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현이의 작가탐방] 제주의 역사와 풍격을 엮는 강문석 조각가
[범현이의 작가탐방] 제주의 역사와 풍격을 엮는 강문석 조각가
  • 범현이 문화전문 기자
  • 승인 2021.11.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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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말·바람의 제주

한라산 중턱을 가로지른 길을 선택했다. 발로 걸어서 오를 수 없는 산이어서 우회의 길을 운전하며 가는 동안 생각이 많아졌다. 때때로 무리를 지어 찻길을 걸어 오르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한라산의 푸른 나뭇잎들뿐이었다.

멀었다. 이 길인가 싶으면 저 길이었고, 우회전했는데, 직진했어야 했다. 잡목이 우거진 조그만 언덕을 지나니 더 이상은 길이 보이지 않았고, 내비게이션은 멈췄다. 멀리서 작가가 손을 흔들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초원이었다. 작가의 작품에서 보았던 이미지와 똑같은 풍경이 거기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초원의 빛과 말

강문성 조각가.
강문석 조각가.

천정이 높아 굵직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업실이다. 정주공간을 마련하고 이곳에 정착한 지는 6년이 되었다고 했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이곳저곳을 먼지처럼 떠돌았다. 대형작업을 하고 싶어도 공간이 주는 제약이 많아 실행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한 번은 간판공장을 빌려 쓰기도 했다. 간판 주문이 들어와 일이 있을 때는 영감이 떠올라도 그 일이 끝날 때를 기다려야 했고, 내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일이 들어오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탐라미술인협회에서 활동했다. 오랜 시간 제주의 아픈 역사를 공부했고, 작업 안에 4·3항쟁과 그 밖의 사회적 이슈와 부조리를 담으려 노력했다. 환경이 작업을 밀어내기도 했고, 다시 품기도 했다. 작가는 “4·3항쟁은 제주의 시작과 끝이다.

70년이 넘은 시간동안 누구도 쉽게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의 중량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작가다. 작가는 시대의 아픔과 부조리를 당연히 작업 안에 끌어들여야 한다. 아픔의 역사를 외면한다는 것은 작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방기하는 일이다.”고 단언한다.

강문석 작가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강문석 작가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작업실 밖의 풍경은 초원이다. 초원 너머는 제주도 어디에서나 보이는 한라산이다. 작가의 작품 속 풍경 그대로다. 작품을 들여다보며 이곳이 어디일까, 하는 생각은 작업실 밖 풍경을 보게 된다면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 2층에서 전시하고 있는 작품을 먼저 보았다. 작가는 『초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시 중이다. 오래되어서 흰 뼈만 남은 고사목으로 조형한 말이 압권이다. 자연물인 고사목을 변형시키지 않은 채 서로 얽고 묶은 채로 조형한 말이다.

제주의 역사와 자연이 녹아들어 체화된, 모든 것이 탈골된 형태의 고사목. 우리의 삶도 몸을 둘러싼 피부와 살이 녹아내리면 이런 모습이 될까하는 생각을 관람자로 하여금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동 선(銅線)을 용접해 만든 회화 같은 작품도 있다. 온전하게 동 선(線) 한 줄이 초원과 한라산을 그대로 보여준다. 작가는 “잔디가 심어진 마당에 서서 한라산을 올려다본다.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한 번도 같은 풍경을 보여주지 않은 한라산이다. 바람과 공기와 냄새, 빛, 구름, 하늘과 그림자까지 보고 느낄 때마다 경외심을 갖게 한다. 난, 내가 느낀 이 모든 것들을 작업 안에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비어있음의 채워짐

ⓒ강문성
ⓒ강문석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듯하다.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품은 입체적 조형과 평면적 구상으로 나뉜다. 동 선이 만들어낸 여백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면적 구상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선과 선으로 이어져 표현되는 작업이다.

분명 조각인데도 입체감과 사물에 관한 사실성이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은 여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한국화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비어있으나 채워진 느낌. 선으로만 구성되어 단조로운 드로잉 같으면서도 단단한 무엇인가가 느껴지는 힘.

심지어 하얀 벽에 액자의 네모 프레임으로 걸려있는 선들이 구상하고 있는 것은 색깔과 빛이 주는 단단함도 있다.

분명 텅 비어 있는 부분인데도 알 수 없는 빛, 초록, 갖가지 꽃들, 초원, 노니는 말 등이 흔들리는 바람과 함께 보이고 읽혀진다. 섬세한 사실적 묘사에 대상의 특징을 강조한 작가의 역량이 보이는 순간이다. 작가는 “말은 주로 작업하는 소재이자 주제다.

강문석 작가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강문석 작가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강문석 작가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강문석 작가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제주는 말(馬)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나아가는 제주의 기상을 말하고도 싶었다. 내게 재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처한 그때의 환경이 재료를 선택하게 할 뿐이다. 다양한 재료를 선택 실험하면서 말이 갖는 의미를 확대 재생산할 궁리 중이다.”고 속내를 들려준다.

역사를 기억하는 초원 위를 달린다. 본능으로 달렸고, 인간의 채찍으로 더 가열 찼다. 작가는 달리는 말 등에 올라타 서로의 보폭을 조율하며 앞으로 달려간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44호(2021년 11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gwangjuartgu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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