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국민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터너는 일생을 영광 속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한없는 후원과 사랑 그리고 빠른 성공에 못지않은 인생 후반기의 사회적 명예는 그의 삶을 빛내 주었다.

게다가 공들여 그린 작품을 모두 국가에 기증했고 화가라면 누구라도 받고 싶어 하는 불굴의 터너상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적인 화가를 영화화한 <미스터 터너>는 그의 삶을 한 편의 전기를 읽듯 무던한 관찰자의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아 그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속이 꽉 찬 괴짜 화가

영화 초반 등장인물로 나오는 터너의 모습이 상상하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 놀란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의 대표 작품들의 탄생배경과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짚어내고 있어 재미있게 몰입할 수 있었다.

역시나 이 작품에 처음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아버지였다.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왔던 아버지는 터너를 몹시나 아끼는 듯 보였다.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다 큰 아들의 면도를 해주는 것은 물론, 아픈 몸으로 아들의 물감을 있는 힘껏 개어주던 모습에서 터너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고 컸던 탓인지 그는 서글서글한 성격으로 동료들과도 허물없이 잘 어울렸다. 이런 아버지의 죽음 이후 심경의 변화가 컸고 덩달아 작품에도 격변의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그는 작품활동에도 꽤 열심히 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을 하며 시각을 키웠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느낌과 감상을 화폭에 차곡차곡 담아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동시대 작품들과는 무언가 조금 달랐다. 안개에 쌓인 듯 뿌연 색감으로 온통 화면을 덮어 캔버스 속 대상은 흐릿하게 혹은 흐물거리며 일그러지기 일쑤였고, 그 자신 또한 난파선을 그릴 때는 폭풍우가 쏟아지는 날 배 갑판에 묶여서 그 느낌을 실제로 느껴보고는 했던 괴짜이기도 했다.

“태양은 신이다.”

영화 막바지 죽음을 앞둔 터너가 마지막 숨을 내쉬며 대뇌인 말이다. 화가로서 빛에 대한 관찰을 오랫동안 해왔던 그는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인상파 화가들의 탄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기도 하다. 터너가 살았던 시기는 화가들에게 커다란 걸림돌이 될 사진기가 등장했던 때였다.

인간의 손이 몇 날 며칠을 걸려 해낼 일을 단숨에 완료해 버리는 기계가 적잖이 거슬렸던 그였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을 정도로 사물을 그대로 빼다 박은 사진은 그동안 화가들의 공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상 모든 것들을 손쉽게 재현해 냈다.

그렇지만 아직은 흑백사진을 뛰어넘을 컬러사진이 나오려면 멀었다는 상황을 알게 된 터너는 ‘색채’를 통해 화가로서의 특성을 확대해 나가고자 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추상화의 모습이 비치는 그의 작품에는 새로움을 찾고자 했던 노력이 담겨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처음부터 모두가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점차 사랑하게 되었다. 후에 빛의 화가라 일컬어지는 고흐, 모네,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빛에 숨겨진 색채의 다양성’을 보았고 많은 점을 참조하게 된다. 이런 그의 묘사법은 뉴턴이 발견해낸 광학과도 연관이 있다.

빛 속에 모든 색채가 숨겨져 있음을 프리즘을 통해 밝힌 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그는 빛이 가져오는 색의 향연을 화폭 속에 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요소들은 인상파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44호(2021년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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