5·18은 현재

5·18은 오래된 현재이고, 전두환은 이제 과거가 돼 버렸다. 그의 손에 묻힌 광주의 피가 얼마인데 한 점 사죄나 반성도 없이 그는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5월 광주에 대한 ‘광주폭력’은 지금도 한도 끝도 없다. 2019년에는 금배지 3인의 광주폭동이 국회에서 일어나더니, 올해엔 어느 대학 강의실에서 광주폭동이 나왔다. 교수라는 사람이 5·18을 ‘시민폭동’이라며 전두환 무죄, 지만원 무죄를 강의한 것이다. 2차 폭력으로 광주는 41년째 고통이다.

나의갑 전 기자. ⓒ문학들 제공
나의갑 전 기자. ⓒ문학들 제공

저자는 물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께서는 무엇 때문에 광주사태의 장군으로 남아 계시나요? 이제 그만 광주사태를 놓아 주셔야 광주가, 나라가 더는 불편해지지 않을 겁니다. 역사가 고난을 받고 있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전두환 장군’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진실을 밝히는 한 마디 말, 한 마디 사과도 없이 그는 떠났다.

기존 ‘5·18’ 관련 책과 다른 점

이 책은 ‘5·18’의 전체 과정을 기록하거나, 광주시민의 항쟁을 그린 기존의 출판물과는 다르다. 광주시민의 항쟁을 짓밟은 ‘전두환 장군’의 반란내란, 즉 군사폭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해 놓고 하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당당하게 “광주사태에 나는 없다”고 선언한 전두환 장군의 5·18 관련 행적을 샅샅이 모아 낱낱이 파헤친다. ‘전두환의 5·17 사전모의 행적’과 ‘전두환의 5·18 행적’을 온전히 들추어냄으로써 그가 거부했던 원래의 중심자 위치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이 두 사건을 축으로 그가 ‘5·18 총사령관’임을 밝히고 나아가 5·18은 광주 사람들의 폭동이 아니라 ‘전두환의 광주폭동’임을 밝히고 있다.

/문학들출판사 제공

 

1949년 전남 광산군에서 나고 자랐다. 5·18 당시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전신) 기자였고, 그 앞에 서면 죄인이다. ‘쓰지 못한 죄’다. 1980년 5월 18일 오전 8시 30분 전남대 정문 앞 상황부터 5월 27일까지 5·18 전 기간을 취재했다.

1988년 지금의 전남일보로 옮겨 편집국장, 논설실장을 지냈다. 현재 5·18기념재단 5·18진상규명자문위원회 위원,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광주광역시 5·18진실규명지원단 자문관, 광주광역시 제1기 5·18사료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다.

1987~1988년 『월간조선』, 『월간민족지평』, 『월간세계와 나』, 『월간예향』, 『신문과방송』(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기자협회보 등에 5·18 관련 글을 다수 썼다.

1980년 2월 ‘조선대 입학시험 총수석 가짜사건’을 단독보도해 전남일보 김종태 사장으로부터 특종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85년 8월 ‘광주·전남지역 중등 사립학교 교직 매도사건’ 보도로 17회 한국기자상(한국기자협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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